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자료실]‘갈등’을 바라보는 3가지 건강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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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자료실]‘갈등’을 바라보는 3가지 건강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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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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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사라예보를 떠나 세르비아 군에 입대한 한 남자가 있었다. 당시 세르비아 군은 사라예보를 폭격 중이었다. 그는 그 폭격에 의해 아파트가 파괴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들이냐 우리냐 둘 중 하나야.” 그의 말은 ‘우리가 이곳에서 살거나 그들이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파괴하거나 그들이 우리를 파괴할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크든 작든,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전쟁터이든 도시의 거리이든 거실이든 교수 휴게실이든, 모든 전쟁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배타적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 대 우리’, ‘그들의 이익 대 우리의 손해’, ‘우리 아니면 그들.’ 대립이 강할수록 사회적 세계의 다양한 구성 요소가 주는 풍부함이 사라져 버리고 노골적인 배제의 양극단이 나타나 모든 사고와 실천이 그것을 중심으로 재배열된다. 다른 선택은 없고, 중립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무죄함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 사회적 세계를 탈출하지 않으면, 노골적인 양극성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 “선택의 여지가 없어.” 배제로 이어지는 양극성의 내적 논리를 상기시키며 사라예보 출신의 그 남자는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정말 옳은가? 배제로 이어지는 양극성의 논리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인가? “선택의 여지 없는” 상황이 정말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선택은 “우리가 아니면 그들”이라는 조건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의지와 용기, 상상력만 있다면 노골적인 양극성을 극복할 수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 배제와 포용, 박세혁 옮김, IVP, 155-156쪽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우리는 본질상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기 좋아하고 원수 갚으려 하는 경향이 마음에 가득한 자들이다. 사실 히브리서 서신을 받고 있던 당시 성도들은 동족들에게서 맹렬한 반대와 핍박을 당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그들을 향해서 모든 이들과 화평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동료 성도들과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외인들과도 화평해야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그처럼 욕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조차도 악을 되갚아 주고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화종부 목사(남서울교회), 피스메이커, 제32호(2013_9_1)

■ 동의하지 않을 자유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선물 가운데 하나이자, 그 위대한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견을 드러낼 때 더 좋은 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이견이 독기와 증오로 가득 차 있거나 폭력적이라면 시민사회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킬 것입니다. 의견에 강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우리 안의 차이를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끌어안는 법을 배울 때 갈등이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엔진으로 보다 나은 사회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계속 이끌어간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17쪽(‘한국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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