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은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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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은혜를 만나다
  • 케이틀린 비티
  • 승인 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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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신을 만나다」의 로렌 위너가 이혼과 고독을 견디며 깨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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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 말부터: 서른여섯 살 이전에 회고록을 두 권이나 쓴 사람에 대해서는 속단하지 말자. 오늘날과 같은 자기도취의 시대에 이런 장르의 이야기는 넘쳐 난다. 인정한다. 같이 나누기에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는 지혜와 경륜이 한 서른 가지는 부족할 것이다. 이것도 인정. 하지만 영적 자서전―신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임하시는지에 관한 서사적 고백―이라면 다르다. 이것은 기독교 문학의 핵심이다.

나는 영적 자서전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모두 13권으로 되어 있다―을 “자기도취적 명상”이라고 깎아내리더라도 말이다.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신앙을 진정으로 점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거룩한 의무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로렌 위너는 능숙하게, 그리고 멋진 필력으로 자신을 탐사한다. 「스틸: 위기의 신앙, 영적 여정에 관한 단상」(코헨)은 젊은 시절에 그녀가 안식일 기도와 미트포드 이야기 시리즈, 어느 날 납치 당한 꿈을 꾸고 “다니엘 데이-루이스처럼 생긴” 예수가 구해준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났지만, 열정적으로 끌어안았던 바로 그 예수로부터 멀어져가게 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소녀, 신을 만나다」(코헨)는 위너가 예수, 기독교와 데이트를 하는 이야기이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그 목수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이다. 이 책 때문에 그녀―지금은 듀크신학원 영성신학 교수이자 성공회 성직자이다―는 보수성향인 강한 ‘포커스 온 더 패밀리’ 채널과 <뉴욕 타임스>에 동시에 서평을 쓸 수 있는 진보적인 젊은 복음주의자가 되었다. (그녀 덕분에 캣츠아이 선글라스 판매도 두 배나 늘었다.)

「소녀, 신을 만나다」가 위너와 주님 사이의 “우리가 만난 이야기”라면, 「스틸」은 자기 옆에 있는 남자, 10년 동안이나 결혼생활을 했지만 더 이상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깨닫게 된 이야기이다. 「스틸」은 단지 신앙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서 밀려온 실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기독교 작가들이 이미 탐구한 현실이다. 이 책은 오히려 그런 허니문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속삭이는, 그런 실존적 위기를 탐구한다.

“유괴당한 꿈, 기도서, 세례는 내 인생에 새로운 길이 되어 주었다. 영광의 길이었고 영원히 삶을 인도해주리라 확신했다.” 위너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불과 몇 년 후 그 길이 나를 막다른 장벽으로 이끌고, 그 벽 앞에서 끝없는 질문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한다.

회심의 열정은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유괴당한 꿈을 꾸고 세례를 받을 때의 감격은 서서히 식어 갔다. 세월의 흐름 속에 두터웠던 하나님과의 친밀감에도 어느덧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고, 복음의 부르심에 따라 살겠다던 다짐도 약해져만 갔다.(서문 9쪽) …한때는 영적 여정의 종착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겨우 중간지점에 도달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서문 14쪽)

「스틸」은 또한 영광의 길의 종착지로 향해 가는 이야기이다. 종착지로 가는 걸음은 중간지점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다면, 이제 겨우 긴 여정의 중간지점을 거쳐 새로운 절반을 향한 출발선에 서 있을 뿐이다.”

 

이혼과 고독

 

고독이라면, 소원해진 부부의 침실이 가장 적당한 이미지일 것이다. 자신의 영적 외로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위너는 두 사건을 이야기 한다. 2004년 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과 2006년 「순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Real Sex(평민사)에서 짧게 소개했던 어느 성직자와 결혼한 지 3주 후부터 시작된 불행한 결혼생활이다. 자신의 불만과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 사연에 대해서 위너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성품에 대해서 나쁜 말도 하지 않는다. 위너는 “극적이며 중대한, 그리고 값비싼 대가를 치른 실패”라고 그녀가 부른 이혼의 책임을 대부분 자신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녀의 불행의 근원은 그녀 자신에게도 불가사이하게 보인다.

