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와 거룩한 음성이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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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와 거룩한 음성이 나를 살렸다
  • 트래비스 리드 | Travis Reed
  • 승인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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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목표에 없었던 그분이 나에게 오셨다

 

 

13살 때 나는 첫 새 아빠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막 다녀온 교회 수련회에서부터 신앙인지 감정인지 모를 것이 흥분처럼 샘솟던 때였다. 하지만 솔직히,  목사님의 딸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어쩐지 세례를 받은 남자애들만 친구가 될 자격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새 아빠가 직접 세례를 주면 그가 집에 더 붙어 있을 것 같았다.

세례 받고 3일 후에 새 아빠는 엄마와 나를 두들겨 패고 우리 교회 청소년 지도자의 아내와 도망쳤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와 나는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했다. 그러나 너무나 착했던 교회 사람들 역시 나의 비정상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아빠가 네 번 바뀌었다는 불편한 사실도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았다. 크든 작든 1970년대와 80년대 초기에 산타 로사나 새크라멘토 지역에 있던 평범한 교회들이었고, 교인들의 주 관심사는 나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보호 방식 속에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건 없었다. 교인들은 내가 겪고 있던 고통에 참여할 수 없었고, 내 이야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듯 했다. 나는 아빠도 없고 목소리도 없는 존재였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아빠의 대역을 찾을 수 있었다. 모형 장난감들과 조니 캐시Johnny Cash의 음악이 있던 내 방은 나의 피난처였다. 나에게 캐시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위로였다.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킬 때까지 검은 색 옷을 입겠다고 한 그였다.

1975년 아빠는 캐시의 콘서트에 날 데리고 갔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아빠와 나는 다른 팬들과 함께 그를 기다렸다. 검은색 링컨이 도착했는데, 이번엔 날 데려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곧 이어 캐시가 나타났고 몇몇 팬들과 악수를 나눈 다음 차에 올라탔다.

아빠는 차창을 두드렸다. “캐시 씨. 캐시 씨. 제 아들놈한테 인사나 한 마디 해주세요.” 캐시는 차 밖으로 나와 나에게로 걸어왔다. 그리고 날 내려다보며 악수를 해 주었다. “얘야, 반갑구나. 난 조니 캐시란다.” 그때의 그 만남과 그의 음악이 있어서 나는 아빠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도 버틸 수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했지만 이내 방출됐다. 개그맨이 될까 생각했다.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하다가 무대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진다면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러려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했다. 내겐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언가 후련하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어떤 소리도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음악만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음악을 통해 난 바깥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1987년에 U2가 <조수아 트리>를 발표했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보이>와 <워>를 듣고 있던 무렵이었다. <조수아 트리>에 실린 노래들을 들으며 난 대마초와 코카인에 찌든 삶 이상의 것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분명 삶에 허락된 더 좋은 것들이 있을 것 같았다. 같은 해에 난 U2의 콘서트에 기어이 가고야 말았다. 물론 그때까지도 마약과 술에 절어 있었다. 그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한 노래는 ‘40’이었다.

갑자기 은혜의 바람이 나를 덮쳤다. “나는 주를 끈질기게 기다렸고 / 그는 몸을 굽혀 내 울음을 들었소.” 내게 들어온 것은 가사가 아니었다. 이 가사가 시편 40편에서 나왔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하던 상태였으니까. 오히려 이 곡의 멜로디와, 그것에 목소리를 하나로 맞춘 관객들의 합창이 나에게 전율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남들이 나를 해치지 못하도록 허공에 주먹질을 난사하던 형국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달랐다. 나는 전 우주를 관통하는 사랑에 빠져 있었고, 빠지자마자 온 몸이 그 사랑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군중의 하나된 목소리가 나를 하나님의 품 안으로 옮긴 사건이었다.


