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순 여사의 세월은 나비처럼 날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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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순 여사의 세월은 나비처럼 날아서
  • 박명철
  • 승인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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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상한 그녀>가 말하는 ‘노인공경’이라는 예의의 ‘가벼움’에 대하여

 

   

“나보다 아들 잘 키운 여편네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말로는 자신이 잘 키웠다 하면서도 오히려 잘 자라준 아들이 늘 고마운 오말순 여사. 그녀에게는 아들이 곧 훈장인 셈이다. 말순 여사의 훈장은 며느리를 제압하고, 노인들 속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자랑이다. 칠순의 말순 여사가 큰소리치며 살아가게 만드는 힘.

그런데 어느 날 말순 여사에게 남은 유일한 힘인 이 훈장의 위력이 시들해진다. 며느리가 쓰러져 병원에 갔는데 병의 원인이 스트레스다. 며느리의 스트레스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진단하던 아들과 손자들은 ‘할머니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할머니를 노인요양 시설에 모시기로 결정한다.

‘하얀 나비’의 그리움을 알기까지
우울한 말순 여사가 터벅터벅 거리를 걷다가 발길 닿은 곳이 사진관, 그래 더 나이 들기 전에 영정사진을 박아두자, 생각한다. 꽃단장을 하고 로마에서 휴일을 보내던 오드리 헵번처럼 화사한 표정으로 찰칵 사진을 박는 순간, 말순 여사의 시간은 50년 전, 가장 화려한 청춘의 몸으로 돌아간다. 이게 웬 떡! 더 이상 잘난 아들을 훈장 삼아 사는, 느리고, 냄새 나고, 고집 센 일흔 살 말순 여사가 아닌, 스무 살 꽃띠 ‘오두리(헵번)’로 돌아갔다. 기억하는가! 그 시절의 말순은 ‘카수’를 꿈꾸던, 타고난 목소리를 지닌 아가씨였음을!

어쨌든 여기까지는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하이라이트 한 장면을 위한 배경이고 분장이고 장치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젊고 화려한 무대에 선 스물다섯 살 꽃띠 ‘오두리’ 양이 ‘하얀 나비’(‘이름 모를 소녀’ ‘나그네’ 등으로 사랑받았으나 서른세 살에 요절한 싱어송라이터 김정호의 노래) 한 곡을 폭탄처럼 터트리기 위해 농축해 온 여정이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갔을까, 님 찾는 하얀 나비

웃음보다 눈물이 흔했던 ‘하얀 나비’의 시절이 흑백사진 같은 영상으로 흐른다. 한 사내의 짝사랑을 받던 아리따운 소녀였다, 말순은…. 깊이 사랑하여 결혼한 남편은 전쟁터로 떠난 뒤 주검으로 돌아왔다. 홀로 아들을 낳았으나 병치레를 달고 컸다. 길바닥의 시래기를 주워 배를 채우면서도 이 악물고 그 아들 하나를 어엿한 학자로 키워 냈다. 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면서도, 어찌하든 목숨 하나 붙잡아야 했던 세월이었다. 칠순이라는 세월이 오기까지 말순 여사의 시간은 그리도 아프고 고통스럽고 굴곡 깊었다.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칠순의 말순 여사는 젊은이들이, 아니 손자들이 생각하듯, 아니 아들조차 오해하듯, 어느 날 갑자기 툭 떨어진 호박처럼 그렇게 고집 세고, 냄새 나고, 쪼글쪼글하지 않았다. 나락 한 알에 우주가 담겼다고 했던가! 말순 여사의 70년 세월에도 눈물과 땀과 한숨과 희망이 숨 막히게 빼곡히 담겨 있었다. 우주가 달리 우주인가, 그 시간이 우주인 것을.

영화를 보면서 그 순간 비로소 마음 밑바닥에서 거친 목소리가 치솟았다. 그것은 말순 여사의 항변이었고,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항변이었다. ‘노인을 공경한다고? 너희들이 뭘 안다고 나를 공경해? 내가 살아온 세월을 너희들이 어찌 알어? 내가 살아온 그 세월을 향해 애썼다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너희들이 아니야. 바로 나뿐이야. 나만이 나를 공경할 수 있다고.’

모른다, 우리는 아버지를 모른다
타이베이 출신의 중화권 문화비평가인 룽잉타이가는「눈으로 하는 작별」(사피엔스 펴냄)이란 책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사회적인 이슈들이 단지 사소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생의 큰 깨달음 하나를 얻어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 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그렇게 천천히 이해하는 과정은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를 만나는 여행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룽잉타이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컴퓨터 앞에 앉아 써 내려간 글은 그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아버지는 1918년 겨울에 태어났다. 우리는 모른다. 후난 산골짜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산골짜기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폭설도 자주 내렸다. 낡은 집은 몰아치는 눈보라를 제대로 막아 주지 못했을 텐데.” 이렇게 시작하는 짧은 자서전인 셈이었다.

룽잉타이의 여행은 ‘모른다’로 시작하여 ‘모른다’로 끝난다. 그렇다. 우리는 모른다. 일곱 살의 아버지가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학교에서 집까지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산길을 혼자 걸으면서 무섭지는 않았는지? 아직 어린 티도 벗어나지 못한 열여섯 살 아버지가 당신의 엄마와 어떻게 이별하였는지? 포탄이 날아들고 총성이 멎지 않는 전쟁터에서 장자莊子를 읽고 당시唐詩를 읊었던 까닭도 알 수가 없다.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네 아이를 키워 내기까지 얼마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도 알 수 없다. 학비를 마련하느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웃에게 돈을 꾸러 다닐 때,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야만 했을지, 한 번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룽잉타이가 그렇게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은, 어쩌면 끝내 아버지의 중심에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의 세월은 아버지만 살았으므로.

그러니 우리는 모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월조차 모른다. 그리고 이별한다. 그 이별을 또 나의 아이들과 나눌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그저 룽잉타이처럼 우리 앞에서 보인 아버지의 눈물을 기억할 뿐이다. 아버지가 등불을 켜면 진정표(陳情表)[중국 진(晉)나라 때, 이밀(李密)이 지은 글. 무제(武帝)가 자신을 세마(洗馬)로 임명하자, 자신이 아니면 나이 아흔인 조모(祖母) 유씨(劉氏)를 봉양할 사람이 없기에 벼슬에 나갈 수 없다는 사연을 적어 올린 글]를 외워 바쳤고, 늙은 할머니를 봉양할 이가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언제나 아버지가 먼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출사표(出師表)[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재상 제갈량(諸葛亮)이 선주(先主) 유비(劉備)의 사후에 출진함에 있어서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적어 올린 글]를 가르치던 아버지의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예의는 얼마나 티끌 같고 먼지 같은가.



[뱀의 발] 성경에서 요셉의 이야기가 정점에 이를 때 거기서 아버지 야곱이 등장한다. 이집트에 도착한 야곱이, 이 나라의 이인자를 아들로 둔 아버지 야곱이, 바로 앞에 섰을 때 바로가 묻는다. 그대의 나이가 얼마인가? 그리고 야곱의 대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한 절 시 같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입니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비하면 내 나이가 얼마 못 되지만(돌아보니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야곱의 백삼십 년. 그렇다, 험악한 세월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야곱의 백삼십 년을 어찌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 세월을. 그래서 나는 야곱이 애틋하다. 야곱의 눈을 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간절하고 절박한 무엇, 하나님이 계셔야만 비로소 위로받을 수 있을 듯한,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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