위너는 영적 멘토, 친구, 사제를 찾아 상담을 구한다. 자신의 6년 결혼 생활 동안 “하나님은 비현실적인 관념이 되었다. 하나님의 존재는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 같았고 아득히 멀어져만 갔다”고 말한다(6쪽). 이러한 소원함의 뿌리는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위너가 학대를 받았거나 성적인 배신을 당했거나, 아니면 그녀의 이혼이 어쨌거나 분명히 죄라고 전제하는 신학적인 각주라도 있으면 한다. 나도 위너의 이혼에 대한 독자들의 실망에 공감한다. 그러나 공손하게 제안하겠다. 이러한 것들이 없다고 해서 「스틸」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죄 이후의 은혜에 관한 풍부하고 매혹적인 설명을 놓치는 것이라고.

「스틸」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전적인 부재를 느끼는 “장벽”, 자신의 불만을 면밀히 조사하고 친구와 성경과 작가들로부터 위안을 받는 불확실성의 기간인 “요동”, 그리고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엄존하시는 “임재”[역본은 ‘평정’]이다. 위너의 독자들은 그녀가 기독교 예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예전이 그녀를 성경의 이야기로 다시 방향을 잡게 하고,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도 더 잘 나에게 설명해준다.” 예전은 종종 위너에게 그녀 혼자서는 끌어올릴 수 없는 믿음의 원천이다.

아침 채플에서 그녀가 시편 25편을 암송할 때(“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것은 그녀가 수년 동안 가장 진심으로 드린 기도가 되었다. 어느 성공회 교회에서 성만찬에 참여하게 된 그녀는 남편을 대신하여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는 노부인을 본다. 남편은 아무것도 소화시킬 수 없는 위 질환 때문에 그것을 삼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비록 그들의 아픔과 남편의 병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입과 손을 통해 노부부가 한 몸이라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평소 성서를 읽으면서 결혼을 통해 남녀가 한 몸이 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노부부의 모습에서 미처 몰랐던 성서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달게 되었다.”

그녀가 겪은 이런 일들은, 신앙의 위기를 맞은 회의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비디오 설교 예배와 찬양에 열광하는 교회보다 더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독자들은 또한 위너가 그토록 힘든 고독감 속에서도 성경에 대한 사랑만큼은 유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두 명의 슬픈 여성, 앤 색손과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위너에게 하나님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고서점에서 업다이크가 소장하고 있던 정교회 작가 알렉산더 슈머만의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성례전과 정통」을 우연히 발견한다. 그 책 여백에는 업다이크가 써 놓은 메모가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시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다. 위너는 이것을 “거룩한 성도들과 연합해 지금 영광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이 내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라고 여겼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우리의 간절함을 통해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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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밀함

물론 ‘스틸’Still은 평온하고 잔잔한 상태를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그는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고 지킨다는 뜻일 수도 있다(“보지 않고 나를 믿는 자는 복되다”). 두 의미 모두 위너에게 잘 적용된다. 그녀는 영적 삶의 “중간” 지점에서 그녀에게 새롭게 다가온 이 단어로, 극적인 회심이 기도와 교회가기라는 지겨운 일상으로 넘어가버리는 지점을 묘사한다. 한때는 기독교 이야기가 우리를 선택했지만, 이 중간 지점에서는 우리가 기독교 이야기를 선택한다. 이 지점을 색깔로 이야기하자면, 선홍이라기보다는 어두운 갈색과 희미한 적색과 푸른 회색이 섞인 그림자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조로운 중간 지점에서 

그분과의 사이에 모종의 친밀함closeness이 상존하고 알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이전이나 친구처럼 곁에 계셨을 때에도 내가 몰랐던 뭔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불가시적인 현존, 친밀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탓에 하나님은 마치 같은 지붕 아래 있지만 다른 방에서 책을 읽는 남편과도 같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직접 대면하지 않고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관계라 할 수 있다.(164쪽)

「스틸」은 나오자마자 영적 고전이 된 책이라 할 수 있으며, 오래 전 정절을 맹세했던 하나님을 이제는 모르겠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는 환멸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향유이다. 물론 벌써 오래 전에 하나님과 이혼했지만 다시 결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한다. 활기에 넘치는 유대교인이었던 로렌을 끌어내셨던 그리스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영원히 변함없이 그녀의 곁에 계시는 분이시다. CT 케이틀린 비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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