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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그 잔인했던 대한민국의 이야기오늘도 우리는 목소리 높여야 할 때 침묵하고, 묵묵히 일해야 할 때 목청만 높이고 있다.
김은홍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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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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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비정한 도시
현길언 지음
성사 펴냄

 

6.25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제주 남원교회가 남원초원학교 강당을 빌려 초등부는 ‘지옥과 천국’ 연극을, 중등부는 ‘할렐루야 합장’을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현길언은 그때 형들이 부른 ‘할렐루야 합창’을 지금도 기억한다. 현길언은 1957년에 제주 영락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프간 피랍 사건으로 순교한 배형규 목사도 제주영락교회 출신이다. 현길언에게 2007년 여름은 그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비정한 도시」는 그 뜨거웠던 여름의 기록에 기초한 이야기다. 그 여름, 우리는 모두 비정했다. 비겁했다. - 인터뷰 김은홍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일어났던 2007년 그 여름, 어떤 심경이셨습니까?

교회란 사회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곳 아닙니까? 23명의 사람들이 납치되어 있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을 구출하는 일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다른 논의거리란 없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는 그들을 구출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왜 그들이 그곳에 갔느냐’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가’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다들 샘물교회와 한국 교회를 비난하고, 한국 교회 단기선교의 문

제점을 지적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교회는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을까 눈치보고 침묵했습니다. 아니, 침묵으로 끝나지 않고 일부 기독교 단체와 목회자들은 오히려 그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서 한국 교회의 선교 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어떤 진보적인 기독교 연합 기관은 부정적인 입장을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언론이 샘물교회를 포함한 한국 교회를 향해 집중 포화를 쏟아냈습니다. 교인들은 모두 목소리를 죽였습니다. 하다못해 설교 강단에서까지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를 비판하는 목사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해외 선교를 얼마나 중시하며 강조합니까?

사실 피랍된 그들은 선교하러 간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피랍 일기를 통해 제가 확인했던 것은 그곳에 있는 모든 현지인들은 종교적인 대립관계에서 한국 봉사단을 인식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그것은 이념을 초월한 사랑의 관계인데, 이념이 덧씌워지면 위협이 되고 진압이 되고 싸움이 됩니다.

제가 당시 목격한 역설적인 현실은 한국은 오히려 비정한 곳이고, 샘물교회 사람들과 아프가니스탄 현지인들은 인간과 인간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탈레반까지도 그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비정한 도시’라 하신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323쪽). “비정의 도시 사람들 같아.” “비정의 도시에는 비겁자들만 살고 있군.”

처음엔 ‘잔인한 도시’라고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청준 씨가 그 표현을 먼저 썼기도 했고, ‘잔인한’이라는 말보다는 ‘비정한’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비겁’이라는 것은 용기가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이익에 매몰되어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우리 교회가 그랬고, 정치인ㆍ교회 지도자ㆍ기독교 지성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한국 교회를 공격했고 그들을 구출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논점을 한국 교회의 선교 정책 공격에 두었습니다. 여기에 편승해서 한국 교회 내부에서도 단기 선교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선교 방식 등에 물론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점에서는 ‘그걸 먼저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출되어 사태가 해결된 다음에 차분하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했던 것이 아니겠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계도 본질과 현상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염병에 걸리면 그것을 치유하는 것이 문제인데, 언론과 정치권, 심지어는 시민사회까지 누가 옳고 누가 잘못되었는지를 따지는 데 더 바쁩니다.

 

왜 우리 교회는 침묵할까요?

특정한 이슈에 대해 교회가 발언을 하게 되면, 그것이 현실적으로 교회에 이익이 올까 손해가 올까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일 뿐입니다. 여러 차례 한국 교회가 사회 이슈의 표적이 되어 사회로부터 비정하고 잔인한 공격을 받고, 또한 교회 내부의 자해적 공격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논리보다는 감성으로 대응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그런 감성적 공격을 극복하려면 성서의 입장과 논리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교회가 아닌 곳의 차이가 없어집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세계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년 쯤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을 이야기 하는 책을 내려 합니다. 우리의 세계관을 성서의 입장에서 다시 해석해 보려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이 아직 미성숙한 것일까요?

미성숙하기도 하고, 교회가 우리의 세계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자기 존재성에 대한 성서적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나면 무엇을 합니까? 일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체적 인식,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을 하려면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나로부터 시작해서 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신의 문제까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열두 가지 항목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주체적 삶과 도덕성과 경쟁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살면 그것이 사회적 경쟁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원칙대로 살고 정직하게 살면 항상 손해 본다는 생각이 퍼져 있습니다.

