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해야 할 한국 교회에 던진 ‘153교회’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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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해야 할 한국 교회에 던진 ‘153교회’의 모델
  • 박명철
  • 승인 2014.0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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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에 대한 관심과 효율적 관리를 충족하는 규모를 찾아
   

「153교회」 
오규훈 | 포이에마 | 248쪽 | 2013년 12월
 

목회의 본질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보다 집중하는 것이라면,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비효율적인 측면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성도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수도 없다. 저자 오규훈 교수(장신대)는 이런 딜레마를 인식하면서,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에 집중하여 목회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관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목회방법을 연구하는 가운데 규모가 가져다주는 목회에 대해 생각하였다. 목회방법론도 중요하지만 교회 규모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영적인 공동체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이 사회에 거룩한 영향을 끼치는 이상적인 모델의 교회를 일컬어 ‘153교회’라고 부르기로 하자. 새 모델로서의 ‘153교회’는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땅히 관계를 중시하는 공동체 중심의 교회이다. 관계를 지향하므로 ‘153’이라는 수식어에 방점을 찍는다. 교인의 수가 153명 수준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굳이 ‘153’이라고 끝 단위까지 규정한 까닭은,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물고기 숫자에서 힌트를 얻었다. 11절이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153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왜 153이란 숫자를 기록하였을까? 그물이 담을 수 있는 최대치라는 말? 그물이 교회라면? 한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성도의 최대숫자가 153명이라는 의미? 물론 이런 숫자놀이는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교인들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 곧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형성이 불가능해진다. 너무 적은 수도 문제가 있다.

교인의 규모에 관심을 두었으니 ‘153’이 상징하는 150명 규모의 공동체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 저자는 뇌과학, 사회학, 경영학 이론을 동원해서 150명 정도가 모인 집단이야말로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유대감을 가지고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특징이 있음을 밝히고자 애썼다.

사회학에서는 집단구성원이 150-200명을 넘어서면 조직이 계층화된다는 보고가 있다. 또 인류학자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공동체적 기능이 활발한 씨족의 규모가 150명 정도였다. 던바 교수가 호주 뉴기니 그린란드에 사는 원시부족을 조사하다가 마을의 평균 규모가 150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던바의 수’라 불렀듯이 이 수는 매우 공동체적인 성향을 띤다.

왜 ‘153’인가 하는 논의는 사실 그 다음의 주제, 즉 교회 본질을 수행하는 물리적 조건을 만드는 데 있다. ‘153교회’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목회는 다음 몇몇 단어들을 매우 중요하게 또 자주 사용한다. 진심, 내적, 공동체, 존중, 배려, 사랑, 친구 등이다. 의미 있는 관계를 이끌어내는 단어들이다. 공동체로서의 관계를 통해 교회는 예배와 교육, 선교는 물론이고 교우들과의 깊은 교제와 나아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시킨다.

대형 교회의 경우 교회의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한 사람의 성도가 많은 물질과 시간을 드려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또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 격려와 함께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위를 부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왔지만 교회의 열심과 노력이 교회 밖에 있는 세상보다 교회 안의 사역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결국 교회의 장로나 권사가 되는 필수코스로 변질된 부분이 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153교회’가 성장 대신 가치를 추구하는 교회로 거듭난 교회라고 규정한다.

한국 교회는 지금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형이 흔들리고 있으며, 흔들리는 새로운 지형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구조를 꼼꼼히 생각해 내야 한다. ‘153교회’ 모델에는 빈틈이 없지 않다. 그러나 빈틈이 있어서 논의의 여지가 생긴다. 이 논의의 과정은 지루하거나 실험적이어서 의지를 수반하지 않으면 멈출 수밖에 없다. 문제는 멈추면 다시 세울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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