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가다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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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가다 [구독자 전용]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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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그들’ 속에서 배운 것들

1년 전쯤, 매일 이른 아침 나는 어느 소그룹 모임에 나갔다. 그 모임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AA]에 소속되어 있었다.

Alcoholics Anonymous: 1935년 빌 윌슨Bill Wilson과 밥 스미스Bob Smith가 미국에서 설립했으며, 현재는 국제적 규모의 단체이다. AA의 12 단계 회복 프로그램은 알코올중독자들이 스스로 치유를 돕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내가 거기에 가게 된 것은 술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친구 몇 명이 그 모임에 나가고 나서 술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었고, 종종 그곳에서 겪었던 아주 흥미로운 경험들을 내게 얘기해 주곤 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도대체 무슨 얘기들을 나누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참여할 수 있는 모임들이 점심시간, 저녁시간, 한밤중 등 시간대별로 여럿 있었는데, 나는 오전 6시 30분 모임을 선택했다. AA 모임은 임대를 하거나 또는 임시로 빌린 공간에서 진행되고(AA는 부동산이 없다), 원하는 사람이 모임을 만들고(AA는 직원이 없다), 대중 광고도 하지 않았다(AA는 홍보를 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내가 AA 모임에 나가 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자 몇몇 친구들은 걱정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한 친구가 말했다. “네가 그 모임에서 나오는 걸 누가 보면 어쩌려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고든은 술 때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소문날까 걱정되지도 않아?”

솔직히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예수께서도 술 마시는 상황에 몇 번 함께 하셨지만 그리 걱정하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문해 보았다. 예수께서도 AA 같은 곳에 관심을 갖지 않으셨을까? 인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런 모임에 공감하지 않으셨을까 말이다.

내가 참석한 모임은 소위 ‘자유주의 교회’의 지하실에서 열렸다. 그곳에는 철제 접이식 의자 17개가 둥글게 놓여 있었고, 의자마다 12단계 회복 프로그램의 ‘바이블’ <빅 북>The Big Book이 한 권씩 놓여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양 옆 두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고(성은 빼고 이름만)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사실 모임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 넷이 차례로 내게 카드를 써 주었는데, 이런 식이었다. “저는 존(또는 브라이언, 또는 알렉스)이라고 하는데, 밑에 제 연락처를 적어 두었으니 언제든 전화하세요. 친구가 필요할 때 가서 도와드릴게요.”

그들은 내가 언젠가는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었다. 6시 30분 정각이 되자 조용해졌다. 참석자 17명은 커피나 콜라가 든 컵을 손에 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음악이나 영상도 없었고 이제 뭘 하겠다는 제안도 없었다. 그날 진행을 맡은 사람(매일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는다)이 새로 온 사람들에게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고 서로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환영인사를 했을 뿐이다.

“제 이름은 제프이고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진행자가 말하자, 모두들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로베르타이고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제 이름은 토드이고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이렇게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인사를 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로베르타.” “안녕하세요? 토드.” 나는 곧 여기 모인 남녀가 이미 수개월 동안, 어떤 경우에는 수년 동안, 이런 식으로 자기를 소개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매일 아침 자기소개를 하는 것은 중요한 절차로 보였는데, 그렇게 해야 나처럼 새로 온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순서가 되면 어찌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살짝 거짓말을 해야 하나? “제 이름은 고든이고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이렇게 적당히 맞춰 줄까? 하지만 나는 알코올중독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밝히지 않기로 맘먹었다.

“제 이름은 고든이고 … 그리고 처음 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고든 … 계속 오세요. 계속 오세요.” 사실 이런 인사말은 우리가 교회에서 뭐라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주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는 것처럼, AA의 상투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어리석은 마음 한 구석―이런 마음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에서는 내 소개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저는 책을 몇 권 집필하고 있고 언론에 글도 씁니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강연도 하고 있고요.’

하지만 거기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오로지 내 인생이 술 때문에 얼마나 망가졌는지, 그들이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그것뿐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라인홀드 니버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평정을 구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정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 기도에 대한 나의 느낌은 어땠을까? 그것은 훌륭한 기도문이었다. 그저 만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원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별 탈 없는 단어들을 적당히 나열한 기도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 파탄 난 삶에 처해서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들(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과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는 것들(그래서 용기를 내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더 나아가, 뭐가 뭔지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다음에 진행자가 <빅 북>에 있는 페이지를 말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찾아 예닐곱 페이지를 읽게 되는데, 각자 한 문단씩 소리 내어 읽는다. <빅 북>에는 술의 유혹에 빠져 들었다가 회복(그리스도인들의 ‘구원’과 같은 의미)된 수많은 남녀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오랫동안 AA 모임에 나왔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는 것을 전혀 지루해 하지 않았다.

