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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꾸중의 의미꾸중 듣는 자는 '복'이 있나니➀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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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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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내가 처음부터 목회를 잘한다고 여겼다. 그건 교만 탓이었으리라.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던 아주 멋진 일을 선포했다. 교회 예산을 훨씬 웃도는, 6000달러가 더 필요한 선교 사업이었다. 한 달 안에 헌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며 미리 감사의 말도 덧붙였다.

이런 게 비전 제시자가 하는 일이다, 교인들도 이런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었던 터였다.

월요일 저녁, 나는 교회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면서 나의 과감한 리더십으로 칭찬을 들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위원장이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우리 교회가 아버지로 여기며 존경하는 일흔다섯의 어니스트 크로스트의 이름을 부르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적잖이 당황했다.

“크로스트님이 하실 말씀이 있습니다.” 위원장이 말했다.

“고든 형제님, 형제님을 꾸짖을 일이 있습니다.”

나는 숨을 죽이며 크로스트의 말을 들었다. “형제님은 어제 예배 시간에 발표했던 선교 사업을 중요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와 먼저 상의하지 않은 일로 교인들에게 헌금을 요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형제님의 지도에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처럼 깜짝쇼를 하면 형제님의 지도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정해진 예산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예산을 증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형제님 혼자 독단적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업에는 예산 증액에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그 후로 독단적인 비전 제시자 노릇은 그만두었다.

나는 열여섯 살 때 육상부 코치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너는 쉽게 배울 수 있는 걸 왜 이렇게 힘들게 배우니.” 이길 수 있는 시합이었다. 하지만 나는 코치의 말을 듣지 않아 시합에서 지고 말았다. 그날 나는 경기장을 나서면서 단단히 결심했다. “앞으로는 쉽게 배울 수 있는 걸 힘들게 배우지 않겠다.”

불행하게도 실수는 계속됐다. 내 인생은 아버지, 선생님들, 친구들, 비평가들, 교인들의 꾸중으로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꾸중은 내 성품을 단련하고 행동을 연마했다. 하지만 모든 꾸중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진짜 꾸중이란
일반적으로 말해 꾸중이란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이나 태도를 지적하고 그가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돕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정반대 일이 자주 발생한다. 나는 내 의도나 인격, 신학, 정치적 견해를 몰인정하게 의심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는 상냥했지만 뒤에서는 비난했다. 이런 것은 꾸중이 아니다.

꾸중이란 그런 게 아니다. 진짜 꾸중은 고귀한 소통 방식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엡4:15)을 말하여 상대방이 성장하고 유능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꾸지람은 종종 거칠었다.

사무엘이 사울을 꾸짖는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셨습니다. 주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임금님이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명령을 어기지 않으셨더라면, 임금님과 임금님의 자손이 언제까지나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주님께서 영원토록 굳게 세워 주셨을 것입니다.”(삼상13:13-14)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를 꾸짖으신다.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16:23)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꾸짖는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젖을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고전3:1-2)

모든 사람이 꾸중 듣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예언자 미가야만 만나면 위축됐던 아합 왕은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왕상22:8)라고 했다.

나는 싫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리더, 낙관적이고 기분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 리더들이 걱정스럽다. 그런 리더는 머잖아 무력하게 변한다.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훌륭한 꾸중이다. 꾸중하는 이는 거침없이 말하고, 꾸중을 듣는 이는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한다. 함부로 지껄이는 것은 좋은 꾸지람이 아니다. 훌륭한 꾸중이란 깊은 생각 끝에 나오는 것이다. 기도, 때로는 눈물 없이는 좋은 꾸중도 없다. 사람을 쉽게 꾸짖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할 것이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꾸중은 하나님이 우는소리를 하는 욥에게 반대 심문 형식으로 하신 것으로, 욥은 하나님이 펼치시는 우주를 두루 목격한 후 하나님의 요점을 이해하고 꾸지람을 받아들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욥42:3-6)

꾸중을 듣는 이의 자세로 욥보다 나은 자세는 없다.

1722년 11월 22일, 조나단 에드워즈는 일기를 펼치고 꾸지람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구경꾼들이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결점을 늘 찾아낸다는 걸 생각하면…우리 안에서는, 남들에게는 보이는데 우리에게는 보지 않는 은밀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듯하다. 어떻게 해서든 남들이 보기에 꾸짖을 만하고, 무례하고, 불쾌한 결점이 내게 없는지 알아내야겠다.”

나의 영웅인 19세기의 성공회 신부 찰스 시미언은 쉽게 고치지 못했던 약점이 있었는데 가까운 친구가 그것을 지적했다. 이튿날 시미언은 스승 헨리 벤에게 편지를 썼다.

“신실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사탄은 늘 우리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늘어놓지요. 하지만 그런 소리를 잠재우고 나의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신실한 친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교는 스스로 신으로 자처하는 것인 듯합니다. 이기심과 탐욕과 독립심에 젖어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워 우리가 빼앗은 하나님의 권위를 하나님께 돌려드리게 하는 그 친구야말로 가장 소중한 친구입니다.”

꾸중의 목적은 영적 통찰이나 성품이나 능력을 계발하거나, 파괴적이거나 저열한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리더십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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