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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은 나에게 신이었다벌거숭이 전도사가 라커룸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더윈 그레이  |  Derwin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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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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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안토니오 서쪽 빈민가에서 자란 나에게 풋볼은 신이었다. 폭력과 중독, 학대, 혼돈으로 얼룩진 어린 나에게 풋볼은 탈출구였다. 내가 태어날 당시 부모님은 십대였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애가 애를 낳은 격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키우길 간절히 원했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고통과 불완전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기 때문에 내가 아는 종교는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이마저도 무의미해졌다. 우리 집은 가난한 정도가 아니었다. 가난이라는 말도 사치였다. 우리 가족은 함께 식사한 적도 기도한 적도 없었다. 물론 좋은 순간도 있었다. 함께 낚시를 가거나 할아버지께서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가 좋았다. 하지만 13살이 되자 나는 우리 집 가정환경을 보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 반드시 뭐가 돼도 될 거야.” 풋볼은 내가 살고 있는 지옥에서 벗어날 탈출구였다. 풋볼이 나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천국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나에게 풋볼은 구세주였다. 경기에서 선전할 때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풋볼은 나의 정체성이었다. 풋볼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풋볼은 나에게 사명을 주었다. “더윈, 넌 대학에 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어.” 벌거숭이 전도사에게서 도망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 사명을 이루는 데 돌입했다. 샌안토니오의 외곽 컨버스에 위치한 저드슨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그곳에서 텍사스 고교 명예의 전당에 오른 D. W. 러틀리지 코치 밑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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