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일요일 하루는 천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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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요일 하루는 천일 같았다
  • 김은홍
  • 승인 201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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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는 이토록 전하고픈 생각이 많았던 것일까

일요일 단 하루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길지 않았지만 치열했던 생애가 농축되어 있다. 친구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에는, 지난 2011년 역간된 전기 「디트리히 본회퍼:목사 예언자 순교자 스파이」(포이에마)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에릭 매택시스의 위 전기가 그린 본회퍼가 그랬듯이, 그는 천재적 신학자이자 교회를 사랑한 목사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사람으로, 그래서 인간으로서 저항 불가능해 보이는 악의 화신과 죽음의 지상 권력에 무모하게 맞서는 “스파이”이자 “암살 공모자”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고뇌가 큰 만큼 행동도 과감했던 인간으로 살았다. 그의 삶의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는, 중산층 그리스도인 가정의 이상을 그리고 있는 이 자전적 소설에서마저 그의 운명을 서늘하게 예감한다. (감옥에서 쓴 이야기이지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운명을 짐작이나 했을까?)

「본회퍼의 선데이」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조병준 옮김 샘솟는기쁨 펴냄

소설 첫 몇 장에서는 실존 인물들과 이 소설 속 인물들을 일대일 대응 관계로 맞춰 짐작해 보았지만, 그렇지 않다. 7월의 어느 일요일 브레이크 가문 아이들의 면면과 진술(대화와 토론) 곳곳에서 우리는 본회퍼의 조각을 찾아 맞출 수 있다. 심지어는 소설 속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와 부모님,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브레머 소령에게서도 본회퍼를 발견할 수 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도이기도 했는지는 몰라도, 결국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각자가 본회퍼라 할 수 있다. 때로는 순진무구한 아이로, 때로는 인간 본성과 행동의 모순에 드러나는 이중성을 날카롭게 냉소하는 도전적 소년으로, 때로는 선과 악의 혼재한 세상에 고뇌하는 조숙한 청년으로, 저마다 그렇게 본회퍼의 말이 되고 생각이 되고 행동이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화―옛날 어느 마을 교회에 차례로 ‘자비’의 종, ‘정의’의 종, ‘평화’의 종이 달렸다―로 읽힌다. 왜 본회퍼는 그 하루를 ‘일요일’로 정했을까? 왜 그는 자비와 정의와 사랑의 교회 종 이야기로 끝을 맺을까? 브레머 여사의 말에 밑줄을 긋는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저 소리가 그리웠단다. 들어봐라. 셋 중에서 저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짙은 음색인 가장 오래된 ‘자비’의 종소리를 들어봐라. 또 맑고 간결한 ‘정의’의 종소리를, 그리고 두 소리 위에 있는 부드럽고 맑은 종을 ‘평화’라 부른단다.”(193쪽)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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