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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벼랑 끝에 서다2004년 최악의 재난에 휩싸인 중동 교회, 그 역사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생각한다.
필립 젠킨스  |  Philip Jen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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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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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2014년은 대재앙의 해이다.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지난 1월초 이라크와 시리아 접경 지대를 무력 장악하면서 돌연 나타난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언론은 ISIS 또는 ISIL이라고 표기한다)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기독교 공동체들-아시리아동방교회, 칼데아가톨릭교회, 시리아정교회 등-을 야만스럽게 탄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라크 그리스도인들은 1991년 제1차 걸프전쟁을 겪으면서 그 수가 급속하게 줄어들었지만, 그 지난한 세월을 버텨낸 사람들은 모술을 중심으로 이라크 기독교의 기반을 다시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지난여름, 그 희망마저 무너져 내렸다. 유대인에게 저지른 나치의 만행을 떠오르게 하는 일이 이라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그리스도인이 거주하는 집의 대문이나 담벼락에 아랍어 알파벳 ن 표시가 나타났다. 이것은 아랍어 ‘나자라’Nazara의 머리글자이다. 중동에서 ‘나자라’는 ‘나사렛인’ 곧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뜻한다. 또한 시아파 무슬림의 집에는 R 표시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거부자’ 또는 ‘반대자’를 뜻하는 아랍어 ‘라피드’Rwafidh의 머리글자이다. 이라크 그리스도인들과 시아파 무슬림들이 이슬람국가의 공공연한 살해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이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이 지난 6월 10일 모술을 장악하면서, 이 지역에 터를 두고 수 세기를 이어 내려온 기독교 공동체들과 교회들은 철저한 파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슬람국가가 이 지역 그리스도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찾아내 살해하거나 추방하는 완벽한 박멸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술을 떠나고 있어 이라크 교회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모술 기독교 공동체의 붕괴는 곧 이라크 기독교의 종말이 그만큼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는 의미가 된다.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돌은 오랜 이야기의 일부이다. 이슬람은 7세기에 중동을 장악했지만, 압도적인 지배 세력이 되기까지는 수 세기가 더 걸렸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의 정치적 지배 아래 들어간 뒤에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콥트 총대주교구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Church of the East는 여전히 세계 기독교에서는 막강한 세력이었다. 이 교회들은 500년 넘게 그 위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14세기가 되면서 이슬람 오스만 제국은 조직적이고 폭력적이 탄압을 기독교에 가하기 시작됐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기독교는 오랫동안 소수 종교 공동체로 살아남았고, 때로는 상당한 수준의 번성을 구가하기도 했다. 불과 1914년까지만 하더라도, 이집트에서 페르시아(이란)에 이르는 중동 전역에서 기독교 인구는 여전히 10%를 차지했고, 거의 모든 대도시들은 이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여러 종교들에게도 중심지였다. 이것은 그만큼 오스만 제국 통치자들이 원칙적으로 관용적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이것을 순리로 여겼다는 의미이다.

 

사라져가는 종교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상황은 악화했다. 대량학살과 추방이 자행되면서 한때는 매우 강성했던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의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 공동체들이 거의 소멸됐다. 1915년부터 1922년 사이에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 공동체를 합쳐서 200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학살과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신생 아랍 국가들[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식민 종주국이 오스만 제국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제국들로 바뀌었다가 이후 순차적으로 독립했다]도 기독교 공동체들을 공격했다. [영국의 위임통치령이었다가 1932년 왕국으로 독립한] 이라크는 1933년 아시리아인 대학살을 자행했고, 이 만행을 조사하면서 폴란드 변호사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은 인종학살genocid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팔레스타인 분할과 이어지는 위기들은 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유서 깊은 기독교 공동체들을 크게 위축시켰다. 중동 기독교 근대사는 한마디로 위축과 붕괴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지난 20세기 말까지, 중동 기독교는 두 곳에 큰 중심지를 두고 있었다. 하나는 콥트 기독교의 이집트이고, 또 하나는, 현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시리아와 레바논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바로 지금,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이슬람주의 세력을 더욱 확장시키는 환경이 되고 있다. 이슬람국가의 깃발은 레바논에도 이미 나타났다. 레바논 정치인 왈리드 줌블라트Walid Jumblatt[시리아 진보사회당 대표이자 레바논 드루즈 공동체의 지도자]는 그리스도인들과 그 자신이 속해 있는 드루즈인Druze[시아파의 일파인 이스마일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신교를 신봉하는 공동체]들이 “절멸의 벼랑 끝에 서”있다고 경고했다.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까? 이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경험을 돌아본다. 이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번성했지만 지금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의 모든 국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1950년 이후, 이집트의 유대인 인구는 10만에서 대략 5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라크에서는 9만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시리아의 2대 도시] 알레포와 다마스쿠스의 기독교는 [이라크] 바그다드의 유대인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었다. 2013년, 이라크 바그다드에 총대주교좌를 두고 있는 라파엘 사코 칼데아가톨릭교회(동방전례 가톨릭교회) 총대주교는 이렇게 경고했다. “국외 이주가 계속되면, 중동에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중동에서 유일하게 안전해 보이는 기독교 공동체는 콥트 교회이다. 교인 수가 800만은 족히 되고, 이집트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안정적인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몇 차례 유혈 분쟁이 발생하면서, 이 지역에도 일촉즉발의 갈등과 이슬람주의 폭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교회 죽이기

