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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교회되게네가지 교회 특징, 우리에게 삶의 과제를 부여한다
송태근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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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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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Global Gospel Project
그래도 거룩한 교회
교회를 교회되게

니케아신경은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고백한다. 신학은 이를 교회의 네 가지 표지, 통일성과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라 칭한다. 그런데 교회의 이러한 특징을 고백한 니케아신경 자체가 가시적 교회의 통일성을 깨뜨리는 하나의 큰 원인이었음을 우리는 지난 호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터("삼위일체의 맛을 제대로 즐기자")에서 보았다. 이번 호 GGP의 핵심어는 교회의 두 번째 특징, 거룩성이다. 역시, 거룩하지 않은 교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깨지고 분열된 교회,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교회를 고백한다. 그리고, 전혀 거룩해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거룩한 공회…를 믿사옵나이다”). 앞으로 이어질 GGP에서 교회의 보편성과 사도성은 또 어떤 역설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하면서, 교회의 네 가지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한 송태근 목사의 설교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추려 싣는다.-CTK 

리가 그리는 교회의 그림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무장한 군사다, 그리스도의 신부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교회에 대한 이해와 이미지가 이처럼 제각각입니다. 이것들 모두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교회에 대한 이런 다양한 이해를 전부 모아서 조직신학은 교회를 정확하게 네 가지, 곧 통일성과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으로 정의합니다.

교회의 이 네 가지 특징을 우리 개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각자가 모여서 교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특징들은 나 개인과 절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삶과 밀접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곧 우리 교회의 이야기가 됩니다.


교회의 첫 번째 특징은 ‘통일성’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이 말씀은 교회가 지양해야 할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원문에는 우리말 성경에는 빠진 글자가 하나 나옵니다. 원문에는 ‘통일’이라는 단어 앞에 ‘다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가 들어갈 때와 들어가지 않을 때의 개념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원문에 맞게 ‘다시’라는 단어를 집어넣어서 ‘다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을 때, 이 ‘다시’라는 말 속에는 ‘원래 통일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망가졌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원래 어떻게 통일이 되어 있었을까요?

골로새서 1:13-17은 그리스도를 ‘만물이 있기 전에 먼저 계셨다’고 묘사합니다. 모든 만물이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 혼자서 하신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창조의 역사에 함께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왕권, 통치권, 주권, 권세도 전부 창조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원래 하나님의 설계도였습니다. 이렇게, 그분의 주권을 중심으로 만물이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통일이 되었다’는 말은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질서 있게 거느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제일 먼저 천사가 타락하여 어둠의 영, 사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서 하와가 넘어가고, 아담이 넘어가고, 급기야는 자연계, 피조물까지 타락을 합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로 자연계는 타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땅이 엉겅퀴를 내고 가시를 내고 자연계가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 통일되었던 모든 세계가 망가졌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것을 다시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4:5-6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 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합니다.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는 말은 그가 모든 것을 원래의 질서대로 그분 밑에 거느리시고 그분이 통치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마지막 목적입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바로 선교적 사명이 있습니다. 

이 땅에는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해 어두운 문화가 있습니다. 하나님 질서 밑에 들어오지 못한 문화와 영혼은 아직 통일이 안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11-22은 “서로 지어져가는 건물”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집이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지어져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를 이 땅 위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새 하늘과 새 땅, 사자 굴에 손을 넣어도 해를 입지 않는 그 나라, 눈물과 고통과 질고를 겪는 이 지구상의 나라가 아니라, 유한한 자기 자신을 향하여 자괴감에 빠지고 한탄하며 울 수밖에 없는 나라가 아니라,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통치와 완전한 질서 밑에 들어가는 새 나라, 그분이 오시면 우리의 흘렸던 눈물을 닦아주고 질서를 회복할 그 나라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그날이 오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세계가 우리에게 덧입혀 옵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교회가 이 땅에 설립된 것입니다.


교회의 두 번째 특징은 ‘거룩성’입니다. 

