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벽에 부딪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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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벽에 부딪쳤구나!"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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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짧은 질문 하나로 내 삶의 틀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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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톤 주자들은 달리다가 온 몸의 힘이 고갈되어 더 이상 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벽에 부딪혔다”hitting the wall고 말한다.

목회 4년차에 접어든 어느 토요일 아침에 나도 이 표현에 걸맞은 경험을 했다. 영적으로 고갈되고, 온 몸의 기운이 소진되었으며, 정신적으로도 무너진 상태가 된 것이다. 그날의 내 일과는 오전 5시 30분에 시작되었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겠다고 하고 곧장 교회로 향하면서 아내 게일에게 말했다.

“사무실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일 설교가 두 번 있는데 뭘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 마감 시간을 놓친 원고도 끝내야하고,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프로그램을 맡은 사역자 둘이 오늘 오후에 나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더군.”

그 즈음에 게일은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게일이 작정이라도 한 듯 나를 향해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 언제인지 알기나 해요?”

사실 지난 몇 주간 아내는 내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할 말이 많았을 텐데 고맙게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이 워낙 바빴고, 그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한다는 사람들과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이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노숙자 장례식을 두 번이나 집례 했다. 그들의 허무한 삶과 죽음을 보면서 내 마음이 몹시 아팠다.

또 누군가가 내게 책을 보냈는데 그 책에는 내가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는 신학적 질문들이 들어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또 나 자신의 지적 위기감으로 인해 나는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잠도 부족하고 자신감도 흔들리던 차에 가족에 대한 헌신과 약속에 대한 부담감이 더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가족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멀쩡한 척 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게일은 내가 생각지도 않던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고든,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 언제인지 알기나 해요?”

아내의 이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비로소 나는 내가 벽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좌절감이 응축된 눈물이었다. 거실로 가서 바닥에 무너져 내리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지혜롭게도 게일은 아이들을 이웃집에 보냈다. 그러고는 무려 네 시간이나 쭉 내 팔을 붙잡은 채 거실에 함께 있었다. 울게 놔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정화되는 동안 그저 함께 있음으로써 나를 향한 그녀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내게 상기시켰다.

그 일이 있고 거의 오십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그날 아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신기하게도 그날의 일은 내가 삶 속에서 경험한 영적 체험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나를 변화시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날 아침 내가 무수히 반복했던 질문이다. 내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나? 아니면 흔히 말하는 영적 방전 상태인가? 왜 누구도 내게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내가 납득할만한 방법으로 귀띔이라도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이런 한계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 다른 리더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 후 나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물론 남자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는 특성을 고려해서) 내가 그날처럼 눈물을 펑펑 쏟는 일이 전에는 없었다는 것을 은연중 강조했다.

여하튼 그날 나는 뜻밖의 일을 겪은 후 모든 일정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갖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만일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역을 계속한다면, 나는 앞으로 남은 40년 이상을 건강한 목회자로 지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 아침 처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타고난 목사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목사가 되기 원했다. 내 아버지도 목사였다. 나는 아버지처럼 성경말씀을 전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태어날 때부터 목회자의 삶을 좋아한 셈이다.

아버지는 교회를 이끌어가는 거의 모든 방법을 내게 가르쳤다. 또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사교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당면 문제를 빨리 파악하고, 논점과 문제를 다각도로 파악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나는 타고난 아이디어맨이었고, 남다른 통찰력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비전을 품게 하는 설득력을 지녔다. 이러한 재능은 후에 내가 목회를 할 때 큰 힘을 발휘했다. 선천적으로 이러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 삶의 경험을 통해서나 멘토나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획득한다. 어쨌든 내가 지닌 재능들은 내가 목회를 일찍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또 목회자가 되어서도 지니지 못한 것들을 솔직히 털어놓고자 한다. 시편 139편에서 시인이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지녔던 영적 통찰이 내겐 없었다.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영성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처럼 성령의 속삭임에 잠잠히 순종하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 나는 예수님의 여러 가지 주요한 가르침에 동화되어 바울처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열정을 갖지 못했다. 바나바처럼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는 겸손의 영성도 내겐 없었다. 이러한 영성은 삶과 리더십이라는 현실 속에서 직접 쓴 맛을 경험해야만 일부 배울 수 있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했을 때, 교인 수가 수백 명에 달하는 미드웨스트에 있는 어느 교회가 나를 목회자로 초빙했다. 게일과 함께 교회 사택으로 이사를 할 때 나는 겨우 스물일곱 살이었다. 부임 후 처음 몇 년은 만사가 순조로워 보였다. 물론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내가 젊은 나이에 그처럼 성공적인 목회를 하게 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게일은 영적으로도 삶에서도 최선을 다해 목회자인 나를 도왔다. 아내 게일의 성숙함과 통찰력 덕분에 나는 수없이 많은 판단착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던 사역자가 목회자로서 심각한 몇 가지 실수를 했다. 사실 나도 거의 동일한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교인들은 내게 호의와 사랑을 베풀었다.

내 자랑을 하거나 자기과시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역이라는 것이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공동체에 그럴듯한 비전을 제시하고, 교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전부라면 나는 이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 우리 모두에겐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러나 목회란 타고난 재능만으로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재능의 덕을 보겠지만 한계가 곧 드러난다. 타고난 재능만으로 목회를 하는 사람들도 영적 깊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알곡과 가라지처럼, 어느 순간 타고난 재능과 진정한 영적 성숙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 때는 이미 늦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그 아침, 텅 빈 우리 집 거실 바닥을 내 인생의 경계표로 삼았다. 아마 성경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에겐 타고난 재능과 카리스마가 넘쳤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 지혜와 능력, 또 그리스도를 닮은 내면 세계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정오가 다 되어서야 나는 지쳐서 더 이상 울 수 없게 되었다. 게일은 나를 혼자 있도록 배려하면서 그날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오후 내내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전문 보기 : 아, 내가 벽에 부딪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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