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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성경에서도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도 숨은 주역은 여성이다
이재근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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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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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 Yong Joon / 어머니 / board 위 황토와 유채 / 2010년

19세기 후기 우리 사회의 배경과 상황을 다룬 글들 가운데 특히 내 마음을 끄는 주제가 있다. 학문적이거나 이성적으로 나를 자극한다기보다는 내 가슴을 울리는 내용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를 살아가던 이 땅의 여성들이 겪었던 삶의 고단함이다.

우리는 그 여성들의 삶에서 남녀 ‘구별’, 더 정확한 말로는 ‘차별’이 철저하게 구조화된 사회를 목격한다. 적나라한 증언이나 연구, 관련 문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일치된 이야기는, 그 시기에 (그리고 물론 그 이전 어느 시기에도) 여자로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고통과 고생, 고난, 심지어 죽음 그 자체요 저주였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여자로 태어난 ‘저주’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게 종속되었다. 조혼으로 10대 중반에 시집을 가면 그때부터는 남편에게 종속되었다. 극심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시집은커녕 종이나 일꾼, 심지어 기녀로 팔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이 먼저 죽는 경우에는 장성한 아들에게 법적ㆍ사회적으로 종속되었다. 여자는 시집 자체에 종속되었고,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이전의 모든 인간적 끈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완전히 단절되었다.

임신과 출산의 현실을 보자. 가족계획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고 임신을 피할 지식도 의료상식도 없던 시기의 여성을 한 번 상상해 보자. 15세에 시집을 간다고 하면, 주로 2년 터울로 임신한다. 30대 중반까지 임신을 계속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20년 동안 최소한 10번은 임신을 하게 된다. 40대 중반까지도 임신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러면 임신횟수가 15번이 된다. 매년 임신할 수도 있으니, 그러면 20명까지도 가능하다. 우리가 20세기 이전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읽을 때 아이들이 10명이 넘는 경우는 아주 당연하고, 15명이 넘는 집안도 드물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10살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는 경우가 50~60퍼센트가 넘었으니까, 대개 한 집에서 최소한 아이 서넛은 잃은 경험을 가지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15살에 시집와서 출산 직후 얼마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20년, 30년의 기간 동안 일 년 내내 임신상태라는 것이다.

출산은 집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변변한 의료시설이나 도움 없이 낳았다. 이렇다 할 산후조리 없이 바로 가사에 다시 투입되었다. 자연히 출산 중 사망하는 여성의 비율이 극히 높았다. 모진 산고를 이겨냈더라도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태어난 아이가 ‘아들’이 아닌 경우에는 심적 고통과 실제적 압박이 따르기도 했다.

이 일상적인 죽음 앞에서 거미줄처럼 가늘기만 한 생명의 가능성을 절망적으로 붙들고 있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 당시 사회는 철저히 무감각했다. 평생을 임신상태에 있지만, 무거운 가사가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워져 있었다.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 오븐, 전자레인지, 밥솥…. 오늘날 우리 인류가 개발한 거의 모든 가전제품은 주로 여성의 일상과 관련된 제품이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이 없었다. 이런 제품들이 있는 오늘날에도 가사노동의 힘겨움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고 있다. 수없이 반복되는 일이기에 힘겨움과 지겨움은 끝이 없다.

당시 여성들이 가사노동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도 아니다. 육아와 가사를 한다고 다른 일을 면제해 주지 않았다.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등에 업은 채 여자들은 온갖 농사에 시달렸다. 밭에서, 심지어 변소에서도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이 땅에는 적지 않은 ‘분녀’가 태어났다.

여성을 노동에 이용하는, “써 먹는” 면에서는 여성 차별이 없었다. 여자의 육체를 부려먹는 면에서는 남자와 차이가 없었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육체를 전적으로 소모하고, 남성 이상으로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오히려 더욱 처절하게 몸을 바쳐 일하고, 그렇게 모진 고통을 겪다가 죽어도, 여성은 절대 남성과 같은 지위와 위치에 오를 수 없었다. 그것이 원칙이요 철칙이었다.

여인은 어떤 사회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아들과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심각한 위협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 행위였다. 교육이 차단되었으니 여성 대부분이 문맹이었다.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다. 준비는 여성이 대부분 하지만, 제사 자리에도 설 수 없었다. 많은 여성이 사실상 ‘이름 없이’ 살았다. 출신 지방을 따서 청주댁, 경주댁 그렇게 불렸고, 누구의 마누라, 누구의 엄마라 불렸다.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는 존재였다.