교회에 대한 이런저런 묘사가 있는데, 그중에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묘사도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먼저, 신부 집에서 ‘정혼’을 하고, 신랑은 신부를 남겨두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1년간 별거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돌아간 신랑은 아버지의 감독 아래서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짓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요14: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거할 집을 예비하러 가신다는 이 말씀의 배경에는 이와 같이 유대인의 결혼식이 있습니다. 

떨어져 있는 1년 동안, 신부도 신랑을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이 준비 기간에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혼수품은 바로 신부의 정절입니다. 그런데 남겨진 신부, 곧 이 세상에 남겨진 우리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강조합니다(엡6:10-20). 세상의 유혹과 매력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거룩’의 의미는 오직 신랑을 삶의 우선에 두고 신랑만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분께 내 정절을 준비하여 지키는 것이 곧 거룩입니다. ‘그 신랑’은 우리를 위해서 전부를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택함을 얻은 그분의 신부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에 오로지 신랑만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부의 거룩한 삶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향한 교제, 곧 기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교회의 세 번째 특징은 ‘보편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의 주인공처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로 말미암지 말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선언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분의 약속이기 때문에 절대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절대 진리가 우리 교회의 택함 받은 성도만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까? 여기에 ‘보편성’이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즉, 이 보편성은 시대, 족속, 국경, 민족을 넘어서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만인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대와 민족을 넘는 보편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명이 교회 안에 이루어지려면, 여기에도 선교적 교회의 개념이 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보편적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끼리만 모인다면 “그들만의 리그”로 끝납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이 성중에 많도다.”(행18:10)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하신 이 말씀처럼, 아직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저 어둠의 땅에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가서 전해야 할 영혼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보편성의 가치가 회복되려면 우리가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서 전하고 외쳐야 합니다. 나에게 복음이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전해주지 않는 자가 없이 내게 어떻게 복음이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친구의 손에 끌려서, 누구의 권면으로, 우리 모두 그렇게 온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는 이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마지막 네 번째 중요한 가치는 바로 ‘사도성’입니다. 

사도성이란 ‘보냄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어느 한 집에 숨어 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평강’입니다. 주님이 나실 때도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눅2:13-14)라는 하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 또한 평강의 회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한 인간의 모든 관계는 평강이 아니라고 성경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면서 발생하며, ‘샬롬’이 임해야 온전히 회복됩니다. 주님이 이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요20:22). 성경에는 하나님이 숨을 쉰 두 현장이 있습니다. 아담을 빚으시고 그 코에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 덩어리가 산 영이 됩니다. 그런데 그 아담은 실패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아담은 죄를 짓고 범죄하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망 권세를, 죽음을 깨쳐 내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안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제자들 곧 사도들에게 하신 명령은 바로 “아버지께서 나를 땅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져야 할 사도성입니다. 이 말을 오해해서 오늘날 교계 일부에서 소위 “신사도운동”이라는 것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신사도운동은 “오늘날 사도직이 계승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서 정확히 정의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직접 보냄을 받은 자만 사도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이 땅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주님 밑에서 배운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직책은 계승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계승해야 하는 것은 사도의 직책이 아니라 사도들이 이 땅에 남겨놓은 의무와 목적과 가치입니다. 교회의 사도성이란 바로 이 의무를 다하도록 교회가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의 통일성과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은 공동체로서의 교회에만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의 한 지체인 나에게, 나의 평생에 주신 과제입니다. CTK

이 설교문은 송태근 목사의 2012년 12월 30일 삼일교회 주일예배 설교, “교회의 4가지 특징-교회를 교회되게”(엡1:23)를 허락을 얻어 간추린 것이다.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이며모든 끝은 시작이다(국제제자훈련원),쾌도난마 요한계시록(지혜의샘),하나님의 부르심(성서원),하나님이 다 하신다(성서원), 쾌도난마 사도행전(넥서스CROSS),믿음은 그런 것이다(포이에마),내겐 사랑만 남았다(포이에마) 등의 저자이다.

송태근, "교회를 교회되게" CTK 2014:4

[게시: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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