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이야기] 깊이를 생각한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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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이야기] 깊이를 생각한다 ①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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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영적으로 깊이 있는 성도를 길러내는 것이다
 

근 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깊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리처드 포스터의 다음 문장 덕분에 이 단어의 의미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건 똑똑한 사람도 재능 있는 사람도 아니고 깊이 있는 사람이다.”

무한한 선택, 요란한 방해거리, 수많은 진리들. 이 모든 것이 영혼을 뒤덮는 오늘날,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건 어떤 뜻일까? 일주일에 50-60시간을 일하고, 각종 사회활동과 학교행사, 쇼핑, 인맥관리, 집안일, 가족활동… 아, 게다가 교회활동으로 바쁜 사람이 언제 깊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수도원 밖에 있는 사람에게 깊이가 가당키나 한 일일까?

물론 이런 물음에 답하려면 깊이의 뜻부터 알아야 한다. 내가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다. “깊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분의 성품, 섬기는 삶,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다.”

깊이 있는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은 다양하지만 그에게는 예수님을 따르게 하고, 그분을 닮게 하고, 섬기며 살게 하는 영향력이 있다. 그는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영적인 덫을 경계한다. 그는 지혜롭고 자비롭고 시련이 닥칠 때 인내한다.


깊이가 얼마나 중요할까

‘교회의 가장 귀한 보배는 깊이 있는 성도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최근 교회들은 구도자와 청년, 다민족을 강조한다. 모두 건강한 교회의 표지다. 하지만 교회의 중심에 깊이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문제가 있다. 깊이 있는 사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길러내야 한다. 깊이 있는 사람이 교회의 목사보다 성공적인 프로그램보다 예배팀보다 더 귀하다. 어디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앞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도 생각해보자. 교회의 깊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일터와 학교, 사회에서 일하는 평신도들이어야 한다. 교회 리더들은, 자기 돈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누가 깊이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모든 세대에서 깊이 있는 사람을 계속 양육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역에 골몰해야 한다. 교회는 이런 양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하면서 담임목사에게 이 일을 맡겨야 한다.

교회가 이런 제안을 수용하면 어떻게 될까? 담임목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이라면? “담임목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최고(영성)계발경영자로서 교인들을 섬기는 것이다. 담임목사는 해마다 교회 안팎에서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일정한 수의 교인들을 양육할 책임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째, 더 이상 깊이 있는 사람을 양육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딘가 문제가 있다. 윌로크릭교회의 자체 보고서, 「발견Reveal(국제제자훈련원 역간)에도 나오듯이 교회 프로그램으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많이 양육할 수 없다. 둘째, 나는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자체 조사를 벌였다. 북미와 해외를 다니면서 목사들에게 물었다.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이렇게 물으면 어떤 사람이 깊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그 수가 적다는 데 잠잠히 동의한다.

우리가 교인들에게 실천할 수 없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교회에서는 깊이 있는 사람을 양육하고 있는가?(이렇게 물으면 모두 일시적인 성공에 그쳤던 양육 프로그램을 조용히 떠올린다).

교인 가운데 잠재적으로 깊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양육하고 있는가?(이렇게 물으면 대개 주간에는 시간이 없다고 서로 하소연한다).

때때로 고무적인 답변을 듣기도 하지만 목사들이 대개 골몰하는 건 깊이 있는 사람을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흔히 설교)이었다.

그런데 설교로는 깊이 있는 사람을 기를 수 없다면? 설교에는 감동과 정보와 조언이 있을 뿐이라면?
모두 중요한 기능이지만 “뿌리를 박고, 굳건히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여 넘치는 감사를…”이라는 바울의 말에서처럼 깊이 있는 사람을 양육하는 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면 우리는 삶을 바꾸는 사역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목사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간혹 큰 교회에는 ‘양육’을 담당하는 목사가 따로 있다고 대꾸한다. 이는 대개 훌륭한 사역자들이 맡고 있는 소그룹 프로그램을 뜻한다. 하지만 깊이 있는 교인을 많이 길러내는 것이 교회의 최우선 과제라면 담임목사가 직접 그 일을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된다. 그래야 교인들도 그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담임목사는 교회의 첫 양육자가 돼야 한다. CT

 


고든 맥도날드 <리더십 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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