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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다른 이름, 생각하는 신앙오랜 전 연애편지를 다시 읽다
정지영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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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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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박영선 지음  
   포이에마  

 

 


 






랫동안 절판되었던 책이 새로운 편집자와 만나 전면 개정판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와 반갑다. 존경받는 저자와 탁월한 실력을 갖춘 출판사의 조합이니 더욱 그렇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 책을 마주하는데, 오래전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내가 지고 있던 시절 밤새 썼던 연애편지를 다음날 아침 다시 읽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는다. 애틋하고 아련하고 오글거리고 이게 뭔가 싶은….

박영선 목사는 용광로 같다. 어떤 사상이나 개념도 그 안에 들어가면 철저히 녹아 없어져 전혀 새로운 무엇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거기에 어떤 성경 본문을 만나든 철저하게 자신의 장으로 수렴시켜 자신의 독특한 시각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놀라운 해석의 힘에, 탁월한 수사와 감화력까지 갖췄다. 모든 게 여전하다.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지난 30년 동안 그의 책을 꾸준히 (그리고 여전히) 찾은 이유가 이것일 게다. 나 또한 그랬다. 평신도로서의 20대와 신학도로서의 30대를 그와 함께 보냈다.

초판 당시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 교회 안 신학의 삶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진단한다. “신학이란 영역은 열심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선 분명 하나의 유혹 거리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과 신앙의 궁극적 자리에 이르게 해줄 비밀 열쇠를 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신학은 오히려 신앙을 메마르게 하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마치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다.” 이 같은 진단이 지금도 유효할까? 그런 거 같다. 현대를 “교회 안에 진리를 위한 자리”가 없어진 “신학 실종”의 시대로 규정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드높아 오히려 신학 과잉 시대를 염려해야 할 판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아니, 신학들이 넘쳐남에 따라 우리의 삶을 ‘어떤 신학’에 투신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점에서 저자가 핏대를 세워가며 말하는 신학, 곧 생각하는 신앙은 더 적실성을 갖는 듯하다.

그러나 설레던 마음은 페이지를 넘기며 반복되는 질문으로 바뀐다. “그런가?” “정말 그럴까?” 계속 읽어 가지만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듣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질문이 켜켜이 쌓인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 제목을 버리고 ‘생각하는 신앙’이란 새 이름을 달아 준 것은 참 잘 했다 싶다. 새로운 제목이 저자의 평소 사상과 이 책의 목적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책이 처음 나왔던 당시와 달리 너무나 좋은 신학 입문서들이 평신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하게 만들고 생각을 자극하는 책이라는 의미에서 분명 이 책은 누군가에게 좋은 책, 사연을 담은 책이 될 것이다. 오래전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CTK  2015:12

정지영 IVP 편집2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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