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칼럼
큐티로는 충분하지 않다성경은 교회에서 먼저 읽도록 만들어졌다
웨슬리 힐  |  ctk@ctkorea.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2.06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일 하루를 똑같이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성경책을 꺼내 연두색 맥체인 성경 읽기 표에 표시된 곳을 폈다. 나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지금 내가 읽을 말씀을 밝게 비춰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읽기 시작했다. 보통 구약 두 장과 신약 두 장을 읽었다.

수년 동안 이 의식은 내 영성 생활의 정점이었다. 물론 빼먹는 날도 있었다. 정말이지, 19세기 스코틀랜드 목사 로버트 머리 맥체인의 성경 읽기 표에서 하루나 이틀을 빼먹고 나서 그걸 따라잡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걸 겪어봐서 잘 아는 내 친구는 “게으름뱅이를 위한 성경 읽기 계획표”라는 자신만의 좀 엉뚱한 대안을 마련했는데, 여러분도 이걸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말씀에서도 특별한 교훈이나 영감을 얻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하나님을 가장 온전히, 그리고 직접적으로 만나는 때라고 나는 믿었다. 이 시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사랑을 보여드리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또한 내가 주일 아침에 성경책을 펼 때 하나님께서 온전히 임재하신다고 믿었다. 한창 신앙이 성장하는 청소년 시절에, 나는 목사님이 40분 또는 그보다 조금 길게 설교를 하시는 교회에 출석했다. 목사님은 즐겁고 꼼꼼하게 성경 본문을 설명하셨다. 마치 과학 선생님이 내가 밤하늘 망원경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을 숨 가쁘게 설명하시듯이.

그 시절이었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주일 아침은 내가 매일 아침에 하는 성경 묵상의 연장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의 개인 성경 읽기는 내 영성 생활의 중심이었다.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를 듣는 것은 마치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 같았다. 잔잔한 힘과 잔잔한 감동과 잔잔한 변화의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내가 이미 내 방식대로 아침에 경험한 것을 좀 더 강화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두 가지 성경 읽기―개인 경건의 시간에 읽는 것과 주일 아침 설교를 듣는 것―사이의 관계를 거꾸로 생각한다. 내가 개인 성경 묵상을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제 나는 내가 주일 아침에 나 혼자 하던 그것을, 다른 성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말씀의 강론을 들을 때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듣는 것이 먼저이고, 그 뒤에 개인 묵상이 따른다는 생각인 것이다.

내 관점이 왜 바뀌었을까? 주된 이유는, 성경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는 성경말씀을 먹기 좋은 적당한 사이즈의 “그날의 생각”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성경은 조용한 묵상을 위해 만들어진 심오한 진리 덩어리들을 되는대로 모아 놓은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성경”으로 알고 있는 것은 사실상 그리스도인 회중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다 함께 읽도록 공인된 책이다.

 “성경”이란, 문자적으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달되도록 법적으로 위임되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신약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계약” 또는 “언약”에서 따온 것이다. 그 언약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된 것처럼(렘31:31)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 뒤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은 것이다. 이것은 내가 주일마다 동료 성도들과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당신의 부활하신 아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주일마다 내가 갱신하는 언약이다.

짧게 말하면, 나는 이제 성경을 함께 모인 하나님의 백성의 책, 곧 교회의 책이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계시록에 들어 있는 요한의 순서에 주목해 보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계1:3)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된다. 우리가 모여 함께 그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을 숙고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한다. 초대교회 교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가 말했듯이, “열방으로부터 와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우리 모두는 성경을 받아…지금 그것을 즐기며, 그것을 교회 안에서 큰 소리로 읽고 그리고 집에 간수한다.” 우리는 우리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되풀이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성경 묵상은 여전히 내 신앙생활의 정수이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정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달라졌다. 동료 신자들과 함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는 사람들과 설교하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통해서 나에게 선포된 말씀을 내가 깊이 숙고하기 때문에 나에게 중요한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다음 주일에 새롭게 들을 때까지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있기를 원한다. CT


(2014 / 12월호)

웨슬리 힐 트리니티목회신학원에서 신약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정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게시:2014.11.2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7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