시편, 거리로 나오다

이 깊음의 순간은 그러나 찰나일 뿐이었다. 난 여전히 표현하지 못한 분노를 가슴에 묻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면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우리 가족 중 대학 학위를 받은 사람은 내가 처음이다. 그러나 너무 다양한 분야를 찔러 댄 통에 결실이 없었다. 결국 장래가 보이지 않는 직업들만 전전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1995년 어느 밤, 너바나의 음악을 켜놓고 운전을 하면서 술집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가운데 손가락은 당시 내 삶의 선언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입은 여전히 굳게 닫은 채, “당신들이 추구하는 건 죄다 무의미해!”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 역시 과연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날 밤 늦게 새너제이의 작은 방 침대에 누워있는데 한 목소리가 들렸다. 귀에 들리면서도 들리지 않는 음성이었다. “너의 100퍼센트를 다오. 아직 한 번도 나에게 너의 100퍼센트를 준 적이 없잖니.” 난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라면서 교회에서 그렇게나 말하던 하나님이었다. U2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아주 잠깐 만났던 그 하나님 말이다.

그 음성을 듣고 나서야 내가 하나님과 한 번도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이야기 대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지 하나님 자신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는 하나님이란 좋든 나쁘든 날 보호하기 위한 교회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생긴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은 이제는 자기를 직접 봐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어 했던 것처럼. 나는 크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100퍼센트를 드리죠.”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성경을 집어 들었다. 지난 세월 가죽 양장 성경, 금색 장식 성경, 얇은 표지 성경, 청소년을 위한 성경, 학습 성경, 최신 번역판 성경 등 참 다양하게도 모아왔다. 그럼에도 성경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목사님들의 숱한 설교 중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다. 단 하나, 시편이 성경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기억났다. 시편을 펼쳐 정신없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캐시 앨범의 가사와 해설을 찾아 외우던 때 같았다. 깊고도 풍부했다. 심지어 길거리 문화의 느낌마저도 가지고 있었다. ‘와, 이거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는데.’ 그날 밤은 수년 만에 처음으로 깊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운전을 하면서 U2의 <래틀 앤 험>에 실려 있는 ‘호크문’을 들었다.

사막에 비가 필요한 것처럼 
마을에 이름이 필요한 것처럼 
나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네.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모를 때 
돌아갈 수 있는 집처럼 
진한 커피처럼  니코틴처럼
나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네.

나는 차를 세우고 울기 시작했다. 노래 막바지에 나오는 래리 뮬렌의 드럼은 그냥 드럼이 아니었다. 나의 존재를 알리는 고동이었다. 둥둥 울리는 베이스 드럼 소리는 나의 삶을 질척거리도록 붙잡고 있던 악마의 얼굴을 가격하는 자유의 울림이었다. 난폭함에서부터 정의로움으로 나를 이끄는 부름이었다. 정의롭게 살 힘과 희망을 주었다. 내 몸을 칭칭 옭아매고 있던 사슬, 아무도 듣지 않던 나의 내재된 고함이 전부 끊겼다. 끊겼을 뿐 아니라 산산이 조각나 사라졌다.

노래가 끝나고 정신을 차렸다. 어디다 차를 세운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어떤 여자 분이 풀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 범벅인 채로 차에 앉아 물이 호스에서부터 나와 태양빛 아래서 이리저리 춤추는 걸 지켜봤다. 보석 같았다. 깨끗하고 순수했으며 빛이 났다. 매일의 평범한 일상이 내 눈 앞에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심을 알 수 있었다. 그 잔디밭 주인 옆에도, 내 옆 조수석에도.

사랑의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죽은 자들 가운데서 건져주셨다. 너무 명확해 부정할 수가 없다. 나는 죽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나의 이야기는 이제 구원을 말하고 있고, 그러므로 나에게도 목소리가 생겼다. 더 이상 가짜 열매를 줄기에 붙이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내 구원의 열매는 매일 볼 수 있으므로. ‘워크 오브 더 피플’(내가 설립한 미디어 선교회이다) 역시 나처럼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살아있고 숨 쉬는 증거다.

또 한편 나는 하늘 아버지와 같은 지붕 아래 살게 되었다. 덕분에 아버지란 존재의 빈 자리가 조금씩 메워지고 있다. 남편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로서 이런 과정이 진실임을 난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깊고 깊게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가 알아주길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달리고 계시며, 그 손에는 옷과 반지와 잔치 계획이 들려 있다. 이것 외에 더 알아야 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CT

 


트래비스 리드 미디어 선교회 ‘워크 오브 더 피플’ The Work of the People 설립자
 Travis Reed, “Running to Stand Still” CT 2013:10; CTK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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