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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죽음을 웃다.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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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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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자리, 오늘의 주 메뉴는 ‘뻘 속의 산삼’이라 불리는 산 낙지다. 누군가가 묻는다.

“낙지의 손과 발을 구분할 줄 아세요?” (아니, 낙지가 무슨 손이 있어?)

우물쭈물 하는 사이 문제를 낸 사람이 말한다.

“낙지 대가리를 ‘탁’하고 때리면 ‘아야야’하고 머리를 감싸 안는 게 손이에요.” (아 추워!)

이런 것을 요샌 아저씨 유머라 하지 않고 ‘응팔 유머’라 한다. 우리는 낙지를 놓고 ‘다리’라 하는데 서양에서는 왜 다리라고 하지 않고 ‘팔’이라고 하는 걸까? 이번에는 내가 묻고 답한다.

“너무 가난하던 시절, 끌채를 가지고 낙지를 쓸어 담으니 낙지들이 피해 도망갔다. 그 모습이 훠이훠이 걷는 것처럼 보여 다리라 불렀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우리처럼 잡아먹을 생각도 않는다. 천지가 낙지였다. 도망갈 필요가 없다. 늘 고요하게 서로 엉켜 있는 게 포옹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팔이라 불렀다.”

다들 ‘뻥 & 구라’(종종 문화심리학을 ‘구라 심리학’이라 한다)에 놀라 ‘와!’ 하고 입을 벌리는 순간, 낙지 발이 입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본다. 맞다. ‘산 낙지’ 어디 이것만일까?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탄일종’誕日鐘이나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종’이나 