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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파병 50년의 과제‘진실한 기억의 발굴’, 그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집단 기억은 건강할까
박명철  |  aimpark@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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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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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4년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50년이 되는 해였고 올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는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네 차례 파병을 통해 총 32만 5000여 명의 한국군을 베트남에 보냈다. 그러니까 8년 6개월 동안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셈인데, 이 기간은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기간의 거의 절반 가까운 기간이다. 베트남전쟁 파병은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이고, 최장 기간의 해외 파병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최대 파병국이었고,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뒤에도 한국군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1972년의 경우만 보면 미군(2만 4200명)보다 더 많은 3만 7438명이 주둔함으로써 한 해만 놓고 본다면 이 전쟁은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 마치 한국의 전쟁과도 같았다.

베트남전쟁이 일어난 그 시기 우리 사회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역동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5ㆍ16 쿠데타 이후 3년 만에 파병을 단행했고 그 시대 경제성장의 동맥처럼 여겨진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파병장병들의 피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베트남전쟁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파병 50년 종전 40년인 올해까지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무엇보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역사’ 다시 말해서 전쟁사나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가르치는 전쟁, TV나 영화의 전쟁다큐멘터리, 전쟁기념관 및 기념비 등을 통해 표현되는 공식적인 전쟁이 아닌 개인들의 전쟁 경험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을 연구해 온 사회학자 윤충로 교수의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 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는 그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물이다. 이 책은 파월장병, 파월기술자, 대학생 위문단, 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 등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토대로 하여 기록됐다. 따라서 다양한 주체ㆍ집단의 목소리가 담겨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베트남전쟁을 접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신앙적인 사유를 위한 주제를 던져준다.

“한국은 베트남전쟁 담론에 한국 사회의 정치ㆍ이데올로기 지형을 투영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전쟁은 ‘반공전쟁’이자 ‘발전의 기회’로, 참전군인은 ‘반공의 십자군’ ‘반공전사’ ‘월남의 재건과 건설의 전위’로 정형화되었다.”(136쪽)

이렇게 굳어져버린 베트남전쟁은 세월 속에서 ‘잊힌 전쟁’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베트남전쟁의 중심에 있던 참전 개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정형화된 베트남전쟁, 곧 나무가 없는 숲을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실제로 전쟁 주체의 목소리라면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의 회고록 정도가 고작이었을 뿐 실제 전선에서 총을 쏘던 소총수의 ‘작은 역사’는 드러내지 않았다.

이 책이 전해주는 그 ‘작은 역사’의 일단은 곳곳에서 정형화된 베트남전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가령 국가가 강제 차출을 하기도 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일주일을 굶으면서 저항했지만 결국은 파월 수송선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파월 장병들의 일진이 귀국한 1966년부터 상황은 바뀌어, 지원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보릿고개가 이어지던 그 시절, 베트남은 비록 전쟁의 땅이었으나 젊은이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보였다.

“사단사령부에서 사병계 상사였는데, 그분한테 면담을 하면서, ‘내가 군대에서도 벌어야 우리 가족들이 먹고 사는데, 나 국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되니까, 나는 월남을 가야 된다. 좀 보내줄 수 없냐?’ 그랬어.”(박성춘 구술, 143쪽)

일단 파월 수송선에 오르면 이동 기간의 월급을 선상에서 달러로 수령했다고 한다.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언급했다.

“미국 달러로 6일간의 월급을 소급해 받았다. 이등급 월급은 10달러가 안 되었지만, 처음 받아 쥔 달러는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 ‘야 목숨 값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미군들과 마찬가지로 달러를 받는 군인이다.’”(김선기 글, 152쪽)

국가는 반공전쟁을 외쳤지만, 정작 가난한 국민들은 가난을 탈출하기 위한 출구로 베트남을 선택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그런 모든 생각들이 정지되었다. 청룡부대의 한 소총수는 말한다.

“내가 꼭 살아와야 되겠다는 그 집념만 있는 거지. 내가 싸워서, 전면전이 있을 때는 할 수 없이 ‘적을 죽여야 내가 살아 간다’ 이런 생각을 갖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숨을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신념들. 누가 내 옆에서 느닷없이 쓰러지면 그걸 치울 생각이 안 드는 거야. 다리가 굳어져 가지고. ‘나도 똑같이 저렇게 되는구나’밖에 생각이 안 나니까.”(강진일 구술, 157쪽)

베트남전쟁의 기억은 민간인학살 등 슬픈 우리의 자화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월남인들은 게으르고 비위생적이라는 증언들도 있다. 파월 한국군들 가운데는 미군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느낀 반면 베트남인들에 대해서는 우월감으로 바라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어린 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기억하면서 동류의식과 연민을 자극하기도 했던지 이렇게 말한다.

