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구원은 없다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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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구원은 없다 [구독자 전용]
  • 메건 힐 | Megan Hill
  • 승인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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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내 고백에도 놀라운 은총이

ROBBY FOLLOWELL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날을 나는 모른다. 예수 믿겠다고 매달려 기도한 적도, 예수를 찾았다고 외친 순간도 없다. 사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예수 믿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내 ‘고백’은 솔직히 따분한 이야기다. 나는 1978년 코네티컷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독실한 장로교인 부모님을 두었다. 땅콩버터 샌드위치 한 조각도 감사기도를 드리고 먹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어린이용 교리문답을 암송했다. 아빠가 불러주신 노래는 늘 비틀즈 아니면 찬송가였다. 이런 종교적 분위기는 가정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교회 활동이 한 주간의 생활 리듬을 결정했다. 내 주위에는 늘 주일학교 선생님들, 그 다음에는 청소년부 리더들이 있었다. 항상 그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부른 노래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같은 찬송가였다. (나는 이 찬송가의 세 가지 다른 버전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어릴 때 암송했던 흠정역성경KJV(회중석 비치용 성경이 나중에 NIV로 교체되기 전까지 우리는 KJV를 사용했다) 구절들을 잊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개역개정판) 어린 아이에게 흠정역성경의 옛날 말투는 여간 낯설고 외우기 어려운 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들을, 나는 서너 살 때 다 배웠다. 나의 창조주 하나님, 나의 구주 예수님,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 내가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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