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힘겨운 목회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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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힘겨운 목회자들에게...
  • 리 이클로브 | Lee Eclov
  • 승인 2020.0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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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잊어라. 목사는 불가능 속에서 성공을 발견하는 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명작 영화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에서 허먼 분 코치는 뿌리 깊게 분열되어 있는 한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을 맡는다.

8월의 땡볕 아래 힘든 2주간의 훈련캠프를 통해 그 팀을 챔피언으로 만들어 나간다. 고된 훈련을 함께 견디며 선수들은 하나의 팀으로 거듭난다.

헤드기어와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고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줄지어 서있는 선수들을 상상해 보라.

카메라가 코치를 따라가면서 줄지은 선수들을 끝에서 끝으로 훑고 지날 때, 선수들은 전방을 노려보며 제자리에서 힘겹게 뛰고 있다. 코치가 소리쳐 묻는다. “

니들이 뭐라구?” 선수들이 소리쳐 대답한다. “번개돌이! 날쌘돌이! 싸움돌이!” 코치가 다시 소리친다.

“니들에게 고통이란 뭐라구?” 선수들도 다시 소리친다. “꿀맛 나는 식사!” 코치가 다시 묻는다. “피곤함은 뭐야?” 선수들이 대답한다. “멋진 유니폼!” 끝으로 코치는 목청껏 소리쳐 묻는다. “이제 그만 할까?” 선수들이 악을 쓴다. “아직 더, 아직 더, 아직 더!”

나는 신학교에서 이런 훈련을 해보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정말이지 더는 원치 않는 목사들이 많이 있다. 고통과 피로와 온갖 시련들이 우리로 하여금 잠시라도 여기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만들었다. 지역교회 목사로 시작한 이들 중 단지 10퍼센트만이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게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나머지 90퍼센트 모두가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었거나 실패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조사를 보면 목사들 중 50퍼센트가 낙담한 나머지 기회만 있으면 목사직을 버리고 떠나려 한다.

나는 목사직을 좋아하고 은혜로운 교회를 섬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힘겨운 직업이다. 나는 35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기에 누군가 이런 말을 할 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교회에서 받은 상처만큼 아픈 것이 없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목사들

나는 내가 알고 지내는 모든 경험 많은 목사들이 목회 과정에서 한 두 번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트레비스 콜린스는 「목회를 이제 막 시작하거나 그만 두려는 목사들을 위하여」에서 “목회자들 가운데 75퍼센트가 목회사역의 어느 지점에선가 고뇌, 근심, 혼란, 분노, 막막함, 두려움, 소외감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쓰고 있다.

한 계절 동안 목회를 쉬고 있던 어떤 친구는 자기 교회 장로들 중 하나가 자신에게 “내게는 목사님보다 애완견이 더 소중합니다”라고 실제로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이 그에게 목회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우리 목사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회인생을 바친 순교자에 가까운 이들이 있다. 때로 목사들이 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알지만, 최고의 목사에게조차 ‘양떼를 지키는 일’은 정말로 위험한 일이다. 모세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다윗이나 예레미야에게도 물어보라. 베드로, 바울, 디모데, 요한, 그리고 예수님께도 물어보라. 수많은 목사들이 천국의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이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다. “오!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낙심과 경계와 소진

목회 트라우마는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지만, 목회 피로는 그렇지 않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9에서 모든 신앙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어느 한 교회를 지키고 있는 목자에게 그것은 무리한 요구다. 바울도 그것을 알았다. 피로는 사방에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정서적 소진 때문에 우리의 피로는 커져가고 있다. 우리의 양떼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8-29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엘리스 피터스는 그녀의 추리소설 ‘캐드펠 시리즈’ 중 「어둠 속의 갈가마귀」에서 존경받았던 수도사 아담 신부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슬픔과 친절함을 가진 남자. 지쳐 있음에도 죄인들을 향한 연민을 가진 남자.”

작가는 그가 “17년 동안이나 인간들의 반복되는 실패를 견디고 있기에 슬픔을 가진 남자”라고 했으며, “특히 어떠한 악의나 분노도 없이, 예순에 이를 때까지 자신에게서 쉴 새 없이 위로와 책망과 용서를 퍼 올렸기 때문에 지친 남자”라고 했다.

또한 “인간의 오류가능성이 밀물처럼 압도해 오는 순간에서조차 연민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텨냈기에 친절함을 가진 남자”라고 했다.

모든 목사들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하나님은 주무시고 계신다.”

우리는 자신을 소진시켜 뭔가 굉장한 일을 만들려고 한다. 소금의 역할을 하려는 모든 목사들은, 어려운 일들을 시작하고, 목이 쉬도록 교회를 신나게 이끌려 하고, 큰 계획의 작은 빈틈들을 메우려 노력한다.

그저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나이가 들지만, 아주 특별한 일에 도전하면 훨씬 나이를 먹는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스태프를 찾아 팀을 구성하고, 전략을 기획하는 일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일이다.

내가 이전에 몸담았던 교회를 떠나온 이유는 또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지만, 내가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범하고 불충분한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목회사역에는 우리를 활력 있게 만들어 줄 매력적인 요소들이 분명히 있지만, 또한 쉽게 다가오지 않는 중요한 일도 있다. 머지않아 그러한 불충분함이 교회에 부담을 주기 시작한다.

만일 우리가 일을 할 때 치밀함이 부족하다면 사람들은 뭔가 빠져 있음을 느끼고 실망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최선을 다해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중이 따분하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다른 설교자를 찾기 시작한다.

한 친구가 자기 교인들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한 목사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목사는 결국 교회 리더들에 의해 밀려 났는데, 그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는 몸서리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롤 모델이 되려고 힘겹게 노력한다. 바울은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고백컨대 나는 때때로 롤 모델 노릇하는 데 지친다. 몇 년 전 아주 힘겨운 시기를 거치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왜 여기서 나는 늘 남에게 모범이 되어야만 하지? 이들 중 누군가 잠시라도 나대신 롤 모델을 해 줄 수 없는 건가?’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때때로 내 자신 안에 이런 마음이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회중 앞에 서기 전에 설교하려는 성경구절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고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를 가늠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심으로 그것을 설교할 수 없다.

얼마 전에 야고보서 전체를 설교한 적이 있었다. 야보고서의 지독히도 엄밀한 태도에 나는 거의 죽을 것만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쳐 겸손하게 하셨고 당신이 약속하신 바대로 은혜를 주셨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압박은 우리의 영적 진실성에 위험하다. 너무 조심성이 많아져서 우리가 사랑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을 경계하게 된다. 목사직을 배우처럼 연기하도록 유혹받아 목사처럼 말하고 거룩한 것을 다룰 때 마치 성령의 불길이 꺼져버린 듯 행동하게 된다.

우리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은 첫 번째 우선순위에 놓일 만큼 중요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이러한 어려움이 아무도 모르게 방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지켜보시다가 부상병들을 위해 의무대를 파병하셨다. 치유자들은 다정하게 상담과 휴가, 기도, 참고도서, 도움 글을 제공한다. 목회는 비록 고독할지라도 요청하기만 하면 목사들은 얼마든지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있다.

몇 해 전, 자신도 역시 카운슬러인 우리 교회의 한 장로가 내 사무실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가 말했다. “목사님, 요즘 표정이 어둡고 화도 나신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습니다.” 나는 정말 그랬다.  [전문 보기: 외롭고 힘겨운 일 가운데서도]

 


리 이클로브 일리노이 링컨셔에 위치한 빌리지 교회Village Church 목사

Lee Eclov, “In it for the long haul” Leadership Journal 2015 여름; CTK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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