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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집에서 예수의 품으로불교 집안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다
알렉산더 추  |  Alexander 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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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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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부모님의 독경 소리를 들었다. 명상이 두 시간이나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 부모님은 정신을 맑게 하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주문을 반복하셨고, 부처의 절대 진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셨다.

아침마다 나는 향냄새에 깼다. 명상을 위해 따로 마련된 방에는 불상이 있었고, 오렌지와 파인애플 케이크가 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리 집은 마치 절 같았다. 벽 마다 부처 초상이 걸려 있었고, 갖가지 불상이 30개나 되었다. 부모님은 규율과 지혜, 사성제四聖諦에 따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말씀하셨다.

우리 집이 태국이나 중국의 어느 길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내 삶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곳은 전설적인 캔자스 제이호크스Kansas Jayhawks[캔자스대학교 농구팀]의 본고장, 캔자스 주 로렌스에 있다.

아버지는 과학 교수, 어머니는 삼남매를 키우신 가정 주부셨다. 구겐하임 상Guggenheim Award[‘존 사이먼 구겐하임 기념 재단’이 인문학과 자연과학, 예술 분야에서 업적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상] 수상자인 아버지와 ‘호랑이 엄마’를 둔 덕에 나는 항상 A 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대만계인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믿었다. 종교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고, 내 정체성 형성의 중심이 되었다. 그렇지만 집밖에는 전혀 다른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나는 바이올린을 연습했는데, 내 관심은 밖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에 가 있었다. 잘 차려입은 이웃의 가족들이 몇 블록 아래에 있는 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 모습을 창밖으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스즈키 교본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18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않고 지냈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크게 뜨다

1990년대 중반에 나는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UIUC에 입학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대학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마음껏 누리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UIUC를 선택한 것은 이 학교의 공학 프로그램과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고, 게다가 이 학교의 다양성과 활발한 학생 활동도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로렌스에서 살 때는 내 민족 정체성을 떠올릴 때가 자주 있었지만. UIUC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모와 성장 배경이 나와 비슷하고, 또 백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문화 속에서 이중 문화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공감하는 사람을, 한 두 명이 아니라 동아리 전체로 만나게 되었다.

기숙사에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가득했다. 기독학생회IVF 학생들은 끈끈한 유대관계 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아시아계 미국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가령 목적이 있는 삶과 이웃을 위한 삶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불교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지고 있던 2학년 어느 날 나는 친구에게 기독학생회 모임에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곳에서 나는 찬양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처음으로 들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초신자 그룹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권위는 나를 놀라게 했다. 마치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책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직접 들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동안은 성경이 비과학적인 창조 이야기와 역사적 신뢰성이 떨어지는 내용인 것 같아 새로운 믿음에 헌신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자 소그룹 성경공부 리더는 끝이 보이지 않는 철학적인 질문보다 예수님의 인격에 초점을 맞춰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계시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하자, 창조론과 성경에 대한 의문은 저절로 사라졌다. 그리고 대중 매체에서 기독교를 비정상적이고 편협하며 비판적이라고 묘사하는 것과 정반대로, 기독교야말로 지금까지 접했던 여러 세계관 중에서 나의 지적 호기심을 가장 자극하는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해 여름 기독학생회 수련회에 참가했고, C. S. 루이스와 조시 맥도웰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과 더 친해질 수 있었다.

1997년 10월, 나는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IVP)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커졌고 내 죄를 용서받고자 했다. 그날 밤 탁 트인 숲으로 차를 몰고 달려가 별빛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내 삶을 그리스도께 바치겠다고 서원했다. 나는 우상의 바다에서 자랐지만 다행히도 어떤 우상과도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그날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평화가 내려와 나를 사로잡았다. 그날 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부모님 공경하기

복음을 심오하고도 간단한 방법으로 설명한 존 스토트의 소책자는 내 회심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열 두 명은 더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 있었다. 나는 복음을 메시지 자체로도 들었지만, 복음을 삶 속에 녹여내어 전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들었다. 나의 까다로운 질문에 해답을 주는 지적인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의 삶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으로 나를 감화시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은 정기적으로 나를 모임에 초대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지와 메신저로서 이 땅에 보내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학생회 공동체는 복음의 메시지와 복음의 신실한 증인들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다.

이후 몇 달간 나는 부모님께 내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어떻게 말씀드려야 좋을지 기도했다. 겨울방학이 되어 집에 왔을 때 나는 거실에 앉아 「부모님을 공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Following Jesus Without Dishonoring Your Parents(피터 차와 그레그 자오 등 아시아계 미국인 사역자들의 공동 저서)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셨지만,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책 제목에 기뻐하셨다. 아버지께서 이 책을 왜 읽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날 저녁 천생 학자인 아버지는 내 성경을 서재로 들고 가셔서 나의 새로운 믿음에 대해 알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읽으셨다. 집단 정체성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란 부모님은 우리 가족의 종교는 불교라고 주장하셨다.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를 훌륭한 성품을 가진 겸손한 사람으로 여기셨고, 여러 신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불교 신앙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더 깊어지자, 나는 전임 사역자로서의 소명을 확인했다. 부모님은 내가 목사의 길을 가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내 이름을 족보에서 파 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결정으로 가정에 불화가 있을 것 같아, 나는 심장병과 싸우고 있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 사이에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존중하게 되었고 관계를 돈독히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자, 우리 가족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목사로서의 내 소명을 인정해 주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불교 신자이셨지만, 어머니는 길 아래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나를 축복하시고 보호해달라고 기도하셨다.

현재 나는 시카고 교외에 있는 한 멀티 사이트 교회를 섬기고 있다. 교회 반경 10마일 정도 내의 교인들을 양육하여 그들이 정의와 자비의 대사가 되도록 하는 일을 한다. 나는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왔고 이제 교인들이 복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목자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온 내 삶의 모든 계절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내 삶을 드렸다. 억지로 성취하거나 소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것을 이루실 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빌1: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진리가 아닌 것을 좇았던, 죄로 물든 우리 집안이 은혜로 변화되고 구원을 받았다. 이제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인정된 일꾼이 되었다(딤후2:15). CT

알렉산더 추 일리노이  레이크 포레스트와 하일랜드 파크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의 전도 목사이며,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CT 2014:7 Alexander Chu, Breaking from Buddhism  CTK 2014:7/8 알렉산더 추, "우상의 집에서 예수의 품으로" 

[게시:201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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