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
상태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
  • 크리스 나이 | Chris Nye
  • 승인 2020.0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회퍼, 소외된 이들의 교회에서 '복음의 기쁨'을 발견하다

 

 

20세기의 첫 10년 동안의 정규교육을 드디어 마친 칼 바르트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느 풋내기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교수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서유럽 자유주의 신학계의 상위층에 속했던 그도 가르치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스위스 출신이었지만 독일 프로테스탄트 자유주의를 공부했고 학계의 차세대 유망주였다. 졸업할 때까지는 말이다.

수련 목회자 생활을 마친 바르트는 자신이 학문적으로 이룬 것들을 들고서 스위스의 시골마을 자펜빌의 개혁파 교회에 목사로 부임했다. 그는 이 작고 순박한 회중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정규 목회 임무를 시작했다.

주일마다 그는 거창한 묘사와 복잡한 생각들을 심각하게 신학적으로 이야기했지만, 회중은 따분해 할 뿐이었다.

독일의 학계에서 어려움 없이 이해되던 신학이 스위스의 시골 마을에서는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결시켜주지 못했다. 그의 문제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바르트는 로마서를 설교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학교에 있는 동안 얼마나 어긋난 방향으로 신학을 배웠는지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을 통해 바르트는 복음의 단순성과 능력이 자신의 회중을 사로잡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독일에 있는 신학자들과 의견을 달리하면서 그는 다소 유명해졌다. 고차원적인 철학과 이론화를 벗어버린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말씀하게 했고, 그러자 그와 그의 회중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5-20년 후에 바르트는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러면서 그는 또한 젊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학문적 모범이 되었다. 본회퍼는 그때 막 장학금을 받아 뉴욕 유니온 신학교로 유학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뉴욕에서, 본회퍼는 미국 목회자들이 바르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된다. 바르트가 그러했듯, 그들 역시 회중에게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본회퍼는 예수의 복음과는 동떨어진 신학적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는 뉴욕의 교회들에 크게 실망했다. 본회퍼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뉴욕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가르친다.”

 

 

찰스 마쉬Charles Marsh가 본회퍼 전기, 「기이한 영광: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Strange Glory: A Life of Dietrich Bonhoeffer에서 조명했듯이, 본회퍼는 할렘 빈민가의 아비시니안 침례교회에 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복음이 설교되는 것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본회퍼의 눈에, 뉴욕의 모든 크고 유명한 교회들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빈민가의 “흑인 교회들”과 미국 남부의 가난한 시골 지방에서만 복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흑인민권운동이 전개되는 시기에 흑인 교회의 설교에 감동받았으며, 그들의 영혼 안에 있는 “황홀한 기쁨”에 대해 종종 언급했다. 본회퍼는 예수의 복음의 기쁨을, 그가 “미국의 소외된 자들의 교회”라고 부른 교회서만 발견했다. [전문 보기 :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 다시 듣기]
 


크리스 나이 오리건 주에서 아내 알리와 포틀랜드에 살고 있는 목사이며 작가이다. 그와 연락은 트위트 @chrisnye로 할 수 있다. 
Leadership Journal 2014:7 Chris Nye, “Rehearing the Good News for the poo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