   
 

젊은 세대와 미래 세대마저 그런 왜곡된 생각에 빠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가 도덕적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경쟁력이 강화되겠습니까? 세월호 사건 때 선장이 자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저는 땅콩회항 사건에서 기장과 사무장의 태도에도 불만이 있습니다. 부사장이 아무리 명령을 해도 부당하면 완강하게 거부했어야 합니다. 돌아와서 그것이 밝혀진다면 대한항공의 명성은 오히려 세계적으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대한항공의 사원들은 상사가 아무리 명령을 해도 부당하다면 원칙에 따라 일한다.’ 이렇게 알려진다면 대한항공의 경쟁력은 크게 향상되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정직하고 주체적으로 일할 때 영웅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체의식이 없으면 사회적 통념을 개인적으로 거부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라는 엄청난 배경이 있지 않습니까?

“순간 구 기자에게는 ‘그 잘난 기사 몇 줄 쓰려고…’ 하는 한마디가 뼈에 틀어박혔다.”(129) ‘구 기자’로 형상화 되어 있는 한국의 저널리스트와 언론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시는데, 설사 미디어가 그렇게 하더라고, 구 기자에게 호통을 친 노인처럼, 우리가 주체적인 미디어 비평을 했더라면, 그런 쏠림 현상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의 힘은 엄청납니다. 언어의 홍수시대 아닙니까? 언어의 폭력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언어의 폭력은 이리가 양의 모습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리가 이리의 모습으로 오면 우리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겉으로 보여주는 폭력적 언어라면,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잘난 기사”라는 것은 독자를 위한 기사라는 것입니다. 독자의 구미에 맞는 기사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으로, 경영자의 구미에 맞는 포장된 기사입니다. 요즘 종편에서 떠드는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비판도 그런 것입니다. 처음 들을 때는 그럴 듯한데 계속 듣다보면 그들의 논평이 메르스를 퇴치하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007년 그 여름을 소설로 구성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고인이 된 배형규 목사가 제 고향 교회인 제주영락교회 제자입니다. 배 목사가 한양대학교 경영과를 졸업했습니다. 그가 순교한 다음에 한양대에서 추모 모임을 가진 이야기, 배 목사가 기숙사에서 친

   
 

구들에게 용돈을 준 이야기, 기숙사에서 가장 나쁜 방을 선착순 1번으로 차지 한 이야기라든지, 소설의 배 목사 친구들의 이야기는 전부 사실입니다. 이 소설의 소재 자체는 모두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문학은 어느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독교 문학에 대한 인식부터 잘못돼 있습니다. 기독교 문학과 비기독교 문학은 구분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인간들도 하나님 일에 참여해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지요. 서구에는 기독교 문학이라는 것이 없잖습니까. 그 문학에서 기독교적인 정신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지요. 우리도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존재론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기독교 문학의 범주에 포함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의 내용을 다섯 가지로 봅니다. 먼저 하나님이 누구냐 하는 신의 존재성에 대한 문제이고, 그리고 인간이 누구냐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네 번째는 죄악 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왜곡된 역사의 실상, 그리고 다섯 번째는 하나님이 회복하려는 새로운 세계의 실상입니다. 저는 이것을 서사적 구조에 넣어 이야기하고자 해 왔습니다.

 

현 선생님의 작품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선생님의 문학관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해 주십시오.

최근에 쓴 것이 숲의 왕국입니다. 숲의 생태적 관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었지요. 숲들이 왕을 세웁니다. 그런데 왕을 세우면서 숲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숲이 그것을 알게 됩니다. 자아에 대한 인식이지요. ‘왜 우리가 망했는가?’ 거기서부터 다시 훼손된 자아를 회복하고 숲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숲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숲이 좋아서 가꾸는 것이지요. 숲이 왕을 세운 이후부터 숲은 황폐해져갑니다. 탱자나무가 왕이 되었지요. 가시로 다른 나무들을 공갈 협박하면서 자기에게 복종하라고 강요합니다. 숲에서 반란도 일어납니다. 결국 숲을 관리하는 사람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이 나무들을 다 잘라서 새로운 수종을 심읍시다.” 그러나 주인은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을 자아에 대한 인식에 두었습니다. ‘세상을 치열하게 인식하자.’ 이것이 넓은 의미에서는 리얼리즘인데, 인간에 대한 회복이라는 것은 자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CTK

사진ㆍ정리 김희돈 기자
녹취 이미연 인턴
 

2008년 7월호
커버스토리: '2007 아프간' 못다 한 이야기
   
 

귀환자들에게서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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