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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도아버지의 반성문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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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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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의 행가래幸家來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는 풍자와 박하 향 가득 통찰을 주는 글로 정평이 난 송길원 목사의 기명 칼럼이다. 이 칼럼을 통해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소재들에서 행복, 가정, 미래의 주제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담아내어 독자들의 삶을 헹가래치려 한다.

   
 

겁고 슬펐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 자식을 자신의 틀에 맞추고 싶어 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거부하고 자신의 틀을 고집하는 아들, 잘난 아버지와 잘난 아버지를 못 따라가는 못난 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기에는 난 소심남이었다. 새가슴은 더 조여와 개미가슴이 되었다. 무슨 이야기냐고?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도 이야기다.

 

영조: 너는 장차 나라를 책임질 세자가 아니더냐?

세자: 나는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멘붕이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세도사자’라 더듬었을까? 전두엽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던 영상이 또 한 번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글래디에이터, 황제 코모두스(와킨 피닉스) 이야기 말이다.

다르면서도 닮은 꼴 두 영화, 글래디에이터사도.

 

아버지: 막시무스에게 권력을 넘기겠다. 원로원이 통치할 준비가 될 때까지 짐의 권력을 대신할 것이다. 로마는 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아들: 막시무스?

아버지: 그래 (아들의 얼굴을 만지려 한다. 아들은 손을 비킨다.)

아버지: 내 결정에 실망했느냐?

아들: 언젠가 아버진 저에게 네 가지 덕목을 적어줬었죠. 지혜, 정의, 용맹, 그리고 절제! 전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하지만 저도 내세울 게 있어요. 야망. 남들보다 앞서게 해주는 덕목이죠. 뛰어난 지략과 용기. 전쟁터의 용맹엔 못 미칠지라도 딴 종류의 용기도 많잖아요. 헌신, 저희 가족과 아버님께요. 그런 제 장점은 목록에 없었고, 아들로도 원치 않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 코모두스, 그건 지나친 억측이야.

아들: 신들께 끊임없이 빌어 왔어요. 아버님을 기쁘고 영광되게 해드릴 길을 가르쳐 달라고요! 단 한마디 따뜻한 말로 저를 애정으로 포옹만 해주셨어도 평생의 기쁨으로 삼았을 거예요. 저의 무엇이 그토록 싫은 거죠? 제가 진정 원했던 것은 아버님 기대에 부응하는 거였어요.

아버지: 코두모스. 네가 자식답지 못한 건 이 아비가 부족한 탓이었어. 안아다오.

아들: 아버님. 날 미워하신 은혜의 대가로 세상을 피로 짓밟고 말겠어요.

(그리고 준비된 단도로 아버지를 찌른다. 아버지의 비명과 아들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점에서는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황제(왕)와 후계자(군신), 아버지와 아들로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구조는 너무도 닮은꼴이다. 서사시는 이렇게 쓴다. 아버지는 자식을 생각하는 동시에 백년대계의 국가보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백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영화 속 아버지(영조)는 외아들이자 세자에게 내려 줄 책을 직접 집필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하지만 세자는 아버지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공부를 게을리했다. 개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 때 그 절망감이 오죽했겠는가? 아버지는 읊조린다. ‘내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고. 종묘사직이 이렇게 끝날 수는 없는 법, 한마디로 이른다.

“자결하라.”

아버지의 고뇌는 깊어만 간다. 그는 넋 나간 사람처럼 되뇐다.

“난 자식을 죽인 아비로 기록될 것이다. 너는 임금을 죽이려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 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사도세자 후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영화관을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뒤주’처럼 느껴진다. 계단을 걷는다. 과녁을 잃은 채 허공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훠이훠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뎌도 차라리 시원하다. 지하 주차장. 조카 녀석들의 표정을 살핀다. 저 아이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아버지의 분노? 아니면 아들의 광기? 그 때 누군가 한 마디 한다.

“야, 너네도 공부 안하면 뒤주에 갇히는 거 알지?”

이 또한 공부가 국시國是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땅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

영화의 가장 아픈 대목은 세자가 잠들기 전 그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어 던지고 내복바람으로 손가락을 빨며 엄마를 찾는 장면이다. 그러나 왕궁의 법도를 따라 ‘거부’당한다. 또 하나의 복선은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던 세자가 허공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다. 사랑의 결핍과 자유에의 갈망, 상징이다.

아버지 나이 41세에 태어나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세자(이선), 만 세 살에 효경을 욀 만큼 영특했던 그는 사춘기의 이른 나이부터 엇나가기 시작한다. 삐걱대는 관계는 이른 대리청정에서 극에 달한다. 끝내 아버지 곁에 가기도 싫어하는 세자, 뒤주 속에서 몸부림치지만 객이 되어서야 아버지를 보게 된다. 처참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 아들을 쓸어 만지며 넋두리하는 아버지 영조.

“어찌하여 너와 나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 길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단 말이냐…….”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아, ‘사도!’

 

생각할 사

대리청정을 하겠다며 세자 뒤에 앉아 수많은 신하들 앞에서 사사건건 세자의 의사결정에 대해 꾸짖고 역정을 내는 아버지. “다 생각이 있어 그리한 것인데, 네 맘대로 바꾸면 어떡하니?” 의견을 물으면 핀잔을 준다. “그만한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나?” 자존감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다. 상처다. 아들은 무너져 내린다. 배경에는 무수리(천민)의 자식으로 왕위에 오른 자신의 상처가 있다. 아들에게 강압으로 다가온다. 세자는 왕의 무게가 아니라 말의 무게에 무너진다. “넌 존재 자체가 역모다.”

 

슬퍼할 도

200년이 지난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무슨 뜻일까? 칼릴 지브란에게 되물었다. “아들과 아버지, 어떻게 운명의 사슬을 풀 수 있을까요?”

 

“기억하거라. 네 자식이라고 네 소유는 아니란다…. 비록 네 몸을 통해 태어났지만 너로부터 온 것은 아니지 않니?…네가 그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생각은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네가 그들의 몸을 집에 가두어 둘 수 있으나 그들의 영혼을 가둘 수는 없단다…. 네가 그들을 닮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너를 닮도록 하지는 말거라….

부모들은 활, 너희들의 자식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너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가지. 그리하여 궁수이신 하나님은 무한궤도 위의 한 표적을 겨누고 그의 힘으로 부모들을 구부려 그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한단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은 궁수이신 하나님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해야 한단다. 왜냐하면 그 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견고한 활도 사랑하시기 때문이지.”

 

아, 아버지들의 콤플렉스와 강박증, 과잉기대와 욕심, 조절되지 않은 분노와 아픈 말들을 가두어 둘 ‘아버지 뒤주’는 없는 걸까? 영화가 명한다. “뒤주를 가져오라.”

(후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사도세자의 이야기, ‘나는 이 글을 두 아들 찬이와 준이, 헬조선의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반성문으로 바치노라.’) CTK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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