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때, 침묵하지 않는 선지자①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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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때, 침묵하지 않는 선지자① 본회퍼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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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때에 교회를 섬겼던 두 목사, 본회퍼와 틸리케에게 배우다

풍 치는 지중해. 파선 직전의 배에서 군인과 선원들을 향해 용기 있게 외치는 바울. 내가 오랫동안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극한 상황에서 뱃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본 끝에 구원의 희망을 버렸다.

 

 

바울 등장! “여러분”(말을 알기 쉽게 바꾸었다). “내가 출항을 말렸는데도 왜 내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이 배가 파선하리라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위기의 순간,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믿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메시지를 자신 있게 전하는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미래를 의심하고, 개인의 안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우리 시대에 생각해볼 알맞은 주제다.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늘 이런 문제를 마음에 담고 있으니까.

시련이 닥치면 사람들은 희망, 용기, 하나님의 목적, 의미를 주는 메시지를 찾는다. 그들은 귀를 기울인다. 로마가 무너져 내릴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외친 메시지. 신성로마제국이 붕괴할 때 루터가 외친 메시지. 산업혁명으로 불안할 때 웨슬리가 외친 메시지.

더 가까이에는 1930년대와 40년대, 위기에 휩쓸린 독일을 향해 깊은 통찰력으로 외친 두 사람이 있다. 독일의 경제와 정치, 국방의 격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 가운데 디트리히 본회퍼와 헬무트 틸리케가 있다.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의 처음과 끝을 북엔드처럼 나란히 받치고 있다. 본회퍼의 전성기는 1932년부터 1945년 사이였고, 틸리케는 전쟁 중반부터 절정기를 맞았다.

본회퍼의 사명은 독일인들에게 히틀러를 국가 지도자로 삼아 따를 경우 최후에 맞이하게 될 정치적·도덕적 결과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었다. 틸리케의 사명은 독일인들에게 영적이고 도덕적인 재건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임무를 훌륭하게 마쳤다.
 


본회퍼, 제자도의 대가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된 지 이틀 후 본회퍼는 라디오 설교를 통해 “국민의 바람에 굴복하는” 리더를 경계하라고 했다. “국민은 늘 리더를 우상처럼 높이므로 결국 리더는 ‘잘못된 지도자’가 됩니다.…이런 지도자는 자신과 정부를 우상으로 변질시키며, 따라서 하나님을 우습게 여깁니다.”

본회퍼의 설교는 중간에 끊어졌다. 아마도 히틀러를 지지하는 방송국 직원들의 소행이리라.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설교를 인쇄해서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그는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혔지만 이윽고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가 신학생들에게 전하는 설교와 가르침은 점점 더 단호해졌다. “성경을 얼토당토않게 해석하지 말라. 성경의 타당성은 자명하다.…하나님의 말씀은 증언하는 것이지 방어하는 게 아니다.…말씀을 믿으라. 말씀에는 더할 것이 전혀 없다.”

이 시기에 본회퍼의 역작, 「나를 따르라」(대한기독교서회 역간)가 나왔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자아를 버리는 삶을 추구하라고 촉구했다. 요즘 말로 바꾸자면 본회퍼는 “내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본회퍼가 말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져야 한다. 제자도로 향하는 우리는…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1939년 디트리히 본회퍼는 뉴욕을 찾았다. 그가 독일로 돌아가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교계의 친구들은 한사코 귀국을 만류했다. 하지만 본회퍼는 독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가 말했다. “동포들과 함께 시련을 나누지 않으면 종전 후 독일 기독교 재건에 동참할 권리를 잃게 된다.”

“독일 그리스도인들은 무서운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기독교 문명을 살리기 위해 조국을 망하게 할 것인가, 조국의 승리를 위해 우리의 문명을 파괴할 것인가. 나는 내가 뭘 선택해야 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선택을 마음 편하게 할 수는 없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그중에는 친척들도 있었다). 성공이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독일 전역에서 본회퍼와 여러 가담자가 체포됐고, 그는 수감생활을 하다가 1945년 종전 직전에 플로센부르그에서 처형됐다.

본회퍼는 감옥에서도 천생 목사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의 소망에 대해 묵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다음은 그가 이 구절을 가지고 했던 설교다. “간단히 말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사람의 관계란, 그게 부부라 할지라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마십시오. 서로 비난하지 마십시오. 비판도 정죄도 하지 마십시오. 서로 흠을 잡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날마다 진심으로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설교에는 큰 뜻이 있다. 본회퍼는 결코 인생이 위기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은 계속되며, 결혼처럼 새 출발을 꿈꾸는 희망의 말을 잃지 않을수록 인생은 더 밝아진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강인한 설교자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악에 맞서 싸우고, 용기를 잃지 말고, 거룩하게 살며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친교를 나누라고 했다.

1943년 본회퍼가 쓴 글이다. “누가 꿋꿋이 설 수 있습니까? 자신의 이성, 원칙, 양심, 자유, 미덕 따위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고 하나님에게만 충성하고 책임감 있게 믿음으로 행동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전 생애로 하나님의 물음과 부름에 응답하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본회퍼는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까지도 설교를 멈추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그는 수감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본회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본문은 이사야의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였다.

그는 설교를 마치고 교수대로 끌려갔다. 전기에 의하면 나치는 그를 처형한 후 “시신을 가방과 원고와 함께 불태웠다.” 원고라니! 본회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설교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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