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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들이 외치는 ‘신은 죽지 않았다’무신론자도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실존을 말하다
김희돈  |  don@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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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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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대자보를 붙인다. 많은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의 이야기를 이 한 장의 포스터가 잘 담아내고 있다. 대자보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쓰는 것. 주인공은 자신의 신념을 공적으로 알리고자 몸부림을 친다. 마침내, 몸과 마음으로 쓴 대자보를 강의실에 붙인다. 무신론자 교수 앞에서, 그리고 냉소적인 또래의 군상들 앞에서.

간만에 만난 기독교 영화다. 노아 엑소더스와는 달리, 직접적인 현실 속 기독교를 다뤘다. 하버드대학교를 나온 의사가 대학시절, 무신론자 교수로 인해 겪었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 과정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는 독실한 그리스도인 대학생과 철저한 무신론자 철학 교수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조쉬는 교양과목으로 레디슨 교수의 철학 입문을 신청한다. 수업 첫 날, 교수는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을 열거한 후, 그들이 모두 무신론자였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신의 존재를 논하는 것은 철학에서 무의미한 일이며 신은 죽었다고 단정한다. 이어 학생들에게 신은 죽었다라는 한 줄의 문장을 써서 제출하라고 지시한다. 아니, 강요한다. 조쉬는 거부한다.

교수님,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거든요.”

레디슨 교수는 그 대가로 조쉬에게 자신과 학생들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 있음을 직접 논증하라고 지시한다. 기회는 20분씩 단 세 번.

조쉬의 고뇌가 시작된다. 그저 한 문장만 쓰고 서명하면 끝날 일이었다. 무난히 학점 받고 계획했던 법학대학원 진학이 가능했다. 논증은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진학을 준비해 온 여자 친구는 이별을 통고한다. 아무도, 그 누구도 그 도전의 의미를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도전해 보라는 목사의 권면을 듣는다. 그리고 논증 준비에 나선다. 예수님을 실망시킬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과 무신론자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이 영화의 중심 줄기다. 다양한 사람들의 크고 작은 갈등들도 함께 그려진다. 돈을 쫓는 사람, 암 선고자, 하나님을 의지했으나 가족을 잃은 사람, 불신자 연인에게 지친 여인, 치매에 걸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후의 갈등들도 스크린에서 열거 된다. 불신자들은 불신자대로, 그리스도인은 그들대로, 하나님을 고뇌하고 인생살이에 아파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4월 16일부터 전국 120여개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간만에 나온 기독교 영화라 그리스도인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하다. 구성의 치밀함이나 완성도가 탁월한 편은 아니지만, 기독교 영화답게 하나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중국인과 핍박 속에 신앙을 지키는 아랍계 여인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화를 먼저 본 입장에서 관람의 팁을 제공한다면, 나 자신을 영화 속 인물에게 대입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을 철학교수에 맞서는 조쉬에 투영시킨다면, ‘신은 죽었다고 인정하는 문제와 논증에 나서는 것, 그리고 그 논증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뇌가 보다 실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했으면 하는 일이 있다. 영화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마태복음 10:32-33 말씀의 의미를 미리 묵상해 보는 일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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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몸으로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사람의 말은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몸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신독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경건의 연습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아무리 말과 글을 해도 스스로 속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변호하시는데 우리의 생의 단면 하나하나를 마치 영화를 찍을 때 액션씬을 찍듯이 하나하나 다 기록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조들이 말한 신
(2015-07-04 2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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