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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슬픔에 대한 생각아비도, 아들도, 아들의 아들도, 그리고 나라도, 역사도 슬픈
박명철  |  aimpark@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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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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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작은 법도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한다.” 어린 아들 산이 아내를 맞아 인사하러 왔을 때 사도세자는 아비로서 이렇게 말한다. 아비의 정을 느끼지 못한 아들, 사도세자의 이 말은 부부 사이의 도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부자간의 도리로 들린다.

그랬다. 아버지인 영조 이금李衿은 아들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았고, 작은 법도에도 철저했으며, 꾸짖고 또 꾸짖었다. 아들보다 앞서 왕의 길을 걸어온 아비로서, 왕의 길을 걸어갈 아들의 미래가 그렇게도 불길했던 게다.

아버지는 무수리의 아들이었고, 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세간의 소문이 자자했으며, 그런 약점들 때문에 정통성이 빈약한 권력으로 신하들과 부딪쳐야 했다. 왕은 대소신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한시도 기세를 펴지 못했다. 그럼에도 권력에의 욕망은 불탔고, 그것을 지키고자 스스로 절제하며, 빈틈을 메우고, 조금의 느슨함도 다잡아 살았다. 그렇게 아비의 하루하루는 전쟁 같은 나날이었다. 대전大殿에서 전투를 끝내고 침소로 들기 전, 아비는 자신을 향한 험한 소리들을 마음에서 떨어내고자 귀를 씻었다. 그렇게 스스로 의식을 행하면서 이겨내야 할 싸움이었다. 아비의 모든 길은 군왕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힘겨운 몸짓이었다.

아비의 싸움은 제 자식에게까지 멈추지 않았다. 군왕이 될 아들을 둔 아비는 이미 아비의 정을 내려놓아야 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저 군왕일 뿐 따뜻한 부정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앙상한 아비에게선 기침소리조차 새되었다. 대전에서 아비는 마치 얼음처럼 찬 벽 같았다. 선위禪位까지 해준 아들이었으나 아비는 아들이 이러하면 저러해야 한다 꾸짖고, 저러하면 이러해야 한다 꾸짖었다. 아비의 기세에 눌린 아들은 제 속에 든 씨앗조차 싹을 피우지 못한 채 아비처럼 앙상해져 갔다. 아들의 눈알은 아비의 목소리에 치여 이리저리 굴렀고, 아비의 윤허에 따라 아들의 총명은 엎치락뒤치락했다. 제 길로 곧장 나아가지 못한 채 물 위를 떠도는 종이배 같았다. 아비는 흔들리는 아들을 향해 더욱 가혹하게 채찍을 들었고, 어느새 대신들조차 무수리의 아들의 아들을 무수리 대하듯 깔보았다.

아비의 정을 누리지 못한 아들은 급기야 아비와 맞서고자 했다. 아비의 길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먼저 거스르고 볼 일이었다. 아들 안에 충만하던 꽃의 향기는 아비의 냉기 앞에서 미친 듯 날뛰었고, 아비를 비웃으며 경멸했다. 군왕인 아비는 아들의 존재가 전투의 대상이던 대신들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아비도 미친 듯 아들과 전쟁을 선포하고, 완력으로 아들을 가두고 꺾고 잘랐다. 아비는 아들을 죽인 아비의 길이 어떠할지 알지 못했다.

아들의 시호를 ‘사도’思悼라 지은 아비는 자신의 감정을 오래도록 깊이 들여다본 사람인지 모른다. 아비는 자신을 슬픔으로 몰아간 아들을 꺾고 잘라서 불살라버린 뒤에야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 감정 곧 슬픔을 마주한 것이 아닐까?

“인간이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 슬픔이라고 말한 사람은 스피노자이다. 그것은 곧 타자를 만나 삶의 충만함 곧 큰 완전성이 훼손된다고 느낄 때의 감정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왕이 되고자 품은 갈망이 슬픔이었고, 그런 갈망조차 사치스럽게 만든 어미의 신분이 슬픔이었으며, 누군가의 힘에 빌붙어 왕이 된 일 또한 슬픔이었고, 그럼에도 강하고 어진 군왕이 되고자 한 길이 슬픔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깃털처럼 가벼이 하여 날아오를 때까지 내려놓으라 한다. 슬픔은 거기서 비로소 멈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려놓아야 할 사람과 안고 가야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운명’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다른 길’이라 하는 그것 말이다.

아비는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다”라고 선을 그었으나, 그것은 결코 집안일이어선 안 될, 나랏일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아비도 살고, 죽은 아들도 억울하지 않고, 아들의 아들도 살 수 있다. 사도세자의 아비 영조 이금은 자식을 죽일 만큼 전쟁 같은 나날을 살아야 할 만큼, 내려놓을 수 없는 길을 간 군왕이었다. 이런 왕실의 슬픔을 딛고서야 조선이라는 나라는 중흥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였을 것이다. 슬픔은 그러므로 더 깊고 더 촘촘하게 그들 곁을 지배했는지 모른다. 아비의 태생적 한계보다 더 오래된 어떤 한계 말이다.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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