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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가 본 무함마드악마적 사기꾼인가, 영적 지도자인가? 한 이슬람 선지자에 대한 엇갈린 시각
가브리엘 사이드 레이놀즈  |  Gabriel Said Reyn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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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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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 기독교와 이슬람

남의 나라 이야기 같던 이슬람 또는 무슬림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2007년 아프간 피랍 사건은 우리에게 이슬람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시간을 주었습니다. 아프게 다가온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떤 정보와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아직은 정보 자체가 참 부족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교차한 역사를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타자에 대한 알아가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들에 대한 오해의 역사가 어떻게 싹텄는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은 있을지, 그들과의 만남과 어긋남의 역사를 반추하여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김은홍 편집장  


C. S. 루이스가 만들어 낸 매혹적인 세계 “나니아”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무서운 남쪽 제국 “칼로르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사막 건너편 칼로르만에는 “현명하고 부유하며 정중하지만 잔인한” 사람들이 산다. 칼로르만 제국의 사람들은 피에 굶주린 신 “타쉬”를 섬긴다. “냉혹하며 저항할 수 없는” 신 타쉬의 대리인은 잔인한 칼로르만의 통치자 티스록이다. 티스록은 자기가 소화 불량에 걸렸다고 요리사를 사형시킨 인물이다. 비록 신으로까지 숭배되지는 않지만, 티스록의 이름을 말할 때는 반드시 그 앞에 “영생불사하소서”라는 말을 덧붙일 만큼 그는 칼로르만 백성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처럼, 티스록은 루이스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 일종의 패러디다. 티스록은 한 편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고 한 편으로는 무함마드, 곧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축복과 평화가 임하실” 선지자다.

서구 기독교 저자들이 이 인물을 계속 각색한 결과, 그는 악마 같고, 피에 굶주린 성도착적 야만인인 동시에 고상한 이성주의자이기도 하다.

어떤 인물에 관한 전설이 너무 거대해져서 정작 그 사람의 역사적 실체를 가려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무함마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무함마드에 대해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마드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10억에 이르는 무슬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이 하나님[God, 필자는 이슬람 유일신 알라(Allah)를 이슬람 세계에서 통상 지칭하듯이 ‘하나님’으로 쓰고 있다. 번역에서도 이 원칙을 따른다―편집자 주]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최고의 사자로 숭배하는 한 사람을 만나 봐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중세: “이 저주받을 사기꾼”
무함마드가 서방 세계의 고전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9세기 저항 운동가, 코르도바의 율로기우스(Eulogius of Cordova)의 펜을 통해서다. 율로기우스는 이슬람 통치 하의 스페인에서 살았으며, 그곳에서 기독교 저항 운동을 일으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저항 운동은, 놀랍게도, 무기를 들고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순교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자발적 순교 계획을 실행에 옮긴 한 가지 방법이, 공개적으로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것이었다. 이 범죄의 대가가 죽음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율로기우스의 「순교록」에는 이 무슬림 선지자에 대한 공격이 들어있다.

이후 십자군 전쟁 시기를 포함한 몇 세기 동안에 나온 많은 저작물들도 마찬가지로 무함마드를 공격하고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으로는 클루니 수도원장 피터(Peter the Venerable of Cluny)가 끌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ux)에게 보낸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에 관하여”라는 서신이다. 이 편지에는 피터가 무함마드에게 1인칭으로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내가 당신을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믿어야 하나? 그렇게 믿는다면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일 걸세.”

이와 유사한 적대감은 1258년 알렉산드르 듀퐁(Alexandre du Pont)이 쓴 흥미로운 소설 「무함마드의 로맨스」에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변주된다. 듀퐁은 이 소설을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 고어로 썼는데, 대중에게 소설을 팔기 위해서였다.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는, 이집트로 갔던 루이 9세의 십자군에 관한 끔찍한 소식이 전해지고, 프란시스코회와 도미니크회가 이슬람 땅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던 때였다.

듀퐁은 무함마드를, 악마의 도움과 끊임없는 배신을 통해 자신의 변질된 믿음을 야만스런 아랍인들에게 심어 놓은 기독교 이단자에 지나지 않는 인물로 묘사한다.

하지만 듀퐁의 「무함마드의 로맨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 고어로 쓰인 또 다른 뛰어난 작품은 무함마드에 관해 아주 상반되는 초상을 제공한다. 「무함마드의 사다리」(1264년 작자 미상으로 출간됐으며 라틴어 판이 남아 있다)라는 이 책은 무슬림의 입장에서 쓰였고 무슬림의 시각을 전달한다.

