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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아, 가라.끔찍한 악마보다 인간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오컬트 영화
이문식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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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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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퍼스트룩

<검은 사제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007>을 눌렀다. 360만이 넘는 관객이 본(11월 16일 현재)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오컬트 영화로서는 쉽지 않은 것이다. 신인 감독인 장재현은 오컬트 영화를 대중적으로 잘 풀어내는 쉽지 않은 재능을 갖춘 감독이다. 곳곳에 유머 코드가 담겨있어 간헐적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캐릭터 배치도 우리에게 익숙한 형사 드라마의 전형을 따라 착한 역할(강동원)과 능구렁이 역할(김윤석)로 조화를 이루었다. 빠른 전개는 마치 스릴러 영화처럼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하였고, 상당한 오락성도 확보하였다. 특히, 이 영화의 원형인 엑소시스트와는 달리, 메시지가 훨씬 더 간결하고 명료하다. 더욱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어, 기존 공포 호러 영화의 음침한 뒷맛이 남지 않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영화를 볼 때 퇴마 과정에 관한 묘사가 성경에 매우 가깝다는 것을 느낌과, 장재현 감독이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면 퇴마를 묘사하고 있는 성경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저항감 없이 충분히 재미를 유발하는 영화이다. 말하자면, <검은 사제들>은 종교적 소재의 한계를 뛰어 넘어 대중성을 잘 확보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신발, 구원에서 멀어진 인간의 비극

일반 호러 물과는 달리 <검은 사제들>은 역설적이게도 끔찍한 악마보다 아름다운 인간을 강조한다. 이 영화에서 끝까지 남는 이미지는 너무도 신예답지 않게 신들린 연기를 아주 잘 표현한 소녀 배우 박소담의 끔찍한 이미지가 아니라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어 내는 최부제(강동원)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최부제는 어린 시절 개에게 공격당해 죽어가는 동생을 버려두고 공포 속에서 도망가 버린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에 대한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연옥을 떠돌고 있는 동생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그의 사제 생활은 일종의 종교적 보속 행위이다. 그 결과 죄책감과 구원이라는 내면의 양극단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최부제이다.

이 영화는 인간 절망을 최부제의 ‘신발’로 상징한다. 최부제는 어린 시절 죽어가는 동생을 두고 도망가다 한 쪽 신발이 벗겨지고 만다. ‘한 쪽 신발’은 공포와 죄책감의 상징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엑소시즘을 행하다가 악마에게 공격당하고 공포 속에 도망하던 최부제는 골목 끄트머리 어둠속에서 자기 동생과 자신의 어린 시절의 절망적인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 때 최부제의 발에는 ‘두 쪽 신발’이 다 벗겨져 있다. 이 장면은 최부제의 절망과 공포와 죄책감을 극대화 하고 있다. 구원에서 멀어진 인간의 비극을 아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검은 사제들>에서 악령은 자신의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으며, 구마자(엑소시스트)들은 구마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악령의 이름을 묻는다. 이 영화의 텍스트 중 하나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누가복음 8장에서(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악령도 여기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예수님도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을 쫓을 때 먼저 그 이름을 물으셨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눅8:30-31)

이 예수님의 물음은 귀신 들린 사람의 정체성과 귀신의 정체성을 분리하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귀신들은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몸의 주인의 정체로 자신을 위장함으로써 그 주변 사람들(가족, 친척, 친구, 이웃)에게 그 관계성을 통하여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귀신들은 원래 사단이 타락할 때 함께 타락한 영으로서 죽은 자의 혼령이 아니다. 이 더러운 귀신 혹은 악한 영들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들어와 그 사람의 가족 혹은 친지 중 먼저 죽은 자의 모습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악령의 영적 속임수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귀신의 이름을 따로 물으신 것은 바로 이 사람과 귀신을 분리하여 귀신만 축출하려는 사전 준비였다.