“꼭 6ㆍ25 당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때 나도 저 월남 어린애들처럼 미군만 나타나면 뭣이든 조금 얻어먹으려고 미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미군들의 눈치를 보았고, 혹시 미군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껌이나 초콜릿이라도 던져주면 서로 집으려고 싸움질 했던 기억이 생생이 떠올랐다.”(조성국 글, 161쪽)

   
 

전쟁터라는 일자리

베트남에선 군인 외에 2만 4000명의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함께 전쟁을 경험하며 일을 했다. 이 책은 이들 중 8명과 ‘노동자의 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트남전쟁이 일어난 그 무렵 우리나라는 실업사회가 만성화되어 비농가 남성 실업률이 10%를 웃돌았다. 보릿고개가 있던 때였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은 “차라리 죽어 돌아오더라도 월남에 나가볼까” 말했다. 그 말은 곧 베트남에라도 가지 않고는 살 길이 막막할 만큼 척박한 현실이었다는 의미이다. 또 참전한 군인들 가운데 제대일자가 지났거나 한 달 정도 남겨 놓은 장기 복무자들 가운데 귀국해도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현지에서 취업하기도 했다. 특히 보병 출신이 아닌 기술직 출신들이 주로 취업했다. 그들은 또 베트남에서 돌아와서도 중동 등의 해외 노동자로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급속히 신흥재벌로 부상한 기업도 있었다. ㅎ그룹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베트남에서 미군 군수품 수송으로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 기업의 현지 수송 노동자들은 철모를 쓰고, 방탄조끼를 입고, 소총과 실탄 240발을 옆에 놓고 운전해야 했을 정도로 목숨을 건 노동이었다. 실제로 운송 중에 기습을 당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민간인이었으나 그들은 ‘군번 없는 군인’이나 다름없었다.

외국계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그래도 나았으나 ㅎ기업 같은 우리나라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임금, 300달러 정도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노동시간은 길었다. 그래도 일할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게다가 한국식 노동 규율 아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들을 고용한 기업의 행태는 임금 지급을 하지 않는 등 노동자들의 분노를 샀다. 이 기업에 고용되어 참전하고 귀국한 노동자 200여 명은 결국 1971년 미지불된 임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서울에 있는 본사의 빌딩을 점거하고 방화사건까지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농성자들 가운데 13명이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베트남으로 갔던 참전군인이 이제는 60-70대에 접어들었다. 그들에게 전쟁의 시간들 곧 피해와 폭력의 기억, 돌아와 겪은 삶의 질곡 등은 그들 삶의 일부였고, 이제 삶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전쟁의 시간도 새롭게 정리되어야 할 시간이다.

“국가와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이제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364쪽)

가령 같은 전쟁에 참전한 미국인들의 경우 절반이 ‘정당하지 못한 전쟁’으로 평가를 내리고, 베트남전쟁 당시에 이미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참전군인회’Vietnam Veterans Against the War가 결성되었고, 지금까지도 참전군인 단체들이 베트남과의 화해와 반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전군인들에 의한 반전과 평화의 노력은 충분히 신앙적인 사유의 의미를 던져준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에서 말했듯이 “샬롬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인 동시에 인간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또는 샬롬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화 저 편의 전쟁 현장에서 삶의 한때를 보내야 했던 이들로부터 샬롬의 목소리를 길어 올린다는 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문제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참전군인들이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반전과 평화에 대한 노력보다 반공 국가 발전 등의 가치에 더욱 집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전쟁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전쟁 당시에 위로부터 만들어지고 강제된 공적 기억이 전부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참전한 개인들조차 정작 ‘이념적 재현’이 아닌 명예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 책의 증언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진실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베트남전쟁의 역사적인 자리매김을 위해 가장 먼저 발굴해야 할 자원이다. 저자는 말한다. “과거의 문은 그 과거의 진실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닫히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우리 안의 신화를 해체하고, 전쟁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고 성찰할 때 한국의 베트남전쟁은 현실이 아니라 역사로 남을 것이다.”(367쪽) CTK 박명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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