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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목사가 된다는 것개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어떻게 회중 앞에 설 것인가
캐서린 캘러한-하웰  |  Katherine Callahan-Ho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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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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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TOCK  

2001년 2월 첫째 주 월요일, 엄마는 요로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 때 마침 엄마 집에 들르셨던 외삼촌이 전화로 내게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별로 대단한 병도 아니었고 열흘 전에 엄마를 보러 간 적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켄터키 산악 지대로  3시간을 운전해 들어가는 대신에 그냥 신시내티에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동트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고 수화기에서 진한 켄터키 말씨를 들었을 때 나는 좋지 않은 소식이란 걸 직감했다. 간호사는 외삼촌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래서 나는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을 처음으로 들은 사람이 되었다. 요로감염이 혈액에까지 전이되었고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일주일 전에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그때 제대로 진료했다면 감염은 쉽게 치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간단한 검사도 하지 않고, 바륨이라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고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엄마의 병을 단순한 신경불안이라 써놓은 그 의사의 차트를 읽었을 때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한 의사의 부주의와 무능 때문에 예순 여섯이라는 한창 나이에 엄마는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엄마는 네 명의 손주들을 무척이나 귀여워했는데, 이제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엄마의 무덤 앞에 섰을 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엄마의 죽음은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 뒤 일 년 동안 나는 의심과 분노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나는 장례식이 있었던 첫째 주 주말을 제외하고 목사로서의 직분을 계속 수행했다. 그러다 나는 이런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 어떻게 내가 진실하게 교회를 이끌 수 있을까?

하나님께 진실하기
“진실한”authentic이라는 말은 “저작자로부터 오는”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아우덴티쿠스”authenticus에서 유래했다. 이 말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고자 할 때, 우리의 저작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진질한 존재인 것이다. 진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거짓이 없어야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는 어떤 식으로도 하나님을 바보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모습보다 더 멋지게 꾸미려는 유혹은 언제나 존재한다.

엄마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일 년 동안, 나는 결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저버리셨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게 너무나도 부당하고 너무나도 이른 시기에 찾아 온 상실감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할머니를 잃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이토록 괴로워하는데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해 하실까, 이런 생각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나 자신의 문제를 진실하게 대하는 나의 태도는 나를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끌었고, 슬픔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다윗의 저주의 시들처럼, 나는 기도할 때 아무것도 억제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든 용납하시는 분이시니 거짓 없이 그분께 나아가라고 격려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자신에게 진실하기
진실함은 또한 자기 자신을 거짓 없이 대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우리 목사들에게 정말 힘든 일일 수 있다. 우리를 가리고 있는 것을 걷어 버리고 나면 우리의 진짜 모습을 들켜버릴까 두려워,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정직함을 피해 숨어버린다. 때로 이것은 하나님을 거짓 없이 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둘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들을 거짓 없이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우선 정직하게 그 감정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회피함으로써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곤 한다. 상처입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얻게 되는 이로운 점들에 관해 연구했던 브르네 브라운Brene Brown은 약으로 통증을 무디게 하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또한 기쁨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고를 맛보려면 최악을 견뎌내야 한다.

나는 결코 약을 써서 고통을 무디게 하지는 않았다. 때때로 고통 속에서 힘겨울 때면 그것을 그냥 무시해 버렸다. 우리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찾아야 한다. 엄마는 사순절 직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보통 사순절 기간에는 금식과 금욕을 했지만, 그 해에는 내 몸을 더 상하도록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진실해진다는 것은 또한 자신의 내면의 삶에서 자랑스럽지 못한 진실과도 대면해야 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목회를 하다가 우리보다 더 성공한 삶을 사는 형제자매들을 보고 부러움에 빠지거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여 힘겨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영혼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때 우리는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하기
예수님은 상처입기 쉬운 약함을 지닌 리더십의 모델이시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셨는데, 사람들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아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자신을 무리에게 드러내지 않으셨고, 무리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당신에 관해서는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셨다. 심지어 제자들 중에서도 몇몇에게만 비밀을 말씀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의 약한 예수님은 필요할 때는 기꺼이 도움과 지지를 요청하시는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거기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제자들의 도움을 원하시면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어둠의 순간에는 홀로 계신 주님을 발견한다. 이것은 우리도 겪는 진실이다.

목사들에게도 자신의 진실한 모습과 약한 모습을 드러낼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 놓아도 좋을 사람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성도에게? 동료 목사에게? 한 1000마일쯤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목회를 막 시작했을 때, 나는 우리 교회의 한 성도와 친구처럼 즐겁게 지냈다. 앤과 나는 둘 다 젊은 엄마였고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에 관해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똑같은 인생의 단계에 있는 친구를 갖게 된 것이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시어머니를 대하면서 느끼는 어려움 같은, 주부로서 겪게 되는 일상사를 얘기하면 곤혹스러워 했다. 그녀는 자기의 목사에게서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 진실하게 다가가서 그랬는지, 그녀는 영적 지도자로 바라봤던 나에게 실망감을 느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한 친구가 우리 동료 여성 목회자 몇 명을 모아 ‘여행하는 여성 목회자 모임’을 만들었다. 매년 봄 우리는 색다른 장소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긴장을 풀고,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연례 모임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위로를 준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을 서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이 눈물도 흘리고 초콜릿도 먹고, 영화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성찬식도 하고 휴식도 취한다. 이 모두가 합해져서 우리의 영혼을 진실하게 만들어준다.