그리스도인이 사라져버린 중동이라는 전망은 지나치게 비관적이라 할지라도, 이 지역 여러 국가들에서 일어난 재앙들의 규모는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 중동 밖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오는 성탄절, 시리아의 도시들은 1900여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없는 성탄절을 맞을지도 모른다. 이런 마당에 성탄절 시즌만 되면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Merry Christmas’라는 특정 종교 편향적인 인사 대신에 ‘Happy Holidays’라는 중립적인 인사를 쓰자는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주장 사이의 여론전]을 둘러싼 말싸움이 기승을 부리니 낯간지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리아에서 진짜 크리스마스 전쟁이 벌어질 판에 말이다.

더 넓게 보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우리에게 기독교 역사가 장기간에 걸쳐 걸어온 경로를 되돌아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 답을 찾게 해 준다. 어떻게 교회들이 사라지는가?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교회들이 어떻게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는가?

강력한 교훈 하나는 이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하더라도, 비상한 외부 개입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회는, 교인들이 나이 들기 때문에, 목사들의 스캔들 때문에, 교회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빈약하기 때문에, 또는 교회의 신학이 엉망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교회를 죽이려고 작심하고 덤비는 대적의 공격이 용의주도하고 효과적일 때 교회는 사라진다.

교회의 대적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파괴적인 대적은 막강한 종교적 신조를 강조할 수도 있다. 이 사례를 우리는 지금 이라크의 극단적 이슬람주의에서 볼 수 있다. 교회를 죽이려는 더 일반적인 대적은, 국가를 찬양하고,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국가 외에 다른 어떤 것에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어떤 그룹도 정죄하는 극단적 세속 신학으로 정신무장한 박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소비에트와 중국 공산주의의 본모습을 결정짓는 태도였다.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자행한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신앙보다는 극악무도한 민족주의 때문에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

아시리아인과 칼데아인의 선조인 동방교회는 교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극심한 위기를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이다. 14세기에 동방교회가 맞은 재난들은 한때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걸쳐 있던 이 교회를 극히 작은 공동체로 축소시켰다. 그렇지만 이 교회는 이라크와 시리아, 아나톨리아에서 7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20세기에 이르러, 강경한 무슬림 법학자들과 선동자들은 이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위한 새로운 조롱거리들을 앞 다투어 창안해 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입을 수 있는 의복을, 그리스도인이 소유할 수 있는 주택을,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탈 수 있는 말을 제한했다. 최악의 박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재산이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누더기를 걸쳤다. 재산이 있다는 것은 곧 그 재산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가혹했던 불이익이 있었다면, 그것은 소리의 세계를 상실한 것이었다. 무슬림이 통치하는 땅에서 공적 소리를 인정받은 유일한 종교는 이슬람뿐이었다. 모스크의 첨탑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하러 오라’는 무에진muezzin의 외침만이 공중의 소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교회가 종을 울리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됐다. 기독교와 무슬림 사회 사이의 가장 엄격한 구별을 알리는 소리가 그야말로 공중에 울러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수 세기를 견뎌냈다. 자신들에게 부가된 제한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신실하게 살아갔다. 가혹한 박해를 견뎌내면서, 그들은 부차적인 것들은 옆으로 제쳐두고 결코 버릴 수 없는 신앙의 핵심을 지켜내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종과 피리를 포기했다[‘종과 피리’bells and whistle에는 ‘필수적인 것이 아닌 부가적인 것’이라는 관용적 의미가 있다]. 동방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의 영적 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예배를 지켜낼 수는 있었다.

