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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색으로 내 몸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옷에 관한 서사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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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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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의 행가래幸家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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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그 삼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요20:7) 부활하신 그분이 굳이 옷까지 개켜 놓고 나올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더 급한 것은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리는 일일 텐데….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요21:7)

베드로의 낙향, 그는 상실감과 함께 전업으로 복귀해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났다. 예수를 발견한 순간, 베드로는 벗어 두었던 겉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다로 뛰어 들려면 입었던 옷도 벗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왜 벗었던 옷을 걸쳐 입었을까?

중동의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온갖 종류의 천을 칭칭 감고 다닌다. 무슨 이유일까? 종교적 제의 때문에? 아니면 사막의 모래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전통의상에 대한 향수?

질문은 끝없다. 왜 식의주나 주식의가 아니고 의식주衣食住여야 할까? 성경에 돈에 관해서보다 2배 이상으로 옷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무려 355번이란다.

연말, 이 중요한 시점에 지금 옷 타령을 하고 있을 땐가? 뭔가 한 해를 정리하는 거대 담론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맞다. 그래서 거대한 옛 제국의 땅, 지금은 지독한 고통의 진원지 시리아로 눈을 돌려보자.

한때는 고대 문명의 요람으로 손꼽히던 땅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가로지르는 유프라테스 강과 팔미라 유적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가진 ‘사막의 진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2300만 민족이 난민 신세가 된 슬픔의 땅이 되었다. 내전의 상흔은 깊고 깊다. 전쟁과 내전, 정치 불안에 시달리고 시달리던 사람들이 북아프리카와 아랍 세계를 탈출해 새 삶을 찾아 작은 배에 가득 가득 올라타 죽음의 항해를 하고 있다.

세 살 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은 그 상징이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큰 슬픔에 잠겼다. 그 어린아이가 죽기 전에 아빠를 걱정하며 했다는 ‘아빠, 제발 죽지 말아요’라는 말 때문에 끝내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아일란은 죽어가면서 어떤 기도를 했을까?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이번에는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가 보자. 1300년에서 1683년까지 소아시아의 미미했던 소공국 오스만은 거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이 되었다. 영토는 아라비아 반도, 남방의 나일 강 상류, 페르시아 만 인접 바스라, 동방의 이란 고원, 서방의 지브롤터 부근,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 초원과 비엔나의 성채까지 뻗어나갔다. 오스만의 영토 확장은 그 영역이 흑해, 에게 해, 지중해, 카스피 해, 홍해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을 때 비로소 끝났다(최성권, 중동의 재조명(한울아카데미).

앙카라의 투르크 족장 오스만OsmānⅠ(1281~1324)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오스만 제국The Osman Turk Empire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 힘이 총 칼이 아닌 의상衣裳, 터번에 있었다고 한다면 믿기라도 할까?
 

터번의 비밀?

전쟁이 잦았던 시절,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를 자신을 위해 터번을 감았다. 적어도 자신에 대한 배려였고 예의였다. 그래서 터번의 크기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몸통의 크기에 비례했다.

그들은 집을 나서며 터번을 두르고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기 전 터번을 풀었다. 터번을 메고 풀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했을까?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페르시아, 로마의 문물로 번성했던 역사를 지닌 땅보다는 아일란 쿠르디의 고향으로 더 많이 기억될 시리아는 5년 전부터 시작된 피의 내전으로 2011년 이후 사망자가 22만 명을 넘었다. 절반 이상이 민간인이었다. 그렇게 생긴 난민이 1160여 만 명. 전체 인구 2300만 명의 절반이다. 이 가운데 400여만 명은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떠났다. 1945년 독립 후 희망에 들떴으나 한순간에 꺾이고 말았다.

또 다시 묻게 된다. 그들은 터번의 의미를 알고나 있었을까? 자기가 입고 있는 군복이 수의壽衣라는 것조차 모르는 개념 없는 군인들이 생각나서다. 사람들은 대부분 죽고 나면 수의를 입는다. 그리고 묘비를 세운다. 하지만 군인에게는 군복이 곧 수의다. 죽음을 입고 있는 셈이다. 거기다 목에 걸려 있는 군번줄(인식표)은 곧 묘비가 된다. 묘비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군인 밖에 없다.

   
 

다시 새겨보는 죽음

사람은 옷을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 옷은 때로 그 사람의 인격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낮고 천한 색이었던 검은색이 정장의 기본이 된 이유도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다. 성경에 이르지 않던가?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골3:12) 수도사들이 그랬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인다’는 의미를 검은색에 담았던 것이다.

이는 다시 계몽주의, 민주주의 시대를 맞아 공公 개념이 생겨나면서 공직자·집사·변호사 등등, 국민이나 주인ㆍ고객을 받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검은색 정장을 입게 되면서 이제는 권위를 나타내는 색으로 변한 것이다. 레스토랑 웨이터나 공직자는 물론 국가수반까지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하는 것은 실용성도 고려되었지만 그보다는 봉사의 의미가 먼저다(신성대, 품격 경영).

크리스마스와 송년파티와 연말연시의 축하 모임이 잦아진 계절이 왔다. 외출을 할 때마다 어떤 옷을 골라 입어야 할지 주저하게도 된다. 터번까지는 몰라도 검은색으로 내 몸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 옷을 꺼내 입기 전에 내 옷을 스스로 다림질해 볼 수는 없을까?

주름진 당신의 시간들을
하나하나 펼쳐본다
꼬깃꼬깃한 셔츠 깃, 소매 자락
고온 열로 쫙-쫙
뜨거운 길을 낸다
하얗게 몽쳐진 옹이가 맺혀있어
스쳐 지나는 그 흔적이 아프다
날을 세운다
빳빳이 깃 날을 세운다
물컹하면 견디기 힘든 세상
물기 젖은 당신의 내일에
자존을 세운다
야무진 내 기도를
함께 눌러둔다. ―김서희


아일란의 말이 귓가를 스친다. ‘제발 죽지 말아요.’ 어느새 아기 예수가 나신 날이 눈앞에 와 있다. CTK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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