회중에게 진실하기
어느 주일 아침 한 목사가 잠에서 깨었을 때 극심한 의심에 휩싸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날은 바로 부활절이었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들어보려는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었다. 물론 그 목사는 그 순간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자신의 신앙적 고뇌를 일단 접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목사들에게 이런 종류의 문제는 가장 어려운 도전이 된다. 노력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거짓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회중을 대할 때 어느 정도까지 진실해야 할까? 우리가 느끼는 신앙적 고뇌의 일부는 회중과 나눌 수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고무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일 성도들 앞에 서서 ‘나는 신앙을 잃어 버렸노라’ 하고 말한다면 그들의 신앙을 파괴할 수 있다. 신앙적으로 극심한 의심과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자신의 신앙에 대해 철저하게 점검해 보고 조언도 들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C. S. 루이스가 자기 아내가 죽은 뒤 마치 하나님께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이 느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런 고민을 나누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또한 그들도 두려움과 의심을 고백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줄 수 있다.

어떤 의심의 경우 우리는  결코 공개적으로 나눌 수 없는 의심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올바른 방식만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어떤 문제에 관해 대화하는 것은 서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강단에 서서 일방적으로 선포해 버리면 그런 기회는 없다. 모세는 하나님께 자기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의 형 아론을 대변자로 주셨으니, 아마도 아론에게는 그 얘기를 털어 놓았을 것이다. 리더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무지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브르네 브라운은 말한다. 그렇게 해서는 그들에게 존중심과 자신감을 불어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리더도 자신의 불안과 부족함을 털어 놓고 얘기할 사람이 꼭 필요하다.

어떤 목사들은 심리치료로나 적당한 그런 방식으로 설교 시간에 자신의 문제에 대해 털어놓아 회중을 충격에 몰아넣기도 한다. 또 어떤 목사들은 개인적인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감과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혼자서 힘겹게 싸운다. 보통 가장 건강한 방법은 그 둘 사이에 어디쯤에 있다. 곧, 목사의 능력에 대한 회중의 확신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솔직해지는 것이다. 어제 설교에서 나는 신앙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내가 하는 첫 번째 일은 흐느껴 우는 것이라고 정직하게 고백했다.

앞에서 얘기한 바로 그 앤과 그녀의 남편은 우리 교회에서 10년 동안이나 훌륭한 평신도 가족으로 지내왔다. 우리 두 가족은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아이들은 서로 친형제처럼 지냈다. 그런데 그녀는 결국 우리 교회를 떠나 버렸다. 우리 둘 사이의 관계 설정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내 남편은 마치 이혼서류를 받아 든 기분이었다. 우리 교회를 통해 이웃들에게 봉사하면서 우리 가족과 앤 가족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 되는 부분이 깨져 버렸고, 그로 인해 우리는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회중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는데, 많은 교인들이 앤 가족을 여전히 친구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앤 가족이 다른 교회를 잘 섬기도록 기도하면서 그들을 보내 주었다. 나는 설교에서 우리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 그로 인해 교인 수가 반으로 줄었을 때 느꼈던 극도의 좌절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회중과 나누기 전에 주의 깊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큰 죄책감과 의심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긍정적 감정들은 점검할 필요가 별로 없다. 오히려, 진정한 기쁨과 열정을 잘 나누는 것은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가끔 나는 설교 시간에 성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눈물을 흘린다. 테드TED 강연에서 브르네 브라운은 이런 종류의 약한 모습을 주제로 이야기 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울고 있을 때 약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사람이 울고 있는 걸 봤을 때는,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울고 있는 걸 봤을 때는 그것을 원초적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진솔한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면, 단지 몇 마디 말로도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된다. 내가 설교할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면, 회중은 내가 그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은혜로 인하여 눈물을 흘린다면, 성령께서는 내가 말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깊이 회중을 감동시키실 것이다.

내가 신학교에서 열린 목회자 행사에 참석하고 있을 때,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일 주년이 되었다. 나는 중간에 나와서 엄마의 무덤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리고 엄마의 부당한 죽음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힘겨워하고 있는지를 편지에 적어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편지를 남겨 둔 것이 내가 그 뒤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내가 느꼈던 절망의 깊이를 얼마나 가늠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깊은 절망 덕분에 무언가 얻었기를 바란다. 진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 특히 목사로서 진실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러나 우리의 저작자 되시는 하나님the Author과 더 잘 소통할수록, 우리는 더 큰 진실함과 더 작은 두려움 가운데서 인생을 살아가고 회중을 이끌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CT


캐서린 캘러한-하웰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윈톤 커뮤니티 자유감리교회 목사이다.
Katherine Callahan-Howell, “An Authentic Pastor” Leadership Journal 2014:겨울 남승호 옮김
[게시:201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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