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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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약해야 한다
  • 마이크 어 | Mike Erre
  • 승인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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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12:8-10

 

바울은 자신의 능력이 퇴보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게 되자, 그로 인하여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더 잘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의 능력은 약함 속에서 끝이 났고, 그 결과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찬양한다. 왜냐하면 이제 바로 자신의 그 약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시다는 것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조차도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 지배하는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바울이 ‘지극히 큰’사도
[고후12:11]임을 입증하지 못하자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바울을 가벼이 여겼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는 카리스마와 능력과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문화는 지위나 신분, 업적으로 따라야 할 모델을 결정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사람들이 “자랑한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거나 드러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약함과 자신이 겪었던 핍박과 고난을 열거하고, 왜 그런 일들을 자랑하는지 설명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무력할 때 우리를 위해 최선을 베풀어 주신다고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약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중심 주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큰 나라를 이루기 위해 나이가 많아 불임에 이른 아브라함과 사라를 쓰셨다. 모세는 자신의 언변이 능하지 못하다며 여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를 세워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예속에서 건져 내셨다. 다윗은 소년에 불과했지만 골리앗에 맞설 수 있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에야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성경 어디에서나,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약함 속으로 이끄시어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쓰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을 적극적으로 제약하신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다음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신다. 우리를 강하게 만든 다음에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 우리의 지혜, 우리의 자만심의 한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다른 어떤 것(누구)이 아니라 오직 당신을 신뢰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강함과 약함의 역설이다. 나는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하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쓸모 있다. 절망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을 때 예수님이 내 곁에 가장 가까이 계신다.


하나님의 방식은 승리주의triumphalism가 아니다. 위대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일체의 약함이 사라진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나 자신의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나의 약함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발견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나와 마찬가지라면, 여러분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일단 저항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루고자 할 것이고 문제를 돌파하려 할 것이다. 장애물은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했지, 그 앞에서 나의 약함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말한다. 목표는 바로 우리의 능력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나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이런 상투적인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주시지 않으신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위로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고전10:13) 바울의 이 말은 우리의 상투어("하나님은 절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주시지 않으신다")와 같은 말이 아니다.
사실,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우리에게 주시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약함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그토록 심오한 까닭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바울은 믿음은 곧 절망의 순간에 피어난다고 말한다. 곧, 절망의 순간은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삶은 이런 순간에 도달하지 않도록 설계되고 있다. ‘나는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용감하고 능력 있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싶어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은 인간이 약함을 극복하는 것보다 인간의 약함을 통해 역사하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내시는 것이 아니라, 시험 가운데서 당신을 드러내어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의 강함과 당신의 능력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당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일하시는 방식이다. 그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두신 것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후4:7). 우리의 약함 가운데서 그리고 그 약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당신의 목적을 드러내시기 위해 세상의 비천하고 괄시 받는 것들을 사용하시어 당신의 위대함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의 약함은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허상 속에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당신에 대한 신뢰와 영광을 얻어 내신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우리를 끌어내려 당신의 품 안에 머물게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약한 것을 몹시 싫어한다. 우리는 전문가로 보이고 싶어 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교회들이 성장을 위한 도구, 기법, 마케팅에 빠져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종종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 교회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에 너무 도취되어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될 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함의 축복’을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 교회에 있는 모든 것은 역동적이고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분단위로 일들을 계획하고, 이어질 순서와 기도를 예행연습하고, 새롭게 진행할 과정과 프로그램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당신만 바라보는 이들에게로 옮겨가신다.

현대 문화가 좇는 꿈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같은)은 스스로의 강함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God’s Dream은 우리가 우리의 약함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두 가지 삶의 방식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보고 싶다면, 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삶을 완전히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강함의 한계점에 도달해야 한다. 달라스 윌라드가 말했던 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당신이 하는 그것이다.” CT


 


마이크 어 캘리포니아 풀러톤의 제일 복음주의 자유교회First Evangelical Free Church 목사


이 글은 마이크 어 목사의 “내가 약할 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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