나도 그 이야기들을 여러 개 읽어 봤는데, <빅 북>에 있는 이야기들에는 어떤 비슷한 패턴이 있었다.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궤도를 이탈하게 되고, 그래서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해 약을 먹듯 선택했던 것이 술이었다. 술은 이내 인생 전체를 지배하게 되어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어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직업도 잃게 되었다.

그러다 이야기 흐름이 바뀐다. 일종의 전환점이다. 그렇게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상태를 발견(모임에서는 “바닥을 쳤다”고 표현한다)하고는 도움을 청하게 된다. AA에 가입하고 회복 프로그램을 따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변화는 쉽게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변화는 찾아왔다. <빅 북>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변화된 삶이 어떤 것인지 들려주며 끝을 맺는다. 그저 평화롭고 완전하기만 한 삶은 아니지만 보람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한때 술주정뱅이였던 사람들이 다른 알코올중독자들을 AA로 인도함으로써 자기 세계에 기여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매일 아침 읽던 그 이야기들을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그 첫날 아침, 이야기들을 읽고 나서 무엇을 배웠는지 돌아가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각자 2~3분 정도 얘기를 했는데, 터무니없고 멍청하고 설득력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몇 있기는 했지만, 나머지 모두 설득력 있고 감동을 주고 확신을 갖게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 이야기들을 들었으면 하고 바랐다.

한 남자가 말했다. “저는 베트남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내가 저질렀던 살육에 대한 기억을 잊으려면 어쩔 수 없었죠. 우리 부대는 며칠 동안 집에 불을 지르고 마을에 총을 갈겨대고 적과 내통할지 모르는 놈들을 죽인 다음 숲을 빠져 나오곤 했습니다. 내가 저질렀던 일들을 잊으려면 최대한 술에 취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어요. 베트남에서 돌아왔을 때, 저는 정상적인 삶에 다시 적응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또 다시 술에 취하게 되었죠. 그때가 35년 전이고, 그 뒤 28년 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셔댔습니다. 아내와 자식들도 저를 떠나 버렸고 직장을 계속 다닐 수도 없었어요. 여기저기 보호소와 재활원을 떠돌았죠.

그러다가 이 프로그램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90/90’(90일 동안 90번의 모임에 참석)을 마쳐야 한다고 들었어요. 회복되리라는 어떤 희망을 가지려면 말이죠. 그래서 그걸 마쳤고, 그러다가 후원자도 생기고 ‘12단계 회복 프로그램’ 과정도 밟아 나가게 되었죠. 중간에 다시 술에 빠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6년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7년 기념 칩’을 받게 될 겁니다.” (여기에서 나를 포함해 모두가 박수를 쳤다). 치료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칩을 받는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그 다음 모임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모두가 성공 스토리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술에 빠졌다가 다시 돌아왔고, 아예 포기한 사람도 많았고, 또한 비극적으로 끝난 이야기도 많았다.

켈리라는 여자의 이야기는 이렇다. “저는 8년 동안 술을 끊었더랬어요. 자그마치 8년 동안을요. 그러다가 지난 8월 한 친구가 술을 한 잔 하라고 권했는데, (욕설) 술이 예전 그 맛인지 궁금해 딱 두 모금을 마셨어요.”

켈리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했다. “(욕설) 겨우 두 모금! 그러고 나서 제가 기억하는 것은 지난주예요. 그러니까 넉 달 후죠. 생각해 보세요. 저는 넉 달 동안 술에 절어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이제 다시 술을 끊은 지 9일이 되었어요.” (프로그램 참가자가 술을 다시 입에 대면 AA에서는 다시 맨 처음부터 과정을 밟게 한다.) 켈리의 경우, 술을 끊고 지냈던 8년이라는 시간이 먼지처럼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내 얘기를 해야 할 차례가 되자 나는 처음 모임에 나왔을 때처럼 난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 모임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곳이라고 되어 있었고, 여러분도 저처럼 술 마시지 않는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문제 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얘기를 듣는 게 좋고, 또 솔직하게 그런 얘기들을 털어 놓는 여러분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만약 별 문제가 안 된다면 다시 오고 싶네요.”

“계속 오세요, 계속 오세요.” 그들은 말했다. 그 순간 마치 회사에 입사해서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처음 받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줄곧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느낌으로 앉아 있었고, 언젠가는 ‘나도 알코올중독자예요’ 하고 말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자 사람들은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평안의 기도를 다시 한 번 했다. 사람들은 서로 끌어안았고 심지어 나를 껴안기도 했다. 우리는 의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고 각자의 일터로 출발했다.