이런 생활이 서민층에만 해당된 것도 아니었다. 양반 댁 여인들은 가사노동에서만 좀 나은 대우를 받았을 뿐(그것도 부유한 경우에만 그랬다), 오히려 사회적 고립이라는 면에서는 서민층 여인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밖에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어쩌다 밖에 나갈 때도 혼자 나갈 수 없었고 얼굴도 가려야 했고 남성을 쳐다볼 수도 말을 섞을 수도 없었다. 요즘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현대적으로 각색된 사극에서는 여성들이 연애도 하고 무사도 되고 권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장면일 뿐이다. 한마디로, 우리네 과거 여성의 삶은 감옥에 갇혀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예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숨은 주역

1884년에 한국에 처음으로 개신교가 들어왔다. 초기에는 공식적인 전도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교육과 의료가 주요 선교 수단이었다. 그래서 근대적 의미의 학교와 의원을 열었지만, 여자들은 들어올 수 없었다. 여자가 교육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더구나 여자가 남자 선생이나 남자 의사와 상종하는 것이 허용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전도가 가능해졌다. 그때 선교사들이 취한 정책은 ‘여성을 위한 일은 여성이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여성을 직접 대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의 개종자들은 다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들이 아내와 딸,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들이 바로 한국 개신교회 최초의 여성 신자들이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 교회 역사에서 남자 신도가 여자 신도보다 많았던 때는 이 선교 초기 1, 2년뿐이었다. 한국 교회는 지구상에 존재한 어느 나라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수용력이 높은 나라였다. 남녀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열성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한 이유였다. 나라가 너무 가난하고 비참하고 나약했다는 것과 당대의 지배층과 유교 권력층의 부패가 너무 심했다는 것, 부패한 전통 종교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도 열렬한 기독교 수용의 원인이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 고통을 가하고 이 땅을 집어삼키려 했던 외세가 기독교와 동일시되었던 서구 제국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이었다는 점도 기독교에 대한 수용적 태도에 기여했다. 또한 서구의 부와 힘이 기독교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기독교를 믿으면 강해지고 부유해진다는 순진한 생각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국을 특별히 불쌍히 보시고 소망을 주시기 위해 선물을 주신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한국인 가운데 그 선물을 가장 기쁘게, 가장 감사하게, 가장 온당하게 받아들인 집단이 바로 여성이었다. 받은 선물에 가장 완벽하게 보답한 이들도 바로 여성이었다. 그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언제나 한국 교회를 채운 이들의 70퍼센트는 여성이다.

사실 교회 회원의 70퍼센트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교회 회원의 60-70퍼센트도 여성이다. 오늘날만 그럴까?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교회에서 남성이 여성 인구를 넘어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경 시대에는 어땠을까? 남성이 여성을 앞질렀을까? 분명하지 않다. 성경에 나오는 인명의 대부분은 남자의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이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 지도자의 이름도 나온다. 그러나 성경 시대에도 교회의 자리를 지킨 이들의 다수는 분명히 여자였다.

예수님의 제자 12명의 이름을 우리는 안다.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들은 유명한 이름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한 후, 교회의 힘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일꾼을 양육하고, 성경을 쓰고, 마지막으로 순교했다.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서 그들의 제자들을 통해 세상 곳곳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1900년대 초 이 땅의 여인들 | 출처:「 도마리아 조선에 길을 묻다」, 62쪽

여자 제자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지 12명만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저 12명이 특별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 공생에 기간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생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각 성을 돌아다니시며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전할 때 동행한 사람이 열둘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한다. 그리고 정말로 특별한 것은 그들이 남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누가복음 8:1-3에 그들이 등장한다.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이다. 여자들이다. 막달라 지방 출신의 마리아다. 예수님의 도움으로 악령에게서 해방을 받은 여인이다. 그리고 헤롯 왕가에서 일하던 구사라는 사람의 아내인 요안나다. 또 다른 여인 수산나다. 이 외에도 여러 다른 여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역할은 우선 예수님 및 남자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 소유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다빈치코드〉같은 이야기에서 흥밋거리로 지어내는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연인이라서 예수와 함께 있었을까?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12명의 남자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와 같다.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해야 할 일에 대해, 세워야 할 교회에 대해, 전해야 할 복음에 대해, 무엇보다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배웠다. 여인들도 똑같이 예수님으로부터 이것들을 배웠다. 산상수훈을 전하실 때 예수님은 여성이 당신의 말씀 듣는 것을 허용하셨다. 여성과 아이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당시의 관습과 달리, 예수님은 모든 가르침의 자리에 여성과 아이를 남성과 똑같이 동석시키셨다. 모든 병 고침의 자리와 귀신을 내 쫓는 모든 자리에 남자만을 초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눈앞에 있는 모든 자, 성별과 나이와 계급과 신분, 인종과 국적과 소유의 상태를 막론하고, 당신 앞에 와서 은혜를 구하는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고, 고치고, 해방하고, 가르치고, 끌어안고, 보내셨다.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여인인가? 그녀는 갈릴리 서쪽 시골 중의 시골 ‘막달라’ 출신이다. 그런데 귀신이 들렸다. 그것도 일곱 귀신에 시달렸다. 성경에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께 치유 받은 사람 이야기가 여럿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치유 받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성경에 없지만, 아마도 다른 축사 기사에서와 동일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귀신이 들릴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그 사람이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경련을 일으키고, 고함을 지르고, 환상을 보고, 몸을 똑바로 가누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고, 거리에서 나뒹굴고, 정확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 급기야는 자해하거나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정신이 뒤집힌 이런 현상, 영혼이 고갈되는 이런 현상은, 곧 자아, 정체, 신분, 인격을 놓치고 병과 악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증세를 보이는 순간 더 이상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일곱 귀신이 들렸다는 표현으로 보아, 막달라 마리아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부모와 형제로부터도 버림받았을 것이다. 어느 누가 그녀를 사람으로 대해 주었겠는가?