「무함마드의 사다리」는 무함마드가 밤중에 메카에서 예루살렘까지 여행을 하고 하나님의 보좌로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1층 천국에 있는 선지자 예수를 지나서 최상층 천국에 도달한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보좌에) 다가갔을 때,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오라, 나의 친구 무함마드여, 알지니, 내가 너를 모든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영예롭게 여기며 내가 창조한 모든 생명체들과 천사들과 인간들과 악마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존재로 여기느니라.’”

그러나 결국 「무함마드의 사다리」의 번역자는 “책 속에 여러 가지 오류들과 도저히 믿기 힘든 사항들을 자세히 열거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무함마드를 사기꾼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이슬람 책을 내놓는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팔라치오스(Miguel Asin Palacios)와 메노칼(Maria Rosa Menocal) 같은 학자들은 단테 알리기에리가 바로 이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기독교적인 이미지로 변용시켜 「신곡」을 썼다고 주장했다. 물론, 무함마드는 단테의 이 찬란한 시구의 첫 장에서 불행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지옥 한가운데서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와 함께 “턱에서 이마까지 얼굴이 찢어지는”, 단테의 표현을 빌자면, 성스러운 어머니 교회를 이단설로 찢어 놓은 사람들에게 딱 맞는 벌을 받는다.

영국 문학에 최초로 등장한 무함마드의 모습에도 별로 나은 점은 없다. 존 리드게이트(John Lydgate)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시 “왕자의 추락”(1438)에 “거짓 선지자 마호메트”라는 장을 넣었다. 리드게이트가 평가한 “마호메트라는 이 저주받을 사기꾼”은 선지자도, 유일신자도 아니며 그저 “아첨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자”일 뿐이다. 초기 작품들에서 리드게이트는 유사한 비난을 반복적으로 쏟아 놓는다. 이런 식이다. 무함마드는 개인적으로는 방탕에 빠져 있으면서도 추종자들을 궤변으로 현혹하는 간질병 환자다. 따라서 그런 자에게 닥칠 종말은 “술독에 빠져 죽는 방탕한 인간처럼 … 우리에 떨어져서 돼지와 함께 뒹구는 것”이다.

그러나 리드게이트가 무함마드를 이처럼 잔인한 인물로 그리던 그 시점에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으로 이슬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자극은 프란시스코회와 도미니크회의 이슬람 지역 선교가 증가하면서 찾아왔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이집트 술탄의 궁정을 방문했고, 레이몬드 룰은 북 아프리카에서 순교했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의 영향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교도 대전」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계몽 운동: “그의 교리에는 의심할 것이 없다”
계몽 운동 시대 저술들에서 무함마드는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놀랄 정도로 호감이 가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계몽운동을 주도했던 많은 인사들이 정통 기독교의 대안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초, 라이프니츠는 「변신론」(1710)에서 무함마드를 “순수한” 종교를 가르친 인물로 찬양했다. 1756년 볼테르는 대작 「풍속론」에 “아랍인과 마호메트”라는 장을 포함시켰다. 

볼테르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활기차고 강인한 지성 …  통찰력과 권위 넘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열성주의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무함마드는 올바른 믿음을 세워야 한다는 이상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을 속인 것처럼 자신에게 속았다. 그러나 지혜와 무력으로 권력을 잡기는 했지만, 그는 영예롭게 죽었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볼테르는 사실 무함마드에 대한 선대의 비난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볼테르의 무함마드는 현자였고, 뛰어난 시인이었으며, 지혜로운 장군이었고, 놀라운 이상주의자였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무함마드에 관한 전기적 글을 쓰면서 볼테르의 이러한 관점을 수용했다. 기번은 「로마 제국 흥망사」(1776-1787)에서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  “천재적인 아랍인 선지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기번은 무함마드의 “위풍당당한 태도, 위엄 있는 모습, 꿰뚫는 시선, 멋진 미소, 흘러내리는 수염”을 찬양한다. 기번은 세련된 영어로 무함마드의 성격과 빛나는 카리스마를 묘사한다. “그의 기억력은 뛰어나고 정확하며, 그의 위트는 쉽고 사교적이다. 그의 상상력은 탁월하고, 그의 판단력은 명확하고 신속하며 확고하다.” “연민과 분노의 눈으로 시대의 쇠락을 바라보라. 굴하지 않는 정신과 아랍인으로서의 미덕을 가지고 유일신과 한 명의 왕 아래 하나로 뭉치자”고 말하는, 기번의 무함마드는 선지자라기보다는 이성주의자에 가깝다. 실제로 기번은 기독교와 많은 대조를 이루는, 이슬람의 교리와 경전에 스며들어 있는 무함마드의 이성주의를 옹호했다. “마호메트의 교리에는 의심할 것도 모호한 것도 없다. 꾸란은 유일신에 대한 영광스런 증언이다.”

