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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서 벗어나다침례교회 부흥회에서 예수를 만났지만, 수년간 거듭나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라일 도셋  |  Lyle Dors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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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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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Y NORTON  

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통찰력이다. 70년이 넘는 지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지금, 나는 점점 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놀라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였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20년 넘게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은 나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슬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수년간 나는 열다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몇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과 첫 번째 인격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서 살다가 앨라배마 주 버밍햄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 루터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견진성사도 받았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왜 중요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교회에 가끔 출석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앨라배마에서 보낸 뜨거웠던 어느 여름밤, 주님과 우리 가족의 관계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당시 잠깐 하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샘포드 대학교의 전신인 하워드 대학의 지름길을 지나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한 침례교회의 부흥회였다. 마치 자석처럼 흡입력 있는 부흥사였던 에디 마틴Eddie Martin은 돌아온 탕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비유를 회중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그는 이 텐트 안에도 탕자들이 있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의 집으로 돌아오라”고 외쳤다.

나는 그렇게 비뚤어진 아이는 아니었지만, 당시 나도 그 탕자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텐트 안에 있지는 않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초청을 받는다면, 과연 내가 앞으로 나갔을 때 환영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1950년대 우리 가족은 북부 출신의 아웃사이더였다. 나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집회를 마치기 전에 그 부흥사는 여기에 탕자들이 더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루를 더 허락하신다면 “주님의 집으로 돌아오라”는 초청장을 들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 그는 다시 집회를 열었고 나도 그곳을 찾아갔다. 아웃사이더였지만 용감하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 봉사자들이 나를 앞자리에 앉도록 도와주었다. 설교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집회 내내 그 초청을 받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부흥사는 탕자를 초청했고 나는 그 초청에 응했다. 그는 나에게 영접 기도를 따라 하라고 했다. 나는 내가 죄인이며 죄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 기도를 따라 하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느꼈고, 뿐만 아니라 복음전도자로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부모님께서는 부흥회에서 내가 체험한 것을 존중해주셨다.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루하마 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고 등록했다. 우리는 예배에 거의 빠지지 않았고, 부모님의 믿음도 그곳에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평화와 기쁨이었다. 나는 심지어 하워드 대학에서 만난 학생 두 명을 따라 작은 광업 도시에서 전도를 같이 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하는 사역에 모두 동참했고, 마침내 그들은 나에게 설교를 부탁하기까지 했다.


다시 원점으로

하지만 18개월 후, 상황은 역전되었다. 아버지 직장 문제로 우리는 캔자스시티로 다시 돌아갔고 그곳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안정감을 누리지 못했다. 나는 표류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적은 없었지만, 대학생이 된 후로는 지적 만족감을 추구했고 당시 만연했던 유물론적 세계관에 사로잡혔다. 전도자로서의 소명이 나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고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곧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교수로 임용되고 나서 5년 후, 나는 메리와 결혼했다. 그녀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우리에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신앙적 배경은 가톨릭이었고 나는 침례교인이었으므로 우리는 루터교회가 절충안이라고 생각했다. 콜로라도 주 볼더에서 우리는 한 교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메리는 은혜를 경험하고 그녀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했고 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6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나는 전임교수로 일했고 연구를 계속했다. 승진도 빨랐고 연구 출판 성과도 좋았으며 보조금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자녀, 직업적 성공을 축복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에 진정한 평화는 없었다.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나는 술을 과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대부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수업에 빠진 적도 없었고 주중에는 거의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나는 술을 들이부었다.

메리는 계속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학생 하나가 나의 우울증을 눈치 채고는 굳이 사주지 않아도 되는 길버트 K. 체스터튼의 「정통」(상상북스)을 사주었다. 그리고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홍성사)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차의 라디오가 오작동을 일으켰고 한 기독교방송 채널에 고정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온종일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이야기와 에디 마틴과 같은 부흥사들의 설교를 들었다. 나는 소음이 필요했기 때문에 라디오를 계속 켜두었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내 영혼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의 안개가 걷히지 않은 채로 책을 쓰기 위해 일 년 간 안식년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일찍 저술을 마치자 나는 그간의 노력을 술로 보상했다. 어느 날 저녁, 메리가 나에게 아이들 앞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애원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술집을 찾아갔고 문을 닫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여섯 개 들이 맥주 상자로 중무장한 채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질주했다. 그러다 한 전망대에 다다랐고 의식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 볼더에 있는 한 오래된 선교사 묘지에서 눈을 떴고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숙취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적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저한 절망의 순간, 나는 소리쳤다. “주님, 만약 여기 계신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수년 전 버밍햄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그 임재가 다시 한 번 나를 축복했다. 나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고 나의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해 준 예수 그리스도와의 두 번째 만남은 자연스럽게 나를 치유했다.

술에서 깬 다음 어렸을 때 내가 다녔던 루터교회 목사님께 나의 새로운 탄생을 알렸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야 유아세례와 견진성사 때 받은 것을 깨달은 것 같구나.”


나보다 앞서 가시는 주님

내 믿음은 엎치락뒤치락했고 실수도 많이 했다. 그리고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두 번이나 인격적으로 만났다. 주님은 서서히 나를 치유하셨고 메뚜기가 갉아 먹었던, 내가 흘려보냈던 시간을 회복시키셨다. 또한, 나에게 알코올 중독자 모임Alcoholics Anonymous에서 간증할 기회를 열어 주셨고 구제 전도단, 교도소, 요양원에서 설교할 기회도 주셨다. 그리고 주님은 나를 전임사역자로 부르셨고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샘포드 대학교 비손 신학대학원의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 신학과 학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복음 전도의 소명을 확인한 곳 말이다.

75년간의 인생을 통해서 내가 얻은, 나를 가장 겸손하게 하고, 나를 가장 안심시키는 교훈은 단연 끈질기게 나를 당신께로 이끈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이제 나는 하나님께서 항상 나보다 앞서 가셨다는 것을 안다. 생명을 주는 참 지식을 스스로 보여주신 주권적인 섭리를 안다. 그리고 내가 무지한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가고 있을 때에도, 그분의 존재를 의심할 때에도, 고의적으로 먼 나라로 떠난 탕자와 같았을 때에도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우리의 관계를 이끌어 오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값없이 받은 은혜요, 받을 자격이 없는 은혜요, 갚을 수 없는 은혜다. CT

라일 도셋 비손신학대학원Beeson Divinity School의 빌리그레이엄복음전도 교수Billy Graham Professor of Evangelism이자 앨라배마 버밍햄 '그리스도 왕 성공회 교회'Christ the King Anglican Church 목사
CT 2014:9 Lyle Dorsett, “A Sobering Mercy”  CTK 2014:9 라일 도셋, "술에서 벗어나다" 

[게시:201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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