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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중은 '보약'이다꾸중 듣는 자는 복이 있나니 ➁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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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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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과도 같은 꾸중
신학생 시절 나는 교수와 신학생들이 모이는 특별한 포럼에서 발제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버릇처럼 마감일이 다가올 때까지 발제문 작성을 미루다가 이틀 동안 수업에 빠지고 발제문을 완성했다. 발제를 마쳤을 때 청중은 박수를 보내고 모임을 파했다. 발제문을 쓰느라 빠진 수업의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고든, 좋은 논문이었네. 하지만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네. 이유를 알고 싶나?”

나는 알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논문을 쓰기 위해 날마다 해야할 책임을 저버렸네. 이게 습관이 되면 자네는 목회자로서 실패할 걸세.”

이런 통찰은 잘 들어야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마흔이나 많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의 말이니까. 그는 글의 내용보다 그 글을 담고 있는 성품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가 쓴 발제문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나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드러난 나의 일하는 습관은 내가 고치지 않는 한 평생 지속될 터였다.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선생님의 꾸중을 듣고 나의 노동 윤리를 바꾸었다.

목회 초기에 나는 월요일 아침이면 교회 위원장을 만나 사역에 대한 견해와 조언을 구했다. 그런 만남은 좋았다. 나쁜 것은 그가 보거나 들었던 불쾌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가 반발했다는 것이다(내 안에 아합이 있었던 걸까).

한번은 내가 위원장의 말에 골을 냈더니 그는 탁자 위로 바짝 다가와 말했다.
“목사님, 과민반응을 보이시는데, 그런 건 속히 고치세요. 우리는 지금 목사님이나 우리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사역을 더 발전시킬 길을 찾고 있는 겁니다. 토론할 때는 토론에 감정을 주입하지 마세요.”

이런 꾸중은 잘 들어야 한다! 나의 미래 전체가 내 눈앞에서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갑자기 그는 나와 내 꿈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성품의 문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는 보물과도 같은 통찰을 건넸다. 나는 지금도 아내, 친구, 동료, 적 들이 내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면 그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지인을 두고 험담을 했다가 그 말을 전해들은 영적 멘토에게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고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형제를 험담하지 않아.”

나는 칼에 찔린 듯 아팠다. 고통은 깊었지만 그의 말이 옳았다. 지금도 험담을 하고 싶어질 때면 스승의 말이 벼락처럼 내리친다.

중요한 사람들의 꾸중
아내는 나를 꾸중하는 팀의 1군 선수다.
“당신은 설교 예화로 성공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만 한다는 거 몰라? 당신이 말하는 기업가들은 하나같이 능력이 좋든가 인맥이 좋고, 학자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고, 운동선수들은 죄다 세계기록 보유자고, 조직은 전부 최대야. 최고, 최고, 최고만 등장한다고! 당신은 성공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 않은지 곰곰 헤아려봐.”

내가 결혼하기 일주일 전에 멘토가 했던 말이 있다. “자네의 아내는 하나님이 자네에게 주시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네. 자네가 귀를 열면 하나님은 아내를 통해 자네에게 진실을 말씀하실 걸세. 하지만 자네가 귀를 닫으면 아내는 자네가 그런 은사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입을 다물 걸세.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자네야.”

멘토가 옳았다.

설교 예화로 아내의 꾸중을 들은 며칠 후 나는 마릴린의 꾸중을 다시 들었다. 그녀는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약을 복용했던 탓에 늘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나를 꾸중한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무례할까. 그녀는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교우였다.

나는 교회 로비에서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릴린이 로비로 들어왔다. 나는 그녀를 보고 “안녕하세요, 마릴린. 잘 지냈어요?” 하고 인사했다. 그러고는 급히 몸을 돌렸다. 나는 마릴린이 지나가길 바라며 그 사람과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나가지 않았다. 지나가기는커녕 내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는 약에 취해 느릿느릿 말했다. “맥 목사님, 목사님은 저한테 ‘안녕하세요, 마릴린. 잘 지냈어요?’라고 인사했지만 사실 제가 잘 지내는지 관심이 없으시잖아요. 나 같은 사람은 만날 시간이 없으니까요. 목사님은 중요한 사람하고만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그날 나는 대형 교회에서 목회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나는 큰 교회의 목사 노릇을 하지만 교인들의 90%는 몇 주 전에 선약을 하지 않으면 나를 개인적으로 만날 수가 없었다. 마릴린의 꾸지람은 그런 사실을 아프게 꼬집었다.

마릴린이 옳았다. 나는 그녀가 잘 지내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런 관심도 없었다. 나는 목회하느라 바빠서 ‘평범한’ 교인들은 만날 시간이 없었다.

아내와 마릴린은 꾸지람의 원투펀치를 날렸다.

하루는 뉴욕시에서 노숙자의 꾸중도 들었다. 그는 맨해튼에 있는 우리 교회 건물 옆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 모습에 짜증이 났다. “이봐요, 쓰레기통을 다 뒤지고 나면 주변 정리를 하고 뚜껑도 꼭 닫으세요.” 그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나는 그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공손하게 부탁하면 말씀하신 대로 하겠소.”

공손하게 부탁하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내 말에서 짜증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이 끝나면 주변 정리를 꼭 부탁드립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죠.”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이런 꾸중들은 내 마음에 계속 남아서 비슷한 경우가 생길 때마다 나를 채근한다. 나는 모든 꾸지람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 이름들은 진실을 직시하라고 채근하는,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리더십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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