근대: “이러한 일은 호색한이 할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엽이 되자 베일(Gustav Weil)이나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과 같은 독일 작가들은 무함마드에 대한 이슬람 역사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공정하게 한다고는 했지만, 역사적인 무함마드를 추적하는 작업에는 학자들의 종교적 편견이 많이 들어갔다. 그런 학자들 가운데 선두주자는 벨기에 예수회 수사 앙리 라망(Henri Lammens)이었다. 무함마드의 사생활에 관한 라망의 글들은 무슬림들을 격분케 했다. 지칠 줄 모르는 연구자이자 세련된 저술가였던 라망은 이슬람의 “호색적인” 선지자를 아주 대담하게 묘사했다. 라망은 「파티마와 마호메트의 여자들」(1912)에서 무함마드를 고기와 향수, 여자에 대한 탐욕스런 취향을 지닌 “선지자이자 왕”으로 그렸다. 그는 거침없이 무함마드의 (딸이나 손녀들에 대한 사랑 같은) 가족사를 조명하였고, 논란이 많은 주제들도 거리낌 없이 열정을 가지고 다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라망은 무함마드의 말이라고 판단하기 힘든 말들, 가령 “여자는 재난이다”라거나 “여자를 조심하라. 지옥은 그들로 가득 차 있다” 같은 말들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라망과 동시대 인물인 스웨덴 주교 토르 안드레(Tor Andrae)는 전혀 다른 관점을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인간과 신앙」(1930)에서 안드레는 아라비아 반도를 둘러싸고 있던 동방 정교회에서 무함마드의 종교적 이념의 근원을 찾았다. 그는 무함마드가 네스토리우파 설교자와 함께 여행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까지 세웠다. 이러한 가설을 통해 안드레는 해마다 한 달씩 메카 외곽에 있는 산속에 들어가 피정을 하는 수도사의 이미지를 가진 무함마드를 제시했다. 안드레는 시리아 교회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종교 심리학적 관심을 결합시켜 “심원한 정직성과 영생에 대한 간절한 기대감으로 심판의 날 앞에서 떨며 통회하는” 무함마드라는, 상당히 독특한 초상을 그려냈다. 안드레 역시 라망처럼 거리낌 없이 무함마드의 도덕적 실수를 지적했지만, 이 역시 무함마드를 이해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안드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결부시켜 무함마드를 이렇게 판단했다. “우리가 그를 공정하게 판단하려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무함마드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탁월하고 고귀한 복음서 인물들과 비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좀더 최근의 역사 연구에서는, 심지어 성직자들이 한 연구에서도, 종교적 논평은 아주 많이 사라졌는데, 이는 일부는 무슬림의 감정을 의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성공회 사제 몽고메리 와트(W. Montgomery Watt)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의 「메카의 무함마드」(1953)와 「메디나의 무함마드」(1956)는 가장 포괄적이고 현대적인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무함마드에게 준 영향을 찾는 대신, 와트는 7세기 아랍의 사회 환경에 주목한다. 와트의 무함마드는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고 약한 부족을 억압하게 만드는 경제적 위기를 깊이 인식한 사회적, 정치적 개혁가다. 이슬람 자료들을 차근차근 참고하여 메카와 메디나의 얽히고설킨 부족 관계를 추적하면서 와트는 무함마드의 탁월한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와트는 이 선지자에게 덧입혀진 전통적인 관점, 곧 부정직하고 간교하며 선정적이라는 비난으로부터 무함마드의 도덕성을 적극 옹호한다. “[그는] 오늘날 인류의 1/6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을 위한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기준을 확립했다. 이런 일은 배반자나 호색한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와트의 융화적인 접근방식과 이슬람 역사 자료를 신뢰를 가지고 탐구하는 연구 자세는 무함마드에 대한 최근의 역사적 전기의 기준을 정립하는 데 상당 부분 기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학자들이 복음서의 내용에 의구심을 가지고 역사적 예수를 열광적으로 추적하는 동안, 다른 편의 학자들은 이슬람 고전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슬람 선지자의 초상에 대해 더욱 존경심을 나타냈다. 전 예수회 사제이자 뉴욕 대학교 명예교수인 프랭크 피터스(Frank Peters)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자신의 논문 “역사적 무함마드의 추적”에서 명쾌하게 밝혔다. 피터스는 예수에 대한 연구는 갈수록 관점이 모호해지는 데 반해 이슬람에 관한 연구는 “무함마드에 뚜렷하게 초점을 맞추고 그의 주변 환경들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복원해 내고 있다”고 개탄한다. 「선지자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기원」(1994)에서 피터스는 무함마드에 대한 이슬람의 전통적 신화와 현대의 학문적 신화들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는 무함마드의 메카가 중요한 교역 중심지였다는 이슬람적이고 학문적인 가설을 부정하고 이 이슬람 선지자는 메디나의 유대인들로부터 종교적 관념을 차용했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 숭배
역사적 무함마드에 대한 악의적 논쟁은 여전히 뜨겁지만 다른 한 편에는, 무함마드에 대한 신앙을 오랫동안 추적해 온 기독교 학자들도 있다. 1853년 페르시아인 귀족으로 위장을 하고 비밀리에 메카와 메디나로 순례 여행을 떠난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경은 무함마드에 대한 무슬림들의 존경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무슬림 순례자들은 “존경심과 두려움, 사랑을 가지고” 그 선지자의 무덤에 다가갔다고 버튼은 기록했다.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은 토르 안드레가 「공동체의 삶과 사상 안에 있는 인간 무함마드」(1917)에서 묘사한 것처럼 무함마드를 경건한 인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안드레는 무함마드가 꾸란에서는 전능자의 불완전한 종으로 묘사되었지만 추종자들로부터는 엄청난 숭배를 받은 인물로 그린다. 무함마드가 “하나님 앞에 중재자로서의 권위를 지닌, 카리스마와 초월적 힘을 지닌 ‘최고의 피조물’, 성스러운 선지자가 된 것은 이슬람 공동체의 신앙을 통해서였다.” 안드레의 책은 무함마드의 기적과 그의 순결한 교리,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숭배자들의 신화를 조사한다. 안드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중재자인 무함마드에 대한 존경심은 이슬람 법률의 근간을 이루었다. 무함마드는 신적 자비를 집행하는 최고의 대리인이며 “무엇보다도,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60년도 더 지나서, 안드레의 접근방식은 독일의 가톨릭 신자 안네마리 쉬멜(Annemarie Schimmel)의 책 「하나님의 사자 무함마드」(1981)에서 전적으로 수용된다. 그녀는 이슬람 신비주의와 신비주의 시들에 있는 무함마드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는 선지자는 그림자가 없으며 땀방울은 장미로 변한다고 하는, 무슬림들이 자기네 선지자에게 돌리는 덕과 카리스마의 찬양을 현란하게 그려낸다. 더 나아가 쉬멜은 무함마드를 모세의 정의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결합한 “선지자의 최고봉”으로, 하늘의 보좌에 앉아 있는 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그린다.

