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꿈꾸면 세상도 튼튼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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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꿈꾸면 세상도 튼튼해져요
  • 서정인-박명철
  • 승인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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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우리도, 모두가 고마운 ‘컴패션 10년’의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전쟁고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학교에 보내고, 건강을 챙기며 부모의 사랑을 전해준 에버렛 스완슨Everett Swanson 목사. 이것이 컴패션의 시작이었고, 그때부터 1993년까지 컴패션은 10만 명이 넘는 한국 어린이들을 컴패션의 원칙에 따라 1대1 관계를 맺어 양육해 왔다. 그리고 1993년 컴패션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축하하며 철수하였으며, 2003년 후원을 받는 나라가 아닌 후원국으로 한국컴패션이 새롭게 출발했다. 서정인 목사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컴패션을 섬겼으며, 놀랍게도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컴패션은 세계의 12만 명이 넘는 어린이를 후원하는 기관으로, 컴패션 11개 후원국가들 중 두 번째 후원규모를 갖추었다. 서정인 목사는 이 책 「고맙다」를 통해 한국컴패션 10년의 시간은 후원을 받는 어린이들과 그 가족은 물론, 후원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맛본 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어린이는 힘이 세다”

엘살바도르 마약소굴에도 가정집의 마당을 빌려서 컴패션과 손잡고 어린이들을 돌보는 교회가 있다. 공짜로 가르치고, 먹여주고, 놀아주는 목사님과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그중 한 소녀의 아버지가 마약 유통에 관여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이곳에선 흔한 일인데 이럴 경우 대개 아내가 도망을 가고 가정은 깨지고 만다. 소녀의 엄마도 아버지를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있을 때 소녀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가 떠나면 예수님이 아빠를 사랑하시는 걸 누가 알려줘? 누가 아빠랑 함께 있어? 예수님이 아빠도 사랑하시잖아.’ 짐을 싸던 엄마는 딸의 말을 듣고 다시 짐을 풀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감옥에서 펑펑 울었다. 아버지는 모범수로 일찍 풀려났고, 교회로 나왔으며, 성실한 아빠가 되었다. 

「고맙다」는 이처럼 ‘어린이’의 특별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글들로 가득하다. 어른들이 처한 절망을 어린이들의 샛노란 희망으로 채색하는 장면들 속에서 눈시울이 찡해온다. 새삼 어린이의 힘을 깨닫는다. 이 풍요로운 대한민국에서 정작 놓쳐버린 ‘어린이’의 가치, 그것이 무엇인지 서 목사에게 물었다.
“어린이는 어른과 달리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어서 그 심령에 무엇을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평생이 결정됩니다. 곧 굳어질 시멘트 반죽을 어디에 붓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결정되는 것과 똑같지요. 그러니 어린이들에게 예수의 심장과 형상을 심는 일은 무엇보다 가치 있고 보람 있습니다. 현장에 가보면 어떤 종교를 가진 아이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 눈빛이 달라지고 삶이 변합니다. 자기가 먹을 한 끼 음식을 먹지 않고 아껴서 배고픈 형제들과 나눠먹고, 먹을 것이 없을 때 울고 불평하던 아이들이 이제 기도하기 시작하죠. 부모는 내 아이가 달라졌다며 교회에 달려와 목사님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어린이의 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컴패션 사역이 일어나는 모든 지역에서 어린이는 부모를 변화시키고, 마을의 어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보면서 가슴이 들뜨는 체험을 해요. 아마 한국 땅에서 컴패션을 시작하신 스완슨 목사님을 들뜨게 만든 힘도 이것이지 싶어요. 그래서 그분이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한국의 어린이를 잊지 마십시오’라고 유언을 남길 수 있었을 겁니다.”

한국 교회가 놓쳐버린 ‘영혼에의 갈증’

10년 전, 한국컴패션이 후원국으로 첫걸음을 내디딜 때, 서정인 목사는 후원자 발굴을 위해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어린이들의 얼굴을 홍보영상에 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필리핀에서 있는 쓰레기장의 쓰레기를 먹으며 살아가는 어린이 모습을 촬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악취와 자욱한 쓰레기 먼지들이 가득한 그곳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한 아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것을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잽싸게 카메라를 들었다. 그 순간 렌즈 속으로 보이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서 목사를 향해 ‘저도 알아요. 여기 버려진 쓰레기처럼 저도 버려진 존재라는 걸요. 하지만 제발 저를 그렇게 보지 마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 내 눈에는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구나’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마치 깜냥도 안 되면서 남의 자식을 돕겠다고 덤비다가,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며 아이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진짜 아버지와 정면으로 만난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의 마음과 달랐다. 이후 컴패션은 어떤 유혹이 와도 절망에 빠진 어린이의 모습을 드러내어 홍보하지 않았다. 10년이 흐른 지금 그렇게 고집을 꺾지 않았던 것을 서 목사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10년 동안 달려온 컴패션, 그리고 그 10년 동안 끝없이 추락한 한국 교회, 둘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온 듯 보인다. 그 사이 한국 교회가 놓쳐버린 것이 있지 싶었고, 컴패션이 그것을 알 것 같았다. 그게 뭘까?

