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때, 침묵하지 않는 선지자② 틸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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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때, 침묵하지 않는 선지자② 틸리케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0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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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케, 폭격당한 교회에서 설교하다

회퍼가 독일인들에게 히틀러의 정치 철학의 결과에 대해 경고했다면,  헬무트 틸리케는 전쟁 동안 독일인들을 붙잡아주고 종전 후에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1936년 틸리케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가 됐다. 하지만 4년 후, 히틀러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을 마뜩찮게 여긴 나치에 의해 해임됐다. 그는 결국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세인트마크교회로 부임해 매주 장소를 옮겨 말씀을 전했다. 연합군의 폭격 탓에 온전한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틸리케의 글을 영어로 옮긴 존 도버스타인에 의하면, 그가 설교를 마치면 “자원봉사를 하는 속기사 수백 명이 설교문을 은밀히 베꼈다. 인쇄가 금지됐지만 설교를 베낀 글은 인편으로 독자 수천 명에게 전달됐다.”

한번은 틸리케가 전쟁 중에 간절히 쉬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시골 조용한 마을에서 몇 주를 보내면 활력을 회복할 듯했다. 하지만 휴가 계획은 어긋났고, 그는 곧장 도시로 돌아왔다. 그래, 시골 마을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뭔가가 빠져 있었다. 그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틸리케는 전쟁을 (아직!) 남의 일로만 여기는 마을 주민들의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로 하루속히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시골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을 때보다 그들과 함께 지낼 때 영적 활력과 생기를 훨씬 더 많이 얻었다. 그래서 틸리케는 폭탄과 파괴와 고통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진실과 용기와 공동체를 발견했다. 그것이 그의 설교의 모판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신학적 물음은, 하나님과 자아를 발견한 사람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스스로 자아를 찾는 사람은 실패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목숨을 버리면 깨달음을 통해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용기 있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 “구도자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때는 그가 가파른 낭떠러지에 서 있으므로 속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도망갈 틈을 주지 않는, 화강암처럼 단단하게 펼쳐져 있는 메시지 앞으로 그를 데리고 가야 한다.”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얕잡아 보는 사람은 어느새 교만해진다.…쓰라린 양심을 부둥켜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틈이 없다. 그는 온전히 홀로 하나님을 찾는다.”

그의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리는가. 아니면 깊은 영성과 생각으로 알찬 복음은커녕 자기계발식 설교가 판치는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뭔가를 일깨우는가. 시대를 양쪽에서 받치는 ‘북엔드’였던 두 사람이 독일인들에게 했던 것 같은 아름답고 영적인 목소리를 우리는 9/11 이후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종전 후 미국을 방문한 틸리케는 뉴욕에 있는 유엔 건물을 구경했다. 그는 구내에 있는 ‘예배당’을 보고 경악했다. 실내는 별 다른 장식 없이 조명으로 가득했다.

“조명은 스스로 누구를 비추는지 알지 못했다. 이 자리에 초대받은 리더들은 정작 자신의 생각을 들어야 할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이곳은 으스스하고 황량한 신전.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탓에 믿음을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폐허였다.…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유엔 건물에서 오직 이곳만이 공허하고 황량했다. 애꿎은 예산으로 거짓 신전을 운영하느니 이곳을 화장실이나 술집으로 바꾸는 게 더 정직하지 않겠는가?”

그는 선지자였다.
 


오늘날 그들은 뭐라고 하는가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두 ‘북엔드’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들은 위기의 때에 침묵하지 않았다. 청중을 달래는 법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설교를 듣고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들의 설교는 지엽적이지 않았다. 피상적인 애국심과 두려움을 이용해 선동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의 진리를 외치는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본회퍼는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역이라는 메시지를 입술로 외쳤을 뿐 아니라 삶으로도 실천했다. 위험을 피하기는커녕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사역을 위해 목숨까지 잃었다.
 

틸리케 역시 가장 위대한 설교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당하는, 바로 그 설교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에서 달아나라거나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악담을 퍼부으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그보다는 고통을 직면하고 그로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기어이 찾아내라고 부르셨다.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가 무서운 공격을 당했다. 우리는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지금 누가 하나님을 대변하는가? 교회와 세상은 그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9월 14일, 워싱턴국립대성당에서 빌리 그레이엄이 했던 아름다운 설교는 앞으로 오랫동안 예언적 설교의 교과서로 남을 것이다. 짧은 시간, 기독교 원로의 거칠고 노쇠한 목소리는 국민들에게 경각심, 용기, 은혜, 진리를 일깨웠다.

우리를 더 고귀한 생으로 부르는 부드러운 듯 단단하고, 생각이 깊고, 불변하며, 정직한 목소리. 우리는 그런 외침을 들어야 한다.

성경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복수를 다짐하는 말 따위는 필요 없다. 악하고 호전적인 말로 여러 집단을 비난할 때가 아니다(구약성경의 본문을 가려서 읽으면 유대/기독교 전통은 매우 호전적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돈이나 명예를 얻을 때도 아니다.

위기의 때에는 다음과 같은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소망 사람들은 내일이 있을까 의심한다.

 용기 사람들은 쉽게 두려움에 굴복한다.

 고귀한 신앙생활 하루하루, 특히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회개 우리는 교만하고 나라는 배금주의에 빠졌다.

 성경적 정의 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실질적인 기도 우리는 세계의 지도자들, 세계 평화, 우리보다 훨씬 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끝으로, 설교자는 어떻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폭넓게 세상을 읽고 설교할 수 있을까. 뉴욕시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무역센터 참사에서 숨진 사상자는 4000명에 달한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사건이다. 하지만 설교자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 있다. 이 세상에는 하루에도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주로 어린이)들이 세계무역센터 사상자의 일곱 배에 달한다. 세계 곳곳에는 테러리즘이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의 고통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했다.

하지만 위기의 때에 외쳐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는 기본적으로 신학적인 것이다. 설교자는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과 도시(또는 나라. 내 나라만이 아니다)를 보고 눈물을 흘리실 뿐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창조하기를 갈망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전해야 한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으로 가득하고, 모든 사람이 그분을 만유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무릎을 꿇을 때 인생과 관계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우리에게 이른다.

굉장한 날이 될 것이다! 위기 가운데 이런 것들을 설교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CT

고든 맥도날드 <리더십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수정:2015.04.12]
[게시: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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