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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형성을 위한 예수의 가이드"예수가 개정한 신앙고백이 제자들의 성장을 위한 열쇠가 되었다"
조세프 B. 모디카  |  Joseph B. Mod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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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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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맥나이트 지음
김창동 옮김 새물결플러스 역간

캇 맥나이트의 「예수 신경: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The Jesus Creed: Loving God, Loving Others는 고대 유대교 기도인 쉐마가 어떻게 초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랑을 중시하도록 독려했는지, 또한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의 영성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노스파크 대학교North Park University 종교학 교수인 맥나이트는 1세기 기독교·유대교 관습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역사적 사건들과 그의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로 보완한다. 이스턴 대학교Eastern University의 교목인 조세프 B. 모디카가 맥나이트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신의 책은 영성 형성을 다룬 다른 책과 어떻게 다른가?

영성 형성을 다루는 대다수의 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는 반면에 「예수 신경」은 영성 형성의 목표,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이 책은 1세기 예수의 추종자로서 어떤 영적 성숙의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또한 이 책은 부적절한 증거 본문을 나열함으로써 영성 형성의 이론을 세우려하기보다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유기적, 역사적으로 묘사하여 영성 형성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다.


예수의 영성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나?

기독교 신학에서는 예수가 삼위일체의 제2 위격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어떤 신자들은 예수가 처음부터 영적으로 성숙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의 배후에는 예수가 단지 육신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만 했다고 주장하는 가현성의 오류가 숨어 있다. 누가복음 2장은 예수의 키와 지혜가 자랐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예수는 한 인간으로서 영적인 성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영성 형성에 영향을 준 첫 번째 요인은 부모였다.

요셉은 토라에 온전히 헌신된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갑작스럽게도 그가 성령으로 잉태한 여인과 결혼할 것이며, 그가 유대 사회 내에서의 평판보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셨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강한 영적 영향력을 끼쳤다. 마리아 송가를 보면 그녀가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성서를 알았고, 이스라엘의 소망을 알았으며, 그 (소망이 이루어질) 날을 간절히 사모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요셉처럼 자신의 평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예수를 볼 수 있으며, 그의 어머니가 송가에서 표현한 가치들이 그의 삶에 드러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영성 형성에 영향을 준 두 번째 요인은 이스라엘이 신성하게 간주하는 암송 구절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쉐마(신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를 되풀이하여 암송하는 것이 일상적인 관습이었는데, 이러한 반복적인 암송은 예수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안식일에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 이스라엘의 종교력에 따른 절기, 그리고 절기를 통해 재연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도 그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면 예수 신경은 무엇인가?

예수 신경은 유대인의 쉐마에 이웃 사랑의 계명을 더한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신6:4-5)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19:18) 예수도 일반적인 유대인들처럼 하루 두 번 이것(수정된 쉐마)을 암송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따라해 보기를 부탁한다. 한두 달 정도 이 신앙고백을 반복적으로 암송하면서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실험해보길 바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 수정된 쉐마를 예배나 기도에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는가?

훌륭한 질문이다. 매번 그렇지만, “증거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라고 대답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나 그의 추종자들이 쉐마 외에 레위기 19:18을 추가로 암송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예수 신경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가르침에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그 핵심 내용은 명백히 그리스도인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신경을 고백하는 공동체로서,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이 쉐마를 되새기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예수가 이 신경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세 명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로마서 13:8-10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온전히 짊어져야 할 의무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히 예수가 젊은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에서 온 것이다.

두 번째 지도자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이다. 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써 “온전한 자유의 법”인 율법을 요약하고 있다. 마지막 인물은 사도 요한이다. 그는 요한복음 13장에서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랑을 위치시킬 뿐만 아니라, 요한1서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위대한 새 계명이라고 말한다. 이 사도들 중 어느 누구도 “이것이 우리가 매일 암송하는 것이다”라고 명백히 말하지 않지만, 그들이 강조한 요소들은 쉐마의 중심 주제가 그들 생각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초기 기독교 핸드북이라 할 수 있는 디다케의 첫 부분에서는 두 가지 삶의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는 생명으로,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인데,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디다케의 이러한 가르침은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일을 강조하는 본문에 언급되어 있는데 우리는 초기 교부들의 글에서도 동일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영성 형성의 한 형태로 예수 신경을 실천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이 초기 기독교 저술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신경과 동일한 교훈이 초기 기독교 저술들에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예수의 추종자들이 영성 형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예수 신경을 실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만일 예수가 이 수정된 쉐마를 가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왜 그것은 산상수훈과 같이 교훈적인 본문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답변하는 논쟁적인 본문에만 등장하는 것일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어떤 교훈이 “논쟁적인” 문맥 안에서 언급되었다고 하여 그 가르침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때때로 논쟁적인 상황에서 신앙고백의 핵심적인 내용이 확증되기도 한다. 아리우스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니케아 신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가톨릭 신학자들과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이신칭의를 강조하는 (루터교회 또는 개신교) 신학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압력은 종종 근본적인 신념으로 인도한다.

둘째, 예수가 젊은 부자 청년에게 한 말씀엔 확실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 예수는 십계명 후반부를 레위기 19:18로 마무리함으로써 그 계명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긍정적인 이해를 심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산상수훈에서도 사랑의 계명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사실상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신경의 후반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감상적인 색채를 띠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예수 가르침의 철저한 요구를 둔화하는가?

우리 문화에서 “사랑”은 연약하고 수동적인 개념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미국 문화는 “관용”을 사랑의 가장 중요한 형태로 만들어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다원화 된 서구 문명사회에 속한 모든 문화에 내재한 근본 윤리일 것이다. 하지만 관용은 예수가 그의 추종자들에게 요구하는 덕목들의 무미건조하고 맥 빠진 형태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관용으로 변질되어버린) 사랑을 기독교 윤리와 생활양식의 핵심으로 삼는 것을 재고하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탁한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갈망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며, 이웃 사랑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 원하시는 것을 갈망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관용을 행하는 것은 쉽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CT

Joseph B. Modica, “Jesus’ Guide to Spiritual Formation” CT 2005.4.20. 
 

▌[서평] 스캇 맥나이트의 책

배제의 시대, 포용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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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와 제자들이 매일 암송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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