> 리뷰 > 영화
현실은 진실의 적미친 사람도 신의 자식입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이가원  |  CTK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2.26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2014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았다고 하지만 그야 인간의 편의대로 나눈 시간 계산법일 뿐 먼지더미 속 인생의 숙제들은 여전히 가득하다. ‘새해가 되었으니까’ 더 노력해야지, 더 참아야지, 더 숙고해야지, 더 새로워져야지, 더 좋아져야지, 더 행복해져야지 하는 결심일랑 누구나 하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 변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죄 
그런데 여기 좀 이상하게 변한 사람이 있다. 자신을 라만차의 기사라고 소개하는 이 영감, 보기에도 심상치 않지만 하는 짓은 더 가관이다. 여관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가끔씩 남자에게 몸을 파는 여인네인 알돈자를 보자마자 대뜸 아름다운 분, 고귀한 분, 꽃 중의 꽃, 별 중의 별이라며 칭송을 늘어놓는다. 이발사의 면도 대야를 보고서는 황금 투구라고 하지를 않나, 길거리의 도적떼 집시들을 아프리카의 왕족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휘적휘적 돌아가는 풍차가 악명 높은 괴수 거인이라며 창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이다. 이는 스페인의 지하 감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극의 주인공, 돈키호테 이야기다. <맨 오브 라만차>는 교회에 세금을 부과해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세르반테스가 다른 죄수들에게 연극 즉, 소설 「돈키호테」의 내용으로 자신을 변론하는 무대를 보여주는 극중극 형식의 뮤지컬이다.

감옥에 들어온 세르반테스에게 죄수들이 묻는다.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오? 그는 “난 시를 쓰오. 극작가요”라고 대답한다. “시를 쓰는 것도 죄가 되나?” 어쩌면 이 세상은 시를 쓰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기는지 모른다. 시는 늘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기사로 책봉될 때 여인숙 주인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은 이름은 ‘슬픈 수염의 기사’다. 창녀에게 귀부인의 사랑을 구하는 그는 우리가 볼 때 슬프고 가련한 사람이다. 연민을 거두고 이야기하자면 한마디로 미친 사람이다. 그러나 여관 주인은 돈키호테를 내쫓으라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그를 받아들였다. “미친 사람도 신의 자식입니다.”

알돈자는 자신을 ‘레이디’라고 부르며 칭송하는 돈키호테를 무시하면서도 자꾸만 끌린다. ‘궁금하다. 저 사람은 나를 왜 숙녀라고 하는 것일까. 모두가 무시하는 나라는 존재를 왜 귀하게 여길까. 글도 모르는 나에게 왜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것일까. 무엇보다, 왜 나를 알돈자라고 부르지 않고 둘시네아라고 부르는 것일까. 도대체 둘시네아는 누구일까?’

알돈자는 자신도 모르게 돈키호테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마음속에 담게 된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하다. 알돈자와 돈키호테를 괴롭히며 싸움을 벌인 노새끌이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러 갔다가 집단 강간을 당한다. 돈키호테가 말하는 기사도란 그 따위 것일 뿐이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자에게 돌아온 난도질.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알돈자는 돈키호테에게 소리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것은 바로 태어난 죄라고. 제발 짓밟아도 좋으니 꿈꾸게 하지 말라고. 나는 알돈자라고. 알돈자일 뿐이라고.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돈키호테의 조카의 약혼자인 까라스코는 마을의 신부와 함께 여관을 찾아가본 후 돈키호테가 미쳤다고 확신한다. 그는 돈키호테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에 직면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부는 의문을 갖는다. 과연 그 선택이 옳은 것인가. 돈키호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쳤거나 가장 현명한 이가 아닐까. 기실 까라스코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옳고 그른 것을 정확히 구분하고 분별하여 행동한다. 순수한 율법의 사람이다. 이렇게 되어 ‘야’ 하는 것이 있고 저렇게 되어 ‘야’  하는 것이 있다. 미친 것, 더러운 것, 틀린 것, 다른 것들은 바른 것, 깨끗한 것, 옳은 것,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그는 돈키호테에게 거울을 들이댄다. “돈키호테가 아닌 진짜 당신, 알론조 기하나의 얼굴을 보아라. 라만차의 기사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 당신이 꿈꾸는 모든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쓰러지고 결국 병상에 누운 알론조 기하나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쉬쉬한다. 그는 굉장한 꿈을 꾸었지만 이야기하면 날 미쳤다고 할 것이라며 이제 남길 것은 유언뿐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마지막 말을 뱉으려는 순간 알돈자가 찾아온다. 알돈자는 흐느끼며 매달린다. 나를 둘시네아로 불러달라고. 당신이 보았던 나를 기억해달라고. 알론조 기하나는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꾼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힘겹게 노래한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그는 그렇게 돈키호테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당신을 압니다
감옥 속의 연극은 끝이 났다. 세르반테스는 종교 재판에 회부될 것이고 결과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재판장으로 걸어간다. “여러분이 모두 라만차의 기사입니다.”

현실의 결말 또한 우리는 알지 못한다. 더 변해야 하고, 더 바뀌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가 아니었던가. 네가 변한다면, 네가 잘된다면, 네가 이룬다면 그때 너를 사랑하겠노라고. 지금 이 현실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으니까. 사랑받을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똥통의 구더기일 뿐이라고 소리치는 알돈자에게 돈키호테는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그대를 아오. 그대 속에서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는 보았소.” 누가 미친 것인가? 알돈자에게 둘시네아의 아름다움이 없는가? 그녀가 여관의 하녀라서, 창녀라서 그녀에게 고귀함과 존엄함이 없단 말인가? 현실이란, 이토록 진실의 적인 것이다.

진짜 당신은 누구인가. 알론조 기하나인가 돈키호테인가. 알돈자인가 둘시네아인가.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안의 빛을 그리고 당신 안의 빛을. 그대는 꽃 중의 꽃이며 별 중의 별이다. 미친 소리라고? 돈키호테가 산초의 뺨을 어루만지며 이야기하고 있다. “오 친구여, 마음을 열지 않고 어찌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겠나?”

이가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7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