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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할 때와 물러나 있어야 할 때의 기준고든 맥도날드의 정치의 계절 ②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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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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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을 흔들어야 할까
나는 전통적 근본주의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다.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요. 나는 나그네라네”라는 노래는 우리를 대표할 법한 찬양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신앙 공동체는 비교적 공적 문제에 무관심했다. 관심을 두는 문제는 가정이나 개인 윤리에 관한 것 정도였다. 그 외의 모든 문제는 ‘세상 일’로 치부했다. 결국 나는 목사가 다뤄야 할 공적 문제를 가려내는 데 매우 서툴렀다.

신학교 시절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주말이면 캔자스주 북서부에 있는 작은 시골 교회를 섬겼는데 처음 설교할 당시 민주당의 린든 존슨과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가 대통령 후보로 맞붙고 있었다. 나는 공화당에서 탈당하고 민주당원들과 어울렸고 차 후면에는 존슨 지지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결국 골드워터를 압도적으로 지지할 캔자스주 시골 마을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니! 용감했던 것일까, 어리석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골드워터 편이었던 아버지는 내 존슨 스티커를 보며 늘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복음을 전할 때 몇몇 사람은 귀를 막게 할 참이냐?”

나는 아버지의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하게 나설 때와 지혜롭게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내 의식의 차원을 한층 더 넓히는 매우 훌륭한 물음이었다. 사실 내가 캔자스주 시골 마을로 간 것은 린든 존슨 후보를 유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주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차에 붙인 스티커를 떼어냈다. 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 때문에 교회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생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 문제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믿는 바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믿는 바를 자유롭게 주장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믿는 바를 말한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스도를 좇는 일은 늘 정치, 사회,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목사로서 이런 문제에 관해 언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학 교수처럼 종신재직권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열성분자처럼 허세를 부릴 용기도 없었다. 나는 목사로서 사람들과 어울려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을 좋아할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논쟁의 소지가 있는 문제에 뛰어들어 내 입장을 밝히거나 행동할 때와 가만히 물러나 있을 때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답을 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지키는 너그러운 원칙…혹은 주관적 판단을 소개한다.

   
 

내가 (지금) 지키는 원칙
나는 무엇보다 성경의 가르침, 역사적 선례(내가 몸소 선별한 믿음의 영웅들에게 배운 통찰), 간절한 기도, 몇몇 믿을 만한 친구의 지혜를 한데 모았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스스로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중요한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다.'
나는 싸움닭 체질도 아니고 정치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논쟁을 잘하는 편도 아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곤란한 물음을 던지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 순종하라고 사람들을 깨우치는 영적 아비 즉 '천생' 목사다. 내 주변에는―가까운 친구들 중에도―정치적 논쟁에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능력이자 사명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니다.


둘째, 나는 성경이 앞세우는 주제와 실용적이든 정치적이든 그 주제에 함축된 의미를 검토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웃을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는 흔히 다른 가능성이 있는 수많은 성경구절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겨우 두세 구절을 바탕으로 만든 신조를 믿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에게 약자와 빈민을 사랑하는 일과 힘없는 사람을 위한 정의와 같은 문제들은 양심 그 이상의 문제다. 지구를 돌보는 문제에는 무관심한 채 창조 교리를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를 무책임하게 쓰는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좇는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까? 성경은 장장이 이런 말씀을 빠뜨리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셋째 원칙은 '경청하는 자세'다. 상대방의 말을 다 들을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고 끝까지 귀를 기울이는 것. 이것은 훈련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경청하는 태도를 배우지 못했다. 나는 이 원칙을 지키면서 성품이 자라고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경청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대화를 진실하게 이끈다.

넷째, 나는 이념의 덫으로부터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보수파든 진보파든 그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와 정책은 훌륭한 것이 많다. 성경이 전하는 하나님은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니시다. 성경의 길은 우파나 좌파의 의제 따위로 축소될 수 없다.

다섯째, 나는 내가 찬성할 수 없는 사람들과 싸우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의견을 비판하는 것과 그 의견을 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것은 내가 자주 실패하는 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독교 대변인으로 자처하는 아주 많은 사람의 오만과 독선 탓에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그들의 비열하고 과격한 언동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세상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인자하고 자비롭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노엽고 승부욕이 강하고 냉담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 우리를 이런 사람으로 여기는데 예수님이 능히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우리의 고귀한 메시지를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가슴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세 가지(겨우 세 가지!) 문제를 신중하게 결정했다. 즉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 인종 화해 문제, 환경 문제다.

리더가 되면 수많은 문제에 관여하면서 고상한 명분을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사명 즉 양들의 영혼을 보살피고 그들이 예수님을 좇는 양들이 되도록 하는 일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제자도를 정치적인 면에서 설명하기도 하지만 목회 외적으로 오랜 시간 광범위하게 열정을 쏟아야 하는 문제라면 목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몫일 듯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복음을 정치와 사회 문제에 적용하는 일에 무관심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친구와 교인을 잃게 될 처지에서 몇 차례나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생명은 신성하므로 낙태에 반대한다고 말하면 나는 영웅이 되지만, 생명은 신성하다는 원칙을 사형제도에 적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걸려 죽는 어린이가 하루에 2만 7000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들먹이면 영웅 자격을 박탈당한다.

동성애 결혼에 반대하는 설교는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통계를 바탕으로 우리 교회도 세상과 마찬가지로 가정 폭력과 이혼에 병들어있다고 꼬집는 설교는 반응이 차갑다.

내가 내 ‘뿌리’라고 여기는 전통에 가장 크게 실망하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인색하다는 것이다. 낯설고 불안한 발언에는 덮어놓고 반대부터 한다.

선지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지 정부를 두둔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라”는 퀘이커의 전통적 표현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정중하게 나누기는커녕 꼬리표와 분파, 비방으로 서로를 때리고 할퀴기에 바쁘다면 우리가 정치와 사회 권력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전문 보기 : 몸의 정치(말할 때와 침북할 때)]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는 <리더십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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