   
 

예배만큼 중요하게 지켜낸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들은 영적 전사들이 기도와 말씀 연구를 하는 수도원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수도사들이 기도를 하고 사제들이 성례를 집전하는 한, 교회는 손상되지 않았고, 그런 상황은, 이론적으로는, 심판 날까지 계속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수도원들은 오지에 높은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요새들은 난공불락이었다. 이집트의 세인트 안토니 수도원과 시나이 반도의 세인트 캐더린 수도원 같은, 그런 전설적인 기도의 요새들은 지금도 남아 있다.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라크 그리스도인들은 마르 마타이Mar Mattai(성 마태)라반 호르미즈드Rabban Hormizd 수도원 주변에 모여 살았다. 이 두 수도원은 후기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방교회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강력한 서방 교회들이 자신들을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개신교인들은, 이 지역 교회의 종교적 관습들이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형식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더 좋은 않았던 것은, 서방 교회는 이 지역 민족주의자들의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신앙이나 교파를 불문하고 자치를 약속하는 세속 민족주의 정파들을 지지하고 싶은 유혹도 못지않게 위험했다. 지역 교회들이 의심쩍은 정권-가장 악명 높은 사례가 이라크나 시리아의 바트주의Ba’athist 정권이다-과 뒤엉켰을 때처럼, 그런 동맹은 언제나 덫과 같은 것이었다. 동방교회는 이런 동맹 정책 덕분에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직접적인 탄압의 위협은 제거할 수 있었다.

동방교회는 새로운 군대가 뿌리를 뽑아내고 줄기를 갈기갈기 찢어 놓은 근대까지 끈질기게 계속됐다. 신자들은 집단학살 당했고, 생존자들은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나라를 떠났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교회들은 기능을 멈추었다. 이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아르메니아교회에 일어난 일이며, 지난 20년 내내 이라크의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더 위대한 계획?

중세 중에서도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유럽 그리스도인들이 야만족의 침입을 피해 도망쳤을 때, 그들에게 확실한 피난처가 되어 준 것은 이웃의 수도원들이었다. 지난여름 북부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국가로부터 피신하면서 이와 똑같은 경로를 밟았다.

모술의 기독교 공동체의 일부 남은 사람들은 유서 깊은 마르 마타이 수도원의 마당을 피난처로 삼았다. 이슬람국가가 최근에 보여주었듯이, 한 교회를 파괴하는 효과적인 작전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한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한다. 그리고 이교 신앙을 실천하는 주민들을 죽이거나 내쫓는다. 그렇지만, 그렇게 탄압받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교회가 파괴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문제는 절대로 간단치 않다.

지난 천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거듭 질문을 해야 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패배와 굴복, 노예의 고통을 겪도록 놔두시는가? 그리고 조국의 폐망을 신앙의 결여와 민족적 언약의 배신에서 찾은 히브리 선지자들을 보면서, 성경의 선례에서 몇 가지 답을 찾는다. 이 관점으로 보면, 최악의 재난조차도 당신의 죄 많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성공과 안전을 구가한 다른 교회들보다 재난 당한 그 교회들이 어떤 식으로든 더 나빴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의로운 남은 자’ 사상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하게 따르고 고난을 견뎌낸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악몽처럼 보이는 유배가, 그렇게 쫓겨난 신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다른 땅으로 가져갈 때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추방과 디아스포라 경험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강력하게 신앙을 퍼트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동 출신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서방 세계 곳곳의 낯선 땅에서 그들의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며 성장해 가고 있다.