쉬멜의 연구는 경건한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에 대하여 갖고 있는 정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또 다른 학자가 지적했듯이, “무슬림들은 알라에 관한 공격도 허용한다. 무신론자와 무신론 출판물, 그리고 합리적인 단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무함마드를 모욕한다면 이슬람 사회의 가장 개방적인 계층에서조차 격렬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편으로, 무함마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 정립 문제로 고민하는 기독교 학자들도 있다. 복음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는 적지 않은 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쪽 극단에 있는, 「이슬람의 폭로」(1988)를 쓴 애니스 소로시는 무함마드를 그리스도인들이 공개적으로 경멸해야 할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권력자로 묘사한다. 또 다른 극단에 있는 로버트 오웬은 (1987년 국제선교대회에 제출한 미출판 보고서에서), 무함마드를 하나님의 메신저로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두 극단적 입장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그리고 좀더 설득적인) 입장이 「십자가와 초승달」(1989), 「공동체의 내부: 전통을 통한 무슬림의 이해」(1994)를 쓴 필 파쉘(Phil Parshall)의 입장이다. 그는 이 두 책에서 무함마드의 문화적 배경에 특별히 집중한다. 성공회 신부이자 이슬람 학자인 케네스 크래그(Kenneth Cragg)는 더 분명하게 말하는데, 그는 「무함마드와 기독교인」(1984)에서 많은 논쟁들을 불러일으킨 어려운 쟁점들에 관한 입장을 밝힌다. 융화적인 접근방식을 선택하고는 있지만, 크래그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마음이 없는 이슬람은 자유롭게 주장을 펼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을 수 없다”는 정직한 대답을 과감하게 던진다.

크래그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대담하고도 진실하게 독자에게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무함마드라는 인물과 완전히 화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들의 관계를 돌아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CT

Book & Culture 2002:1/2

[게시:200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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