그날 이후 여러 달 동안 할 수 있는 한 자주 그 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종종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 아침 네 시에 잠에서 깨고는 여기에 올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었어요. 저는 여러분이 너무나도 필요해요. 이 모임을 마치고 나면 저는 굉장히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24시간 동안 술 없이도 살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주일예배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유일하게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참석하던 나는 그 모임에 대해 어떤 느낌이었을까? 모임이 끝나고 나면 나는 깊은 감명을 받곤 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까. 모임을 마치면 마치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느낌을 갖고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들에게 그 모임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자리였다. 내 영혼이 무언가 그들의 진솔함으로 채워진 듯했다. 그 모임에서는 털끝만큼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는 열린 마음뿐이었다. 무엇이든 속 시원히 털어 놓을 수 있었다.

그 모임에 참석하던 수개월 동안, 다른 사람의 성이 무엇인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사회적 지위가 어떤지 전혀 얻어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주된 관심은 오로지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알코올중독자들에게 ‘회복 프로그램’이란 단어는 매우 소중하다. 어떤 알코올중독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저는 회복 프로그램을 사랑해요.” 또는 “모든 것이 회복 프로그램 덕분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간단하다. 규칙적으로 모임을 갖고, 책임감 있게 인생을 살도록 붙잡아 주는 지지자를 찾아내고, 12단계 과정을 차례대로 밟아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12단계가 끝나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1단계부터 과정을 반복한다. 대단한 삶의 교훈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멋진 미래를 보여주지도 않고, 엄청난 성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자기 얘기를 들려주며 술 취하지 말고 살도록 서로 격려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AA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협회는 1930년대 중반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의사였던 밥 스미스와 빌 윌슨이라는 두 사람의 알코올중독자가 만나 시작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오하이오 주 아크론에서 만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희한하게도 책임감 있게 살도록 서로 붙잡아 주자고 약속하고는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단체를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 프로그램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12단계’로, 어떤 알코올중독자가 ‘회복’이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과하게끔 만들어 주는 삶의 원칙들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1단계: 우리는 술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4단계: 우리는 스스로 두려움 없이 지켜나갈 윤리적 행동 목록을 만든다. 8단계: 우리는 우리가 피해를 입혔던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보상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12단계: 우리는 이 소식을 다른 알코올중독자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한다.

내가 12단계를 읽어보고 느낀 소감을 ‘매우 성경적이었다’라고 말한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12단계는 성경 기자들이 죄의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기술해 놓은 것들과 매우 흡사하다. 12단계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의 삶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임에서 한 남자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만약 당신 오른편 남자가 길에서 박스를 깔고 자는 사람이거나 왼쪽 여자가 몸 파는 여자라면 어떨 것 같아요? 그땐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뭔가 잘못 짚으신 것 같네요. 이 모임에서는 거지나 창녀 같은 개념은 없어요. 우리는 그저 하루라도 더 술 취하지 않고 살기 위해 서로 돕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잠자리가 어디고 직업이 뭐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싸우고 있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알코올중독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은 종종 이른 아침에 일어나 영적 위로를 주는 종교 서적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고 묵상한다. 그들은 일주일에 몇 차례씩 모임에 참석하고, 어떤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경우 하루에 두 번씩이나 모임에 나가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종종 후원자나 동료 중독자들과 매일 연락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 동료 중독자들 역시 치료 중에 있지만 모두들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날카로운 질문과 신랄한 비판을 던지기도 하고 자신과 남을 속이는 거짓말들을 잘 찾아내곤 한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없을까? 사실 제법 된다. 실패율이 70% 정도 된다고 하니 말이다. 7년 동안 술과 아예 담쌓고 살았다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더 이상 나약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게 되지만, 그런 사람이 맥주라도 한 잔 마시게 되면 또 다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지난 1년을 돌아보니 그곳에서 몇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알코올중독은 성경에서 죄라 일컫는 것의 양상을 내가 아는 어떤 것보다도 실례로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뇌를 비뚤어지게 만들어 상식을 파괴하고 이기심을 촉발하고 명백한 진실을 왜곡한다. 알코올에 중독되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자기를 비난하려고만 한다고 믿는 전형적인 증세를 보인다.

그런 망상 증세로 자신의 삶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바닥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치료의 과정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 다음 환자는 시편 기자들처럼 마침내 절규하게 되고 깊은 사망의 골짜기를 빠져 나오려 때론 고통스럽지만 서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그 발걸음은 하나님을 찾으면서 시작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정컨대 그때의 하나님은 신학적 기준에 맞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시작을 해야만 한다.

■진솔함. 알코올중독자가 갱생모임에 나오려면 자신의 “파탄에 이른 삶”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차라리 나오지 않는 편이 낫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짓말로 꾸미는 이야기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얘기들을 참고 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AA 모임에서는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파탄에 이른 상태이고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다는 기본적 가정에서 출발한다.

우리 교회에는 영적 파탄(또는 죄)를 고백하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그런 고백이 있을 때 사람들은 때로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회개한다는 것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회개의 가치는 ‘탕자’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회개한 사람을 어떻게 따뜻이 맞아줄지 아는 데에 있다. AA 모임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거의 매일 회개의 말을 들을 수 있다.