훨씬 더 도전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특정 땅에 있는 기독교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놔두시는가? 그렇다, 교회들은 그들이 번성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목초지로 이동한다. 그러나 그들의 본향은? 철저하게 파괴된, 남은 자가 전혀 없는 그들의 교회는? 이 신학적 딜레마는 아마도 2015년에 오랫동안 기다린 엔도 슈사쿠의 1966년 소설 「침묵」이 영화로 상영되기 시작하면 더욱 많이 토론될 것이다.

엔도는 잔인한 탄압으로 소멸해가고 있던 17세기 일본 천주교의 운명을 탐구했다. 일본 천주교는 이름이 알려진 2000명의 순교자들을 기리고 있지만, 수만 명에 이르는 보통의 신자들은 참수형와 화형과 십자가형으로 죽어갔다. 일본은 해변에 세운 물 십자가형이라는 유별나게 잔인한 방식을 사용했다. 간조 때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제는 몇 날 동안 만조가 되면 물에 잠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익사했다.

「침묵」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한 사제는 모든 탄압과 공포를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분께 바친 이 끔찍하고 무자비한 희생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다.” 아니, 그 사제는 말하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양떼를 지키시기 위해 기적으로 개입하시는 일을 결코 하지 않으셨다. 피신하는 희생자들을 숨기고 보호하기 위하여 어떤 천사도 내려오지 않았다. 어떤 박해자도 형을 선고하고 십자가를 세울 때 눈이 멀지 않았다. 어떤 박해자도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한 처벌로 전염병에 걸리거나 군사적인 패배를 당하지도 않았다. 현대 이라크에서처럼, 그 박해자들은 야만적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그 어떤 견제도 없이 그들이 할 짓을 다 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당신의 백성들을 이처럼 돌보지 않으신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시간표

하나님은 때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또 때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어렵지 않게 듣기도 한다. 교회 절멸의 사례는 끔찍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처음에는 철저한 절멸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리 눈에는 결정적인 소멸의 행동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에서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자주 듣듯이, 절멸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영원히 계속 변할 뿐이다.

한 가지 예로, 우리는 중국의 경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는 과거 2000년 동안 항상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다. 중국 기독교의 이야기는 강력한 만개의 시기와 그 뒤를 따르는 완전한 절멸처럼 보이는 시기, 곧 어떤 경우에는 교회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너무나 철저한 소멸의 시기가 되풀이되는 순환의 이야기이다. 그 순환은 9세기 이후 샐 수 있는 것만 해도 5회나 된다. 각 시기마다 중국 교회는 직전의 전성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다시 일어났다. 각각의 연속적인 “절대 다시는”은 완전히 일시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물론, 개인들과 공동체들은 그 재난이 되풀이 되는 동안 끔찍한 고난을 겪었다. 우리는 그 재앙들을 축소할 수 없다. 그러나 설사 공동체들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교회는 견뎌냈다. 영원이라는 시간의 틀에서 바라볼 때, 절멸로 보이는 이러한 시대들은 숙성의 시간으로서 더 적절하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제도 교회들이 쇠퇴할 때조차도, 신자들은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지속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연구가 안 된 것 중 하나는 지하 신자들crypto-believers의 역사이다. 지배 권력을 겉으로는 수용하면서도 진리를 지키며 숨어있는 남은 자들의 역사 말이다. 소비에트의 교육문화부 장관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Anatoly Lunacharsky가 1928년에 의기소침하여 불평했듯이, “종교는 못과 같다. 더 세게 치면 칠수록, 나무에 더 깊이 박힌다.” 때로는, 너무 깊이 들어가서, 아무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예를 들어, 「침묵」에 묘사되어 있는 일본 천주교의 잔인한 파괴는 ‘카쿠레 키리스탄’(“숨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큰 무리가 지하에 숨어 신앙을 유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실제로, 그 중 일부는 4세기 동안이나 이어졌고 몇몇 나이든 생존자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동일한 현상을 중국에서도 본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중동의 모든 지역에서 가장 적절한 사례를 목격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현재 겪고 있는 위기 이전에 그리스도인 인구 규모의 추정치는 보통 전체 인구의 5~15%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 만큼의 숨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나라에 존재한다. 지하의 신앙과 실천은 세속 바트주의 정권 하에서보다 극단적 이슬람주의 정권 하에서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숨은 자들”은 더 온건한 시대가 돌아올 때까지 놀라울 정도로 긴 시기를 견뎌올 때가 많았다.

