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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유쾌하게, 신나게 다시 사신 예수를 보이다
김희돈  |  don@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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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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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Risen, 2016년
감독: 케빈 레이놀즈
출연: 조셉 파인즈, 톰 펠톤, 피터 퍼스, 클리프 커티스

   
사진: 홀리가든

한 긴장…. 격렬하며 숨 가쁘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예루살렘은 그렇게 불안정했다. 예수를 죽이면 끝이라 여겼던 유대교 지도자들도, 그들의 청에 못 이겨 예수를 내어 준 로마 관원들도, 그리고 예수를 추종했던 제자들과 무리들도. 메시아를 죽인 세상은 온통 흙먼지와 핏빛, 악취뿐이었다. 생사를 오가는 비극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었고 메시아를 잃은 인생들의 아우성도 이어졌다. 예수는 죽었지만, 혼돈은 잦아들지 않았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둘러싼 당시 군상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처럼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사실적,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 당시 그 혼돈의 자리를 충분히 목도할 수 있다. ‘무엇을 보여주는가’ 만큼 중요한 게 있다면, 아니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관점’이 아닐까. 누구의 눈으로 현장과 사건을 보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실체의 무게는 분명 다르다. 영화 부활의 ‘눈’은 유대교 지도자도, 제자도, 예수의 가족의 것도 아니다.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지만 ‘직책’ 때문에 그의 죽음과 부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관여해야만 했던 한 남자의 눈이다. 그는 로마의 호민관 클라비우스다.

당시 클라비우스라는 호민관이 실재했는지는 정확치 않다. 하지만 성경에는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게 한 로마인이 실재했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총괄하고 처리한 로마 측 실무자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감독은 바로 그 사람을 호민관 클라비우스라고 정했다. 여기서 제작자의 상당히 타당한 상상력이 엿보인다. 가장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현장을 비출 수 있는 적절한 인물로 그를 세운 것이다. 호민관은 군사적인 문제를 처리하거나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로마의 관직으로서, 빌라도 총독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 예수의 부활에 노심초사하는 유대 지도자들과 연일 소동을 일으키는 피지배인들 사이에서 질서를 지킬 방안에만 몰두했던 관리였다. 그래서 영화는 더 사실적이며 보편적인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당시의 현장을 구석구석 비춘다.

   
 

예수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하고, 또 확인 사살까지 지시한 그였기에 부활은 가당치도 않은, 황당한 이야기였다. 무덤 문이 열리고 예수의 시신이 사라지자, 광신도의 짓이라며 다급히 시신을 찾아 나선다. 예수의 추종자들을 수색하고 제자들을 찾아내 시체의 행방을 심문한다. 그 과정에서 호민관은 비로소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예수의 부활을 둘러싼 거짓과 모략을 하나하나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를 만난다.

이 영화의 최대 반전은 호민관이 다시 살아난 예수를 만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영화의 흐름이 180도 달라진다. 예수의 시체를 찾으려는 이들과 예수를 만난 이들의 극한 대조가 평행선을 긋는다. 여전히 계속되는 긴장과 위기를 압도하는, 평안과 즐거움이 영화 후반부를 이끈다. 어느새 영화는 유쾌하고 즐겁다. 부활한 예수가 그러했고 그를 만난 제자들이 그랬다. 제자들의 주님은 여전히 그들을 아꼈고 극진히 사랑했다. 병자를 돌보았고 제자들의 주린 배를 채웠다. 이 모든 모습들이 호민관 클라비우스의 눈을 통해 비췬다. 결국 호민관은 나를, 우리 각각의 자아를 대신한다. 예수를 전혀 몰랐고 관심조차 없었던 인생, 심지어 예수를 죽이기까지 한 죄인, 그리고 부활한 예수를 만나 삶이 바뀌어버린 존재…. 호민관은 쫓는 자에서 로마에 쫓기는 신분으로 전락하지만, 예수와 그의 제자들처럼 유쾌한 여정에 오른다.

부활은 크게 두 가지를 말한다. 먼저, 부활은 ‘축제’다. 참 좋은 친구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 우리 곁에 오신 신나고 즐거운 날이다! 따라서 모두가 기뻐하고 또 기뻐해야 하는 날이란 것이다. 그리고 부활은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서는 결코 안 되는 명백한 이유라고 말한다. 의심 많은 우리에게 부활 현장을 두루두루 비춰 준,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던 호민관의 마지막 대사가 오래도록 긴 여운으로 남는다.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정말 사실입니까?”
“분명한 사실은…나는 이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CTK 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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