<검은 사제들>의 구마자들 역시 예수의 엑소시즘의 바로 이 방식을 따라 귀신 들린 사람의 인격과 악령의 존재를 인격적으로 구별하려 한다. 기독교는 인간은 악령과 분리될 수 있고, 분리될 때 구원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구별과 분리, 그리고 분리된 악령에 대한 심판의 과정에서 인간은 구원 받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귀신들은 사람의 몸에서 나와 돼지의 몸에라도 들어가기를 간구한다. 왜 귀신들은 돼지의 몸을 이토록 구걸하는가? 귀신의 근원적 트라우마는 몸의 상실임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악령들의 공포는 몸 상실이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사람의 육체에서 축출한 귀신들의 형편은 ‘광야에서 방랑하는 처량한 신세’로 묘사된다.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을 때에, 그는 쉴 곳을 찾느라고 물 없는 곳을 헤맸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하고, 돌아와서 보니, 그 집은 비어 있고, 말끔히 치워져서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마12:43-45)

몸을 상실한 악령은 한마디로 “나와바리”를 상실한 조폭 신세이다. 악한 힘을 행사할 영역과 대상이 없는 떠돌이 양아치 신세가 된 것이다. 이들이 몸을 차지했을 때 그 악한 영향력을 물리적으로 행사하여 몸의 주인과 가족, 친지, 이웃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육체 상실은 이 모든 것을 상실케 한다. 따라서 한 번 사람의 몸을 떠난 귀신은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인간의 몸에 들어오려고 한다. 그럴 수 없을 때에는 하다못해 돼지의 몸에라도 들어가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과 이 영화에서 돼지는 악마와 악령의 운명을 예고하는 상징이 된다. 성경과 <검은 사제들>에서 악령이 들어간 돼지는 모두 물속에 들어가 죽고 만다.

   
 

돼지와 같은 짐승은 그 육체 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영혼이 없기 때문에 악한 영에 저항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죽음이다. 그리고 이것은 악령의 운명에 대한 예고이다.

한강, 살기 위해 투신하다

<검은 사제들>에서 영신(박소담)은 돼지와 달리 악령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도 육체 안에서 끝까지 그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악령에게 저항하고 투쟁한다. 그래서 자해나 자살을 하지 않는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의 하나는 바로 영신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생명의 존재이다. 악령의 자살 충동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생명의 존엄성을 힘겹게 지켜내는 참된 신앙의 모습을 가장 연약한 존재인 영신을 통하여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귀신 들린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놀라운 인권 선언이다.

최부제는 돼지 속에 들어간 악령을 붙들고 한강으로 간다. 한강에 돼지를 던지기 직전 돼지 몸속에 있던 악령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또한 영신처럼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 악령과 투쟁한다. 그리고 악령에 사로잡혀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악령을 육체로부터 축출하기 위하여 한강에 투신한다.

여기서 이 영화를 보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행위를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요단강에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심으로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신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다. 돼지 떼가 달려 들어가 몰살한 갈릴리 호수는 파라오와 그 군대가 몰살한 애굽의 홍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장소이다. 한강과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는 새로운 출애굽의 장소-홍해이다. 이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정화-세례 의식과 같다.

이 영화 속에서 강물에 빠졌던 최부제가 죽지 않고 다시 한강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은 아주 유쾌하고 밝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신발 두 짝을 다 벗고 맨발로 귀신에게 도망치던 절망적인 최부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여전히 맨발이지만 당당하게 밝은 모습으로 한강에서 올라오는 최부제의 모습은 마치 렘브란트 그림의 중심처럼 은총의 빛으로 환하게 빛난다. 이것은 그의 절망과 좌절과 죄책감의 상징이 한강에서의 세례로 인하여 다 벗겨지고 씻겨 새로운 희망과 구원의 존재로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검은 사제들>은 한국 영화사에서 <밀양> 이후로 가장 종교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기독교적 메시지나 이미지 상징들이 아주 탁월하게 배치되어 있다. 종교적 메시지가 상징 또는 성례전을 통하여 은유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비종교적인 대중들에게도 별로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있고 바로 거기에서 구원의 소망을 아주 밝고 긍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나오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도 바로 이 풍성한 종교적 휴머니즘에 있을 것이다. CTK 2015:12

이문식 광교산울교회 목사. CTK에 이 어어령을 따라 떠나는 영성 문학 순례 등 여러 편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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