예수님이 그녀에게 준 것은 자유와 해방이었다. 악한 영으로부터의 해방, 공포와 모멸과 학대와 단절과 고립과 죽음으로부터 해방이었다. 그리고 자유를 얻었다. 다시금 고귀해졌다. 자신의 자아가, 자신의 영혼이, 자신의 정신과 인격이 다시 자신의 것이 되었다. 자신 하나도 통제할 수 없었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에,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몸을 던져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1932년 두애란Lavalette Dufuy 선교사
출처:「도마리아 조선에 길을 묻다」, 117쪽

요안나

간략하게나마 정보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여인은 요안나이다. 누가복음 8:3에 따르면, 요안나는 구사라는 사람의 아내였다. 구사는 헤롯의 청지기로 나오는데, 이 ‘헤롯’은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에 태어난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 명령했던 그 헤롯왕의 둘째 아들이다. 헤롯왕이 죽으면서 세 아들에게 팔레스타인을 분할해서 나눠주었다. 둘째 아들 안티파스에게 나눠 준 땅이 갈릴리였다. 예수님과 대부분의 제자들과 막달라 마리아의 출신 지역을 통치하던 왕이었다는 말이다. 이 헤롯을 위해 일하던 사람이 바로 요안나의 남편 구사였다. 청지기라고는 하지만, 정확히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신분이 어느 정도였는지, 얼마나 부유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계기가 그녀가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병 고침을 받은 여자들의 대표가 바로 요안나였다. 분명히 요안나는 남편의 재산과 신분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심각한 문제를 가졌다. 바로 그녀의 병이었다. 그 해결 못할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병마에 시달림 받아 절망하고 살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때에 예수께서 오셔서 육체의 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살 소망, 앞으로 일어설 소망, 남은 생명을 의미 있는 일에 쓰겠다고 결심할 소망을 주셨다. 그래서 요안나는 예수와 함께하기를 선택했고, 가진 재산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는 일을 책임졌다. 무엇보다도 먹고 자는 데 필요한 재정, 사역을 위해 필요한 물질을 제공하며 섬겼다는 것이다.

수산나라는 이름만 등장하는 여인과, “다른 여러 여자”로 표현된 여인들도 하는 역할은 거의 같았다. 물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하고 섬기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병 고침 받거나 귀신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했거나, 아니면 설사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경험은 하지 못했을지라도 복음 메시지가 주는 영적 자유와 소망과 해방의 능력을 경험한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부활의 첫 목격자

이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자주 어머니의 힘과 능력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읽는다. ‘어머니는 위대하다’라는 식의 표현들 말이다. 분명히 육체적 능력에서 여성이 남성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신적ㆍ영적 능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실로 많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을 보자. 그날 마지막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이 로마 군병들에게 잡혀 가실 때 남자 제자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나? 마태복음이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56:26) 베드로는 살기 위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한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사흘째 되는 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그날, 그 예언을 이해한 제자, 믿은 제자는 없었다. 열 두 명의 잘난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심문 받던 로마 공회당, 예수님이 못 박히던 십자가 아래, 예수님의 시신이 든 무덤 근처에 가 볼 생각도 못했다. 그저 무섭고 두렵고 실망스럽고 슬프고 암울했을 뿐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못했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여인들은 어땠는가? 성경에 기록된 정황으로 보아, 이 여인들도 다른 남자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죽음과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또한 예수께서 죽은 육체 그대로 부활하시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자신들의 지적·신앙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할 일을 했다. 잡혀 고문당하고 처형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체를 거두고 씻기고 올바로 매장하기 위해 무덤으로 찾아 갔다. 지식과 믿음의 수준과 상태가 남자 제자들보다 낫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에서는 남자 제자들보다 백배는 더 나았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하지 않았는가?