“책에서 빠진 이야기인데, 6년 전 엘살바도르에 갔을 때 그곳에서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게릴라들이 사는 지역으로 한 목사님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 자신의 집 마당을 예배처소로 삼아 컴패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자 부모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집을 개방하여 식당이나 공부방 등으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변화를 부인하지 못하는 법이죠. 교회는 날로 교인이 늘어나 7년이 지났을 때는 어른만 4000명이 넘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이 교회 목사님이 저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한국 교회의 목사님들은 모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여 기도 부탁을 곧잘 합니다. 제가 놀란 건 그 다음입니다. 목사님은 찬양팀에서 기타를 맨 학생을 가리키며 저 아이가 폐암이니 기도해 달라 하고, 또 다른 학생을 가리키며 저 아이는 어디가 아픈데 기도해 달라 했습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제목에 매달리는 이런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으세요? 저는 ‘아, 이것이 끊임없는 성령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더 놀라운 건, 제가 그 목사님의 집을 방문해서였습니다. 학교도 있고, 건물도 지은 교회의 목사님 사택이 다 쓰러져가는 어린이들의 집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엘살바도르의 어느 목사님은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을 치를 비용이 없었대요. 사모님이 은행을 찾아가 집을 담보로 장례비용을 대출 받으려고 했더니 목사님이 아이들을 위해 대출을 너무 많이 받아서 더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추락하는 한국 교회가 회복되는 길이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한 생명을 살리는 현장에서, 그 과정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고, 또 그 일에 우리가 함께했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하면 비로소 사도행전의 기록처럼 하나님께서 그 수를 더하실 것입니다. 우리에 비해 그들은 재정도 빈약하고, 프로그램도 없으며, 교인들의 지적 수준도 낮지만 놀랍게도 거기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부흥의 시간이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그곳의 목사님이나 선생님들은 예수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심령들을 어떻게든 예수님께로 불러와야겠다는 간절함에 목말라 있죠. 하나님은 이런 낮은 마음으로 찾아오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준 ‘가난’

“가난이 무엇인지 아세요? 가난은 단순히 무엇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이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희망과 꿈을 박탈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세요?” 국제컴패션의 총재였던 웨스 스태포드의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것’(막14:7)이라고 말씀하신다. 대체 그리스도인에게 가난은 어떤 의미일까? 가난과의 싸움이기도 한 컴패션 사역을 통해 서 목사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하나님 입장에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가난이 존재함으로써 우리의 본질적인 사명, 곧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할수록 그 고통 속에 함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니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그곳에 우리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겠죠. 그러니 우리는 내가 받은 복만큼, 하나님의 마음이 쏠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복을 나누어주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는 통로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은혜로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생각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충만하게 채우는 길이 된다는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도 이해하게 됩니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통 받는 대상을 상징하는 두 단어 고아와 과부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며,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처럼 ‘나는 너희들 방식의 예배와 기도를 원하지 않고, 너희들이 금식을 통해 나와 영적인 만찬을 원하지만 나의 만찬은 고아와 과부들 사이에 있다’고 하신 말씀도,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곧 경건이라는 말씀도 와 닿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향함으로써 받게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린 ‘고맙다’

“저는 어린이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하는 컴패션 안에서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사람을 바꿉니다. … 제게 있어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은 ‘내려놓음’이 아니었습니다. … 이 일은 제게 ‘누림’이었습니다.” 서 목사에게 컴패션 10년은 그렇게 특별한 신앙고백과 함께 기록되었다. 그리고 ‘고맙다’라는 메시지의 깊은 의미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컴패션 10년의 감동,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때에 만나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심장으로 컴패션과 함께 뛸 수 있게 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변화를 보시면서, 마치 부모가 자녀의 희망을 보며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도 그렇겠죠.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이 이뤄진 과정들을 보면서 부둥켜안고 우리가 하나님께,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CTK 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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