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온 나의 진상③ '마음 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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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온 나의 진상③ '마음 검진'
  • 맥스 루케이도 | Max Lucado
  • 승인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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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숨겨진 칼날들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라

숨겨온 나의 진상
나는 맥주가 좋다
바람직한 고백
③ 마음 검진



윗은 백기를 들었다. 항복. 하늘에 대고 반박하는 것도 이제 그만. 그는 하나님께 자백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늦은 밤. 잠자리에 들 시간. 베개가 손짓한다. 하지만 당신의 죄책감도 손짓을 한다. 오늘 아침 어느 교인과의 만남은 끔찍했다. 말들이 오가고, 비난하고, 선을 긋는다. 험담. 조잡하고 저속한 행동. 당신은 (대부분의) 비난을 떠안는다.

당신의 옛 사람이라면 이 논쟁을 숨겼을 것이다. 이미 빈 곳을 찾기 힘든, 풀리지 않는 갈등 보관소에 쑤셔 넣는다. 썩은 나무에 접착제를 덕지덕지 바른다. 싸움은 상처가 곪아 쓴 뿌리가 되고, 다른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옛 사람이 아니다. 삭막한 목초지에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은혜가 임하여 그림자를 거둬가고 서리를 녹인다. 따스함. 하나님은 당신을 노려보시지 않는다. 예전에는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화가 잔뜩 난 하나님이 팔짱을 끼고 당신을 꾸짖으신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리스도가 당신을 사셔서 발을 씻기시고 당신은 그분 안에 산다. 하나님께 얼마든지 솔직할 수 있다.

 

당신은 베개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 다음, 예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간다.

“오늘 말다툼에 대해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반응해서 죄송해요. 제가 좀 심했어요. 더 참아야했는데. 주님은 제게 그토록 큰 은혜를 주셨는데, 제가 가진 것은 너무 적네요. 용서해주세요.”

이 정도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특별한 장소는 필요 없다. 성가나 양초도 필요 없다. 기도면 된다. 기도하면 사과로 이어질 테고, 사과는 우정을 유지하고 마음을 보호해줄 것이다. 당신은 교회 사무실 벽에 이런 글을 걸어 놓을지도 모른다. “은혜가 여기 임했습니다.”

아니면, 당신은 좀 더 깊이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한 행동의 배후에는 케케묵은 해결되지 못한 행동이 자리 잡고 있다. 다윗 왕처럼, 당신은 끊임없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떠나야 할 때 머물렀고, 보지 말아야 할 때 보았고, 자제해야 할 때 탐닉했고, 도와주어야 할 때 상처를 주었고, 고백해야 할 때 부인했다.

이 숨겨진 칼날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믿을 만한 의사를 찾아가듯, 하나님께 나아가라. 고통을 설명 드리고 범죄 행위를 함께 살펴라. 그분의 진상 조사와 치유하시는 손길을 받아들이라. 중요한 것이 있다. 고백하는 당신의 능력보다 그 고백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 우리, 특히 교회 지도자들 안에 살아 있는 막무가내 완벽주의자를 조심하라. 그는 고질병인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과연 진실하게 고백했는가? 충분히 고백했는가? 빠뜨린 죄는 없는가?”

빠뜨린 죄는 당연히 있다. 자기 죄를 다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기 죄를 충분히 반성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죄 사함이 고백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다. 자기 죄를 정확하고 적절하게 고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고백의 힘은 고백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 고백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성도들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약5:16) 야고보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서로 고백하라고 권면한다.

 


흠잡을 데 없는 경력

나도 그렇게 했다. 내 위선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먼저, 맥주 캔을 휴지통에 내던졌다. 그다음, 차에 한참을 앉아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교회 장로들과 약속을 잡았다. 내 행동을 미화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고백했다. 그다음에는 장로들이 차례로 나를 용서한다고 말해주었다. 백발의 한 장로는 탁자 너머로 손을 내밀어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목사님이 하신 행동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오늘 밤 목사님이 하신 행동은 옳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목사님의 죄를 덮고도 남을 만큼 크십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이게 끝이었다. 논란도, 소동도 없었다. 치유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장로들에게 말한 다음, 전체 교회에도 말했다. 주중 모임에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했다. 내 이중성을 사과하고 교인들에게 중보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같은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고백이 잇달았다. 나의 솔직한 고백으로 교회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단단해졌다. 고대 에베소 교회가 떠올랐다. “신도가 된 많은 사람이 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자백하고 공개하였다.”(행19:18) 그 고백의 결과는?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행19:20)

 


솔직함에 끌리는 사람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삶으로 부름 받았는지 솔직히 말씀해주신다. 우리가 그분께 속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만사형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고백하면 좋은 일만 생긴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투명하고 정직한 교회 공동체를 창조하는 데 따르는 긍정적인 측면은 무한하다.

공동의 믿음은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해준다. 공동의 사랑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나는 공동의 고백이 심오한 방식으로 그들을 하나로 인치심을 목격했다. 우리는 정직한 고백이 우리 자신의 영적 건강뿐 아니라, 우리가 이끄는 회중의 건강도 증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직한 고백은 전체 교회의 디엔에이DNA를 바꿀 수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말했다. “형제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형제와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존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 이것이야말로 목회자로서 우리의 소명이 아니겠는가?

당신의 성도들에게 고백의 중요성을 철저히 가르치라. 목회자는 완벽한 사람들과만 어울린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도록 주의하라(당신은 거기 어울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교인과 지도자들이 똑같이 겸손히 자기 죄를 고백하는 교회의 본을 보여라.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누구나 일원이 될 수 있는 교회 말이다. 그런 교회에서 치유가 일어난다. 그런 교회에 은혜가 임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백을 듣고 은혜를 선포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20:23)

고백하는 자들은 죄를 부인하는 자들이 알 수 없는 참 자유를 얻는다. 고백하는 목회자는 자유가 가득한 교회를 이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요일1:9)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이 말씀이 얼마나 달콤하고도 확실한지 모른다. “해주실지도 모른다”, “해주실 수 있다”, “해주신다고 하더라”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 그러니 고백하라. 그러면 순수한 은혜의 강물이 당신의 실수를 씻어낼 것이다.

자, 이제는 맥주 한잔하며 기뻐하자. (물론, 무알콜 맥주로!) CT

맥스 루케이도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오크힐스교회에서 목사로 섬기고 있다.

숨겨온 나의 진상
나는 맥주가 좋다
바람직한 고백
③ 마음 검진

[게시:201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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