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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드류 윌슨 | Andrew Wilson
  • 승인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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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재즈의 공통점

VIEWS  SPIRITED LIFE │ 성령이 이끄시는 삶

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첫 1세기 때부터 분명하게 이렇게 말한다. 요즘 우리는 ‘영감’이라는 말을 창의적인 일이라면 거의 모든 것-시, 노래, 강연, 심지어는 터치다운-에 사용한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떤 특출한 것을 인정할 때 사용하지만,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성경의 고유한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성경의 영감을 논하는 고전적인 글은 디모데후서 3:16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어 데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를 사용한다.

이 말은 데오theo(“하나님”)와 프뉴pneo(“불다” 또는 “숨 쉬다”)의 복합어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그 책을 썼지만,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바울은 성경을 이와 같이 보았고, 베드로와(벧후1:21), “주님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고 말했던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예수님도 성경의 속성을 이와 같이 보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메시아는 누구의 아들인가?”

“쉽지요.” 그들은 대답했다. “다윗의 아들입니다.”

“좋다. 하지만 다윗은, 성령으로, 메시아를 ‘주’라고 부른다.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일 수 있는가?”

침묵. 누구도 답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부터 어느 누구도 감히 예수님께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마22:41-46).

 

예수님이 시편의 저자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주목해 보자. “다윗이 성령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령의 영감을, 그리고 인간 저자와 하나님 저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셨는지를 복음서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편은 완전히 신적인 것이며 그리고 완전히 인간적인 것이다.

시편은 다윗이 단지 자신의 관점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마치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다윗은 수동적으로 하늘의 말씀을 그대로 베끼거나 받아 적은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시편은 영감, 인간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문서이다. “성령으로 다윗이.”

성경에 대한 이런 이해 방식은 아마도 이상해 보일 것이다. 특히 우리가 성경의 기원을 인간이나 하나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하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감을 나타내는 언어들-숨, 바람, 성령-을 잘 살펴보면, 유용한 예시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바람이시다; 다윗은 범선이다. 하나님은 숨이시다; 모세는 풍선이다. 하나님은 음악가이시다; 이사야, 바울,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연주하시는, 저마다의 음색을 갖고 있는 각종 악기이다.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 음악을 루이가 만드는 것인지 악기가 만드는 것인지 질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흡과 선율은 암스트롱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암스트롱의 호흡이 들리는 소리가 되는 것은 트럼펫이라는 악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저자들은 계시의 도구들-여기서는 트럼펫, 저기서는 오보에-이다. 각 도구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그러나 음악가 곧 그 저자들에게 호흡을 불어넣어 선율이 바르게 연주될 수 있도록 하는 능숙한 아티스트는 성령이시다.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이 비유는 성경의 영감과 관련한 몇 가지 난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첫째, 이 비유로 우리는 암스트롱의 음악적 재능이 그의 트럼펫의 역할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이 서로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음악가 암스트롱의 역할이 줄어들 때 그의 트럼펫의 역할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듯이,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소리의 50퍼센트는 음악가의 것이고 50퍼센트는 악기의 것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 트럼펫이 영감을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더욱 더 분명한 트럼펫다운 소리를 내게 된다. 50/50이 아니라 100/100이다.

둘째, 성경 안에 있는 일부 “충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그 충돌을 어떻게 부르든, 긴장이라 부르든 모순이나 역설, 난제라 부르든, 성경 안의 특정 텍스트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바울과 야고보, 누가와 요한, 사무엘서와 역대서 사이에서. 그래서 일부는 이 불협화음이 하나님의 영감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일한 하나님이 모든 텍스트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면, 모두 동일한 소리를 내야하고 충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재능 있는 재즈 뮤지션이 복수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우리가 듣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악기들은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낼뿐만 아니라 음이 서로 충돌한다.

재즈를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이 C#과 D가 충돌하는 소리를 들을 때 그 뮤지션이 서투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 뮤지션의 연주를 신뢰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작품을 즐길 것이다.

그 뮤지션은 당신이 그 두 가지 음색을 모두 듣기를 원하고, 그 음들이 만들어내는 충돌을 인지하고, 그리고 결국 그것들이 마지막에는 해결될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기를 원한다.

나는 성경도 이런 식으로 읽는다. 성경은 어렵지만 아름답고, 복잡하지만 일관성이 있다. 성경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재즈에서 뮤지션의 숨결을 느끼듯이.  CT

 


Andrew Wilson, “That’s the Spirit!” CT/CTK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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