중동 기독교의 절멸에 관해서 이야기 해 보자.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세지 않은 그리스도인들

오스만 제국 치하의 그 최악의 시대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갈수록 불관용이 극심해지고 있는 중동에서조차도, 전체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는 실제로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과 함께 더욱 예민한 지역으로 가 보자.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무슬림 국가들에서 기독교 복음전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었다. 보통,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개종 통계와 함께 말이다.

일부 구체적인 수치들은 훨씬 더 신뢰할 만하다. 최근에 나온 데이비드 게리슨David Garrison의 「이슬람의 집에 부는 바람」A Wind in the House of Islam은 다양한 무슬림 사회들에서 호감을 얻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눈에 띄는 곳은 시리아로, 이 나라는 이 트렌드를 보여주는 가장 확신이 가는 사례들 가운데 몇 가지를 보여준다. 탄압을 유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활동들이 비밀스럽다는 사실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게리슨은 책임 의식이 투철하고 신중한 기자이다.

논의를 위해서 철저하게 회의주의적인 자세를 취하고,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버려보자.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가장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 경우는 거의 전부가 이민의 결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보자. 이슬람만이 유일하게 허용되는 인구 2800만의 이 나라의 공식 자료로는 인구의 100%가 무슬림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험하고 고된 일을 할 가난한 외국인 수백만을 받아들인 많은 중동 국가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민자들 가운데 다수가 아프리카와, 많은 필리핀인을 포함한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다. 공식적인 그리스도인이 존재하지 않고 있듯이, 그들에게는 사적으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존재한다. 몇몇 추정치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 그리스도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5%, 대략 150만 명이다.

다른 걸프 국가들은 자기네의 종교적 다양성에 대하여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솔직하다. 그리스도인-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이 아랍에미리트 인구의 대략 7%를 구성한다. 바레인이나 쿠웨이트에서는 10%이다. 100년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거의 전무했던 나라들이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과 점령 지역 합쳐서, 이스라엘에는 유서 깊은 기독교 교파 신자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 교회들은 지난 반세기를 지나면서 그 수가 급감했다. 그러나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리를 더 많이 대체하고 있다. 남반구에서 온 수천 명이 이민자로 왔다. 또한 많은 러시아 그리스도인들이 1990년대에 유대인 후손들이 이스라엘로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그들 중 일부는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이며, 일부는 침례교와 오순절파이다. 이스라엘의 러시아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현재 약 8만 명에 이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합친 인구는 1000만 명이다. 그 중 약 5%가 그리스도인-아랍, 아르메니아, 러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필리핀-이다. 아랍 걸프 지역과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기독교 신앙과 실천의 새로운, 그리고 성장하는 중심지들이다.

 

고난은 맞지만, 절멸은 아니다

이런 성장의 징표들이 있다고 해서 중동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해 있는 끔찍한 상황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거두는 일은 잠시라도 허용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강간당하고, 노예로 팔려가고, 그리고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서방 정부들은 그들을 위하여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개입의 방식만이 중요한 논의일 뿐이다-상황에 있다.

무장 개입은 실제로 가장 공격적인 지하드 운동을 타도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중동 밖에 있는 세계 교회에는 중동 출신의 동료 신자들을, 그들의 조국에서든 아니면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지역에서든,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책임이 분명이 있다. 그렇지만, 군사적 행동주의든 인도주의적 행동주의든, 아무리 열정적인 행동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시리아와 이라크의 교회들이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구가했던 번영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중동 지역에서 절멸에 직면한 기독교를 말하는 것과, 중동에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오토 본 비스마르크가 한 것으로 알려진 말이 떠오른다. “기독교는 보기만큼 절대로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러나 또한 보기만큼 그렇게 약하지도 않다.” 하나님께서 쓰실 때, 강함과 약함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짐작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역사의 목표나  방향을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한다. CT

(2014년 11월호)

필립 젠킨스「잃어버린 기독교 역사」The Lost History of Christianity의 저자이며 베일러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다.

Philip Jenkins, “On the Edge of Extinction” CT 2014:11
CTK 2014:11 "절멸의 벼랑 끝에 서다" 이효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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