한 여자가 이런 고백을 한 적 있다. “어제 마트에 갔는데 제가 어느덧 와인 코너 앞에 서 있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거기로 갔던 걸까요? 하여튼 저는 그 예쁜 와인 병들을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심지어 와인 병 몇 개를 손에 쥐어 보기도 했어요. 마치 남자들이 포르노 영화를 감상하듯 심취해서 바라보았죠. 병을 따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22년 동안이나 술을 끊고 사는데, 이 망할 놈의 욕구는 결코 떠나질 않는구나.”

■받아들임. 만약 당신이 AA 모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이다. 나는 전에 마약 때문에 또는 지독한 냄새나 비이성적인 말과 행동 때문에 배척당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AA 모임에서는 누구라도 환영받는다. 어느 누구나 앞으로 12단계를 밟아 나갈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내가 보기에 서른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캐시라는 여자가 처음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그녀에게는 스물한 살쯤에는 영화배우라도 했을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부어 있었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이빨은 썩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감지도 않은 채 빗질도 하지 않아 머리카락이 얼마나 긴지 알 수도 없었다.

“저는 지난 여러 달 동안 다섯 주를 떠돌아 다녔어요. 여러 날을 다리 밑에서 잠을 잤고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고 강간도 당했고 도둑질도 당했어요. (그녀는 울며 얘기를 이어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더 이상 집도 없이 살기는 싫어요. 하지만 (엉엉 울며) 술을 끊을 수가 없어요. (엉엉)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요. (엉엉) 정말이지….”

캐시 옆에는 마릴린이라는 약간 뚱뚱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12년 동안 술을 끊고 있었다. 마릴린은 두 팔을 뻗어 캐시를 끌어당겼다. 마릴린의 큰 가슴에 캐시의 얼굴이 파묻힐 만큼 가깝게 끌어안았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있었기에 마릴린이 캐시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걱정 마세요. 곧 좋아질 거예요. 이제 우리와 함께 하게 됐잖아요. 당신 문제를 같이 해결해 봅시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여기에 계속 나오는 거예요. 알겠죠? 꼭 오세요.” 그리고 마릴린은 캐시의 이마에 키스를 해 주었다.

나는 충격을 받아 아찔함을 느꼈다. 간단한 말들이었지만 애정과 사랑이 담긴 그 말들! 어쩌면 이리도 예수님을 닮아 있을까? 그날 아침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질문들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우리 교회에서도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교회에도 캐시 같은 사람이 자기 얘기를 고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또한 마릴린 같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응답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AA에 관해 비난을 퍼붓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렇다. AA의 치료 운동은 하나님보다도 더 큰 “능력”을 선호한다. 예수의 이름이나 구원능력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마치 교회를 얕잡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AA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한때 교회를 열심히 다녀 봤지만 교회에서는 그들의 문제에 관해 해답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AA 모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서야 그들은 비로소 뭔가 도움이 되는 구원의 실마리를 얻었던 것이다.

아니, 나는 AA의 운동에 반대하는 수많은 주장들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12단계 과정은 이미 내가 성경에서 보았던 변화의 방법들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걸 통해 무슨 열매를 맺었느냐고? 그것은 바로 알코올중독에서 치료되고 변화되어 다른 이들을 돌볼 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찾고자 하시는 인간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서 만났던 여인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았던가?

총알이 날아가게 그냥 내버려 두자. 나는 우리 애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달리 불렀을 때 느꼈던 복잡한 심정만큼 하나님께서도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때 얼마나 근심하실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우리 애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지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회복 프로그램 과정에 있는 중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고 혼자서는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 구원에 이르는 길도 비슷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공동체. 나는 내 삶의 전체를 교회의 일원으로서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복음이 선포되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열심히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AA 모임에서 목격했던 정도로 깊이 있게 서로 돌보고,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고,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교회에서 본 적이 없다.

AA 모임에서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한 교회의 일원이었고, AA 모임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얼마나 자기 교회에서도 해 주기를 갈망했던가 하는 것이다. 나는 AA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공개석상에서 여러 번 얘기했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들이 다가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저도 빌의 친구예요.” (여기서 ‘빌’이란 호칭은 AA 입회 증명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요청하고 싶다. 만일 교회 지도자들이 AA 모임에 나가는 사람들을 찾아내 같이 앉아서 몇 가지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거기서 하는 일들 중에 우리가 알아 두면 좋은 게 뭐가 있죠? 우리가 사람들을 더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채택할만한 방법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하셨으면 하는 일을 거기서는 어떻게 하셨죠?” 나는 이것이 굉장히 유익한 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고든 맥도날드 <리더십 저널>의 편집인이며 덴버신학교 명예총장이다. 또한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한국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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