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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랑스 혁명기무신론자에서 기독교 신학자가 되다
기욤 비뇽  |  Guillaume Bi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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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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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무신론자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라면, 프랑스인 무신론자가 복음주의 신학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더 흔하지 않은 일일까?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론 누군가는 내가 6600만 프랑스 인구 중에서 예외적인 행운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겠다.”(롬9:15) 나는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사랑했다. 가족 모두 천주교 신자였지만, 어쩌면 확신보다는 미신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 “저는 천주교에 대해 어떤 것도 믿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부터, 나는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내 개인의 행복을 철저하게 추구했다.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헌신을 등에 업고서 말이다. 그 덕에 나는 학교에 갈 수 있었고, 피아노와 각종 운동도 배웠다. 명문 공대에서 수학과 물리학과 공학을 전공했고, 졸업하고 금융 분야 컴퓨터 공학자로 자리를 잡았다. 190cm가 넘는 장신이라 90cm 이상 점프할 수 있었던 나는 프랑스 배구 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영예도 얻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했다. 물론 피 끓는 청춘, 프랑스인 무신론자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본능에 충실하여 “여자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 배구부 라커룸의 상스러운 대화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내 삶에 만족했고 행복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세속적인 문화 속에서는 복음을 믿기는커녕,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새로운 삶의 목표 이십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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