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분히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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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분히 근사하다”
  • 박명철
  • 승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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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 부는 ‘아들러 열풍’의 흐름과 의미를 찾아보니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기시미 이치로 지음 | 살림 펴냄


점가는 바야흐로 ‘아들러 열풍’이다.

‘예스24’ 2월 첫째 주(1월 29일~2월 4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심리학 도서 「미움 받을 용기」가 마침내 1위를 차지했다. 아들러 관련 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출판되고 있다. 기시미 이치로의 다른 책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살림)과 「버텨내는 용기」(엑스오북스)가 번역되었고, 아들러의 저작 「아들러 심리학 입문」(스타북스),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와이즈베리),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카시오페아) 등이 출간됐다. 이밖에도 「심리학 콘서트」(다고 아키라 지음, 스타북스)를 비롯해 아들러 관련 책들은 작년부터 꾸준히 출간되어 10종을 훌쩍 넘기고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1870~1937)는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로 심리학계에서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거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들러 바람은 작년 일본에서 불기 시작했다. 「미움 받을 용기」가 50만 부 이상 팔리고, 관련 서적들이 연이어 출간되었으며, 만화로도 제작되어 서점가를 강타했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일본인들의 남다른 교육관이 어쩌면 지나치게 타인의 눈치에 민감한 일본인들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감안할 때, 책 제목 그대로 ‘미움 받을 용기’는 일본인들에게 충분히 호소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배려에 민감한 일본인들과는 좀 다르다. 가령 공공장소에서 어린 자녀들이 소란스럽게 뛰어다녀도 내 아이가 혹시 기죽지 않을까봐 따끔하게 혼내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 이런 점에서는 다른 사람 눈치에 덜 민감한 사회인 셈인데 일본의 ‘아들러 열풍’이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작동하는 까닭은 뭘까?

 

아들러 심리학을 부른 ‘갑을사회’

우리나라에서의 ‘아들러 심리학’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미생’이다. 만화와 드라마로 작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을 휩쓸며 문화현상이 되어버린 단어이다. 대기업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이 작품은 기업 내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갑과 을의 지형을 단면도로 그려낸 점에서 직장인들의 절대 공감을 얻어냈다.

직장 내 서열은 그저 직책의 분류가 아니다. 그것은 직장이라는 공간이나 근무시간을 떠나서도 그대로 존재한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우리 사회의 험악한 현실을 고려하면 기업의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직장일수록 직장이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클 수밖에 없고, 구심력은 갑을 관계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직장을 떠나서도 우리 사회는 갑과 을의 대치상황으로 그려진다. 겉으로는 열린 듯 보이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드러나지 않는 장벽들이 구성원들 사이의 신분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분석이다.

충남대 사회학과 김필동 교수는 ‘땅콩 회항’과 ‘백화점 갑질모녀’ 사건 등 최근에 일어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언급하면서 “경제적 능력이 우월한 일부 계층 사람들이 이를 ‘인격적 우월성’으로 환치해 상대에게 과시하고 나아가 이를 폭력적으로 행사하려 한 사례”라고 보았다.

한림대 심리학과 이주일 교수도 “주위를 돌아보면 (개인의 사회적 지형이) 정치, 취업 등 개인이 아닌 (다른) 상황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점에서)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아들러 심리학이 우리나라 현실과 맞아 들며 아들러 열풍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을 기반으로 정신분석을 해온 전남대 이무석 교수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안감의 원인으로 열등감을 지적한다.

“한국은 지나치게 경쟁과 투쟁의 사회가 되어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자기애적 사회로 변하면서 모두가 열등감을 가진 패배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것인데, 한국에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보다는, 타인의 박수를 받는 스타로 살아가길 바란다. 일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한국 엄마들은 ‘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인간 도리를 지키는 삶에 박수를 쳐주지 않고, 수능점수만 높으면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행동까지도 합리화해준다.…고위직에 오른 이들조차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자기보다 성공한 사람 앞에선 열등감에 휩싸여 모두가 심리적 패배감 속에 살아간다.”
‘갑을사회’를 지탱하는 심리적 기반이 열등감이라는 진단이다.

 

갑을사회의 처방 ‘과제의 분리’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아들러 심리학은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자기 존재의 선언을 지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들러의 문법으로 말하면 이것은 ‘평범해질 용기’이며 그 중심에는 ‘과제의 분리’가 핵심을 이룬다.

아들러는 인생의 과제는 원칙적으로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고 자주 질문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가령 공부는 아이 자신의 과제인데 부모가 나서서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아이의 과제에 간섭하는 일이 되어 아이와의 충돌을 일으킨다. 원칙적으로 다른 사람의 과제를 내가 떠안을 수 없고, 내 과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다. 그러나 과제의 분리는 간단하지 않아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헷갈릴수록 누구의 과제인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게 아들러의 주장이다.

과제의 분리는 결국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수직관계란 곧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을이 존재하는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불편하게 마련이다.

수평관계는 나 자신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이다. 편안해지려면 우리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기시미 이치로는 이를 “행복해질 용기”로 부른다.

드라마 <전설의 마녀>는 드라마 속 한 조연이 부른 노래 한 곡으로 제법 검색어에 올랐다. 그 노래가 “나는 젠틀맨이다”인데, 교도소에서 장기 복역하고 있는 수감자가 불렀다. 시청자들의 귀를 매혹시킨 그 가사는이렇다.

“젠젠젠 젠틀맨이다, 시계 차고 가는 너, 너만 잘났냐? 수갑 차고 가는 나, 나도 잘났다! 얼굴 고와 이쁜 너, 너만 잘났냐? 나이 먹어 주름 진 나도 잘났다! 공부 잘해 대학 가는 너만 잘났냐? 공부 못해 대학 못간 나도 잘났다!”

제대로 된 ‘과제의 분리’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은근히 분리되지 않고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과제의 혼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초청 메시지

프로이드는 열등감의 원인을 트라우마에서 찾는다. 그러나 아들러는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전문가들은 아들러가 트라우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트라우마라는 과거보다 이를 극복한 미래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본다. 아들러 역시 아버지로부터의 압박과 작은 키로 말미암아 트라우마를 경험했고, 이를 잘 극복해 낸 사람이었다. 대신 프로이드는 다섯 살 성격이 평생 간다고 한 반면 아들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때문에 자기계발 또는 육아의 가치를 지탱해주는 심리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모든 열등감은 극복될 수 있다고 강조한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들러 열풍’은 그런 점에서 일그러진 사회, 또는 관계의 고리를 끊으려는 심리학적 노력으로 볼 수 있으며, 성서 또한 한편으로는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넌 이미 충분히 근사해!”라고 선언하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가. 물론 그렇게 근사한 인간을 볼품없이 만들어버린 죄의 침략에 대해 구원의 전쟁을 작정하시고 끝내 승리하신 분 또한 창조자의 몫이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지금 충분히 근사하다고 다시 인정해주셨음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이 지점에서는 ‘아들러 열풍’의 또 다른 지지자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 봄에 부는 아들러의 ‘바람’을 그분의 따뜻한 초청메시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2-13)  CTK

CTK 2015:3 "나는 충분히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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