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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70년을 깨우는 빛바랜 사진 한 장 같은역사는 뒤틀렸지만, 이야기는 바로 하자. 그리고 신나게!
박명철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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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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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을 맞아 발표한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 기도문’은 우리 민족이 분단국가로서 겪는 고통을 술회하고 남북이 평화와 화해로 통일에 나아가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7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정의의 길을 떠나 욕망으로 점철된 문명에 도취되어 살아온 것을 회개한다. 광복 70년을 맞은 오늘 우리의 과제를 평화와 정의의 회복으로 파악한 셈이다.

70년이라는 세월은 일제 식민지로 보낸 36년의 두 배에 달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그 세월을 보냈을까? 누군가는 산업화의 시간으로, 누군가는 민주화의 시간으로, 누군가는 복음화의 시간으로 70년을 설명한다. 그리고 영화 〈암살〉은 그 시간을 ‘망각의 시간’으로 설명한다. 누렇게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은 그 세월이 결국 망각의 세월이었음을 반증한다.

사진 속에서 세 사람이 웃고 있다. 그들의 웃음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소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얼핏 봐도 그들은 독립투사들이다. 국제사회에서는 테러리스트로 볼 수밖에 없는 얼굴들, 그런데 70년에다 12년만 더 보탠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그들은 내 누이의 얼굴처럼 참하고, 내 아우의 얼굴처럼 앳되며, 친한 벗의 얼굴처럼 반갑다. 그래서 영화 〈암살〉의 시간과 무대는 오늘 이곳처럼 가깝고 또렷하다.

한국 독립군의 저격수 안옥윤과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은 임시정부로부터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와 친일파 사업가 강인국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상해를 떠나 압록강을 넘기 전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대한독립 만세!” 그렇게 말하면서 입술 꼬리를 올리는 순간 사진기가 그들의 웃음을 잡아냈다.

영화는 세 명의 암살단이 경성에서 목숨을 걸고 임시정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시간을 그려낸다. 두 사람은 임무를 수행하다가 현장에서 죽어간다. ‘속사포’의 말처럼 “이 일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일이었지 싶다. 몸은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지고 사라졌다. 끝내 한 사람이 살아남아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신분으로 임시정부의 정보를 일본헌병에게 팔아먹으며 살아온 사람 ‘염석진’을 제거하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 〈암살〉은 36년의 지긋지긋한 세월 동안 누군가는 민족을 배반한 대가로 권력과 부를 누렸으며, 또 누군가는 의로운 꿈을 품은 채 죽어갔다고 말한다. 그렇게 의로운 꿈을 품고 산화해버린 사람들, 그들의 슬픈 웃음을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해방될 줄 몰랐다. 알았다면 그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나 도로보데스!” ‘모두가 도둑이다’라는 뜻의 일본말로 친일행각을 하던 이들이 즐겨 사용했다는 표현이다. 따지고 보면 도둑놈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독립운동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놈들도 결국은 흩어져서 제 이속 차리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그러나 또 누군가는 말한다.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나라 팔아먹는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는 없잖아요.”

처음 나라를 잃어버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직 많은 사람들은 다시 나라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르면서 강대국이 되어가는 일본의 힘에 억눌리면서 더 이상 독립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그라졌는지 모른다. 그 시간을 살아내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만 해댈 수도 없다. 강대국 미국과 전쟁하는 또 다른 강대국 일본이 ‘나의 조국’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는 않더라도 ‘내선일체’의 현실까지 부정하기란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들의 세월 속에서 해방은 하늘의 뜻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해방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아갈지, 포기하며 살아갈지는 냉혹하게도 그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백 번을 양보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를 지켜내고자, 의로운 꿈을 품은 채 그 모진 세월을 살았던 사람들의 슬픈 웃음들까지 지우거나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한반도에서 20세기 전반부를 살아간 누군가는 민족을 배신하고 홀로 압제자의 편에 설 수 없어서, 그렇게 슬픈 웃음을 지은 채 살아갔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압제자의 힘에서 벗어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들의 꿈이 그들에게 의로운 시간을 살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을 기억하는 일은 광복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유엔 제노사이드genocide 협약을 성사시킨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법학자 라파엘 렘킨은 나치의 학살을 ‘이중살인’이라고 불렀다. 학살 그 자체는 물론이고 학살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려 한 연합국의 태도 또한 학살과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복 70년의 우리 역사 또한 독립군으로 의로운 삶을 선택한 그들에게 ‘이중살인’을 저질러 온 것인지 모른다. 독립군으로 현장에서 죽어 간 그들을 이젠 망각을 통해 또 죽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의로운 꿈에 대해 망각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역할이자,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펼치시려는 뜻이 아닐까.

‘소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학자 한 사람은 막스 베버이다. 길지 않은 그의 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는 소명을 가진 정치가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한다.

“정치란 한손에는 열정을, 또 한 손에는 균형적 판단을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 서서히, 그러나 강하게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인 셈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도 불가능한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으며, 이는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이처럼 자신이 주고자하는 것에 비해 세상은 너무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삶의 푯대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의로운 꿈이다. 이 세상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도 잡고자 하는 어떤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 〈암살〉의 그 빛바랜 사진 한 장은 다름 아닌 역사의 소명에 헌신하여 살아야 할 우리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CTK 2015:9

박명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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