이 여자 제자들이 무덤에서 체험한 것이 무엇이었나? 그들은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기독교 교리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뿌리와 근본이 되는 신앙이 무엇인가?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죄와 옛 자아와 죽음의 권세도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으로 어두운 심연의 한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와 함께 다시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의 생명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교회가 죽고 사는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하고 증언한 이들은 특별하게 임명 받고 특별하게 양육 받고, 지금도 성인으로 추앙 받는 그 열두 명의 남자 제자가 아니었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그 사건을 전한 천사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것을 입으로 선언하고 선포한 사람들은 바로 여인들이었다. 천대받고 멸시 받고 사람으로 취급도 받지 못하던 바로 그 여인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가장 위대한 사건, 인류 역사를 뒤집는 사건, 인류의 운명이 좌우된 사건을 보고, 듣고, 말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용기, 그들의 애정, 그들의 헌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까?

전도부인

오늘날 한국 교회를 만든 결정적인 주역도 역시 여인들이다. 남자가 주연이고 여자가 조연이라고?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목사도 남자고, 장로도 남자고, 안수집사도 남자고, 청년지도자도 남자고, 학생운동가도 남자였기 때문이다. 유교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않을 수 있는 규범적 자격을 갖춘 이들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분명히 중요한 지도력을 발휘했고, 생명과 목숨을 걸고 한국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진리를 수호해 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역사, 표면 아래에 숨겨진 역사를 우리는 또한 알아야 한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한국 교회를 이끈 중요한 주역은 분명 여인들이었다. 처음 복음을 듣고 그 복음 안에 내재된 해방의 메시지를 부여잡은 여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집 안에만 갇혀 평생을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섬기는 종으로만 살다가, 육신의 병과 질고에 시달리다가, 다정한 애정과 위로의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평생을 산 우리의 어머니들이 들은 것이 무엇인가?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랑해서 만들었고 만든 다음에 보기에 심히 좋았다. 곧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주신 예수께서 남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인 자신들을 위해서도 죽고 부활하셨다는 메시지다. 여자도 남자처럼 주님을 위해 섬길 수 있다는 메시지다. 모든 인류를 사랑하셔서, 그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그 죽음 때문에, 그를 믿는 자에게 임하는 구원은 차별이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롬3:22)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은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주인이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갈라디아서의 메시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와 해방과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발견한 여인들의 반응은 세계 어디서나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똑같았다. 19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인들이 느끼고 행동한 그대로, 1900년 후 극동의 한 작고 가난한 나라의 여인들도 똑같이 느끼고 행동했다. 그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를 받은 여인들, 특히 과부와 소박맞은 여인들은 자발적으로 복음을 들고, 남자가 가지 않는 오지,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깡촌”까지 쪽복음을 들고 들어갔다.

복음이 가는 곳마다 여인들이 회심하고, 자녀들도 믿기로 작정한 어머니를 따르고, 급기야 오랜 구타와 압력을 자행하던 남편들도 예수를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름 없이 오지를 떠돌던 여인들을 당시 우리는 ‘전도부인’이라 불렀고, 선교사들은 “바이블 우먼”Bible Woman이라 불렀다.

한 선교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보배라는 이름의 한 전도부인은 1년간 6730명의 여성을 방문했고, 그들에게 개인적인 구원에 대해서 말했으며 성서를 4491권이나 팔았다. 그 외에도 기독교적 가르침을 포함한 1500개의 달력과 소책자를 팔았다. 매일 아침 그녀는 그날에 팔 책들을 가져다가 천으로 싸서 허리주위에 차고는 그녀의 성서와 찬송가를 가지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기도 하고 간단한 성경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무지한 자들에게는 읽는 법을 가르치며 듣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1년에 6730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여인들이 바로 우리 믿음의 선조인 전도부인이었다. 하루 평균 20명에게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 내내 복음을 전해야 나올 수 있는 숫자가 6700명이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만 성경에 나오는 여성들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고 눈물과 머리칼로 씻긴 여인을 알고, 우물물을 예수께 건넨 사마리아 여인을 알며, 혈루병을 고침 받은 여인을 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과 순전함을 알고,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섬김과 말씀에 대한 애정을 안다. 초대교회를 섬긴 여집사 도르가도 안다. 예수님의 족보에 4명의 여인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알고, 구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위대한 여인들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이름 없는 여인들의 헌신과 믿음의 수고가 오늘날 우리를 있게 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할머니, 우리의 어머니의 기도가 오늘 우리를 있게 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해어진 그 책을 보면,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그 성경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가? (아버님의 무릎이 아니다!!)

성경은 ‘여인천하’다. 세계 교회사도 한국 교회사도 ‘여인천하’다. CTK
 

이재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과 교회사를 가르치며, 광교산울교회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20세기 세계 복음주의 역사를 주제별로 다룬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를 곧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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