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행가래
카르페 디엠…메멘토 모리언젠가 지구별 소풍 끝내는 날, 나도…
송길원  |  CTK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0.05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송길원의 행가래幸家來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는 풍자와 박하 향 가득 통찰을 주는 글로 정평이 난 송길원 목사의 기명 칼럼이다. 이 칼럼을 통해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소재들에서 행복, 가정, 미래의 주제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담아내어 독자들의 삶을 헹가래치려 한다.  

 

   
 

“하벨 하발림…하벨 하발림 하콜 하벨.”

무슨 모르스Morse 부호냐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모르스’Mors 부호 맞다.

‘모르스’Mors는 ‘죽음’ ‘시체’ ‘파멸’의 의미를 나타내는 라틴어다. 로마 신화나 문학 등에 등장하는 죽음의 여신이다. 전도서를 관통하고 있는 ‘모든 것의 헛됨’ 때문에 사람들은 전도서를 기피한다. 성경 66권 가운데 요한계시록보다 더 외면당한 책이 있다면 ‘전도서’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뤼디거 룩스Rüdiger Lux는 “교회 공동체와 예배가 전도서를 외면하자, 전도서는 교회를 떠나 문학가와 철학자들에게 가버렸고, 심지어는 요한 브람스의 엄숙한 노래Ernste Gesänge와 록그룹의 영화음악에까지 그 입지를 넓히고 그들 가운데서 혼령처럼 떠돌며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전도서는 출발부터가 회의적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죽음으로 인해 비롯된 삶의 허무함이다. 하지만 삶의 자리에서 죽음이 아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다. 역설이다. 전도서에서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가 한 축을 이룬다.

이어 “헛된 세상을 살면서 그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1:3)라질문하고 이렇게 답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전3:22)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전8:15)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9:9)

이번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로 옮겨간다. 즐김이다. ‘항상’(전9:8)이 어느 순간 ‘평생’(전9:9)으로까지 확장된다. 놀랍다. 인간의 삶이란 하루하루가 일평생 축제의 삶이어야 함을 가르친다. 구체적이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전9:7)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하라.”(전9:8)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따라서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전도서를 떠받치는 사상적 두 축이 된다.

 

전도서의 두 코헬레트, 올리버 색스와 카터

남은 몇 개월을 어떻게 살지는 내게 달렸습니다. 풍성하고 깊고 생산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더 많이 쓰고 여행하면서 인식과 통찰의 새 지평에 다다르려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남깁니다. 모든 인간이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자신만의 죽음을 맞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최근 우리 곁을 떠난 미국의 저명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는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을 앞에 두고 이런 글을 남겼었다. 무엇보다 그는 ‘두려움이 없는 척’ 하지는 않겠다며 ‘가장 강한 느낌은 고마움’이라 했다. 결국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삶’이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저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걸 받았고 돌려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저는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고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이달 초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91)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에게 간암이 뇌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며 “어떤 결과가 오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청바지에 재킷 차림으로 45분가량 기자회견을 하면서 환한 웃음과 쾌활한 태도로 유머까지 던졌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와 카터. 이 둘이야말로 전도서의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낸 ‘코헬레트’, ‘전도자’들만 같다.

 

상喪 당했다고? 아서라!

종종 사람들은 말한다. ‘감기에 걸렸어.’ ‘독감이 들어서 말야.’ 이렇게 말하는 순간, 뭔지 모르게 ‘재수가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된다. 원치 않게 내 몸이 무언가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병을 앓았다’(알았다)고 하면 어떨까? 사람은 병을 앓으면서 비로소 내가 내 몸을 알게 된다 하지 않는가? “병이란 나타날 기회가 없었던 내 몸의 속성이다. 그리고 병을 앓는 것은 그 속성을 나와 일치시켜 새로운 내가 되는 과정이다.”(강신익) 그 때 적어도 우리는 ‘명랑 투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놀이가 아니다. 말은 그 사람의 세계관이다. 이런 점에서 가장 저주스런 악담이 있다.

“상喪 당했다”

해맞이 달맞이처럼 죽음 맞이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해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 임종臨終 말이다.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고 이끄는 것을 의미하는 ‘군림’君臨처럼 인생의 마지막[終]을 다스리는 군주君主로 살아볼 수는 없는 것일까?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울고 있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내가 세상 떠날 때 나는 웃고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울고 있다. 그 인생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이려니’ 하는 말이 있다.

멋진 삶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신나고 흥미진진하고 기쁜 삶을 살았습니다.
난 지금 내 아내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합니다.

언젠가 지구별 소풍 끝내는 날, 나도 카터처럼 웃으며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의 문턱에서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가 나를 손짓하고 있다. CTK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전도서 관련 기사]

인생을 기쁨으로 사는 법
전도서는 반지성주의를 조장하지 않는다
의미의 섬이 우리의 발밑에서 가라앉을 때

 

[관련기사]

송길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7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