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힘들게 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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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힘들게 일하지 않는다?
  • 케빈 A. 밀러 | Kevin A. Miller
  • 승인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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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에 대한 세 가지 고정관념 ①

포츠의 코치나 심판을 제외하고 오지랖 넓은 충고를 많이 듣는 직업이 목사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목사는 이래야 한다.’ ‘목사는 이렇게 일해야 한다.’ 목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각양각색이다.

아예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더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태도는 사역을 실패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일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몇 가지 발견했다.

목사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섞인 기대치를 통해 내가 어떻게 소명의 핵심에 집중하게 되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 “목사님은 그다지 힘들게 일하지 않잖아요.”

저돌적인 사업가인 한 남자가 말했다. “주 1회 근무하면 별로 힘들지는 않겠네요.” 그러고는 하! 하! 하! 웃는다. 다소 빈정대는 웃음이었다. 농담인 줄 알지만 속뜻이 빤하다.

농담을 한 꺼풀 벗겨보면 본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기가 나보다 더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이 더 길뿐만 아니라, 가령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것 같은 진짜 일을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런 사람 눈에 영적인 일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참 거슬린다. 남자로서 자존심을 쿡 찌르니 대꾸하고 싶은 맘이 욱하고 올라온다. ‘당신이 틀렸어요.’ 모르긴 몰라도 나도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하루 종일 일한다. 그 사람보다 더 힘들게 일하고, 더 긴 시간 일한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영적인 일을 한다는 것을-그에게 보여주고 싶다. 거기에 보통들 하는 ‘정신없이 바빠요’라거나 ‘달력에 스케줄이 꽉 찼어요’ 같은 말도 덧붙여 주고 싶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하거나 내가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지 교회에 증명하려고 할 때 사소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바로, 목사인 나 자신이 망가진다는 사실.

지난 가을 교역자 회의에서 내년 부활절 예배 계획을 논의하고 있을 때였다. 다른 교역자들이 의견을 냈지만 나는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았고 고집스럽게 내 뜻을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한 명을 울렸다. 그것도 남자를. 내가.

회의가 끝난 후 그를 만나 사과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궁금해졌다. ‘내가 왜 그렇게 열이 올랐지?’

우리 교역자들은 의견 차이도 잘 수용하는 사람들이라 종종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주에 나는 기도하는 날을 하루 가졌다. 내가 특별히 영성을 자랑하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에서는 목사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한 달에 하루는 말 그대로 기도만 하는 날이다. 나는 햇살이 내리쬐는 폭스 강을 따라 걸으며 큰 소리로 기도하다가 자전거 탄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목소리를 낮춰 기도했다.

하지만 왜 그동안 그렇게 다음 사역에 대해 세상 종말을 앞두고 있듯이 사생결단을 내려고 했는지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회 사역이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초점이 다시 하나님께, 사랑에, 사람에게, 그리고 인내에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목회란 영혼을 쏟는 일이다. 그러니 하루 종일 일만 하면 영혼을 잃어버리고 만다. 너무 많은 사역을 하면서, 나는 정작 사역에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잃어버린다.

리처드 포스터는 「기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는 고독이란 삶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경쟁 속으로 힘 있게 뛰어들기 위해서 재충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고독을 통해 얻는 힘이 무한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오롯이 못 본 척 할 수 있는 능력임을 알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필요 이상의 부를 얻고 지금보다 더 젊어 보이고 더 높아지고자 하는 강렬한 내적 욕구를 내려놓는 우리의 자아가 얼마나 현명한지 알게 된다.

고요한 순간 속에서 우리의 거짓되고 분주한 자아는 가면이 벗겨지고 거짓말쟁이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폭스 강변을 걸을 때 나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거짓되고 분주한 자아’를 떨쳐낸 것이다. 우리 교회 목사님 한 분이 내 잘난 생각보다 더욱 귀하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내 자아는 너무 분주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일한다며 나를 깎아내리던 사업가의 말에 핵심이 있다.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적은 시간을 일하는 게 마땅하다.

나 자신을 살피고 기도하면서 납득할 수 없는 비판과 사람들의 무시를 용서할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 교회 재정문제에 대한 걱정을 덜어낼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은 엉망진창이 되고 결국 목사로서 온전히 서지 못 하게 된다. 다시 말해 목회는 다른 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친구 하나가 이 문제에 대해 기도해준 적이 있다. 이 친구의 기도는 마치 예언하듯이 내 죄목을 고발하는 고소장 같았다. 그가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케빈을 완전히 변화시키셔서 더 이상 시간 대비 효율성을 따지지 않게 하시고 오직 목사라는 존재 자체로 살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것이 곧 그의 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로 말미암아 책상 지킴이가 아니라 무릎 꿇는 이가 되게 하옵소서.

그를 약하게 하셔서 오직 주께서 그를 건지게 하시고 그가 스스로를 낮추어 주께서 그를 높이게 하소서.” 기도를 마치고는 나를 쳐다봤다. “주님께서는 자네가 더욱 신선한 물을 얻도록 우물을 깊게 파길 원하시네. 그래야 설교와 목사라는 역할을 통해 시원한 물 일천 잔을 성도들에게 제공할 수 있지 않겠어?”

목사라는 나의 존재가 더운 날의 차가운 물 한 병처럼 성도들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을까? 내 능력범위 안에서 계속 일하기만 한다면 가능하다. 〈리더십 저널〉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일하는 시간을 기록한 적이 있다.

주당 최대 55시간 일할 경우에 목회자들의 사역 만족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이상이면 불쾌지수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목사로 부르시면서 계획하셨던 일이 결코 아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의 말이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든다. “우리는 ‘목사가 바쁘다’라는 말을 ‘아내가 부정하다’ 또는 ‘은행 간부가 횡령했다’라는 말과 동일하게 여겨야 한다.”

‘목사들은 주 1회 근무한다’고 ‘농담’을 한 사업가의 말은 가뿐히 넘겨버리는 게 상책이다. 우리가 주당 근무시간을 늘려보려고

아무리 씨름해도 그 사업가의 근무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즐기면 그만이다. 그렇다. 내 일은 애초에 다른 일과는 다른 리듬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CT

[전문 보기 : 얄밉지만 진실이 들어있는 목사에 대한 세 가지 고정관념]

 


캐빈 A.밀러, 일리노이 휘튼의 부활의 교회Church of the Resurrection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Kevin A. Miller, “Irritating Stereotypes That make me a better Pastor” Leadership Journal 2014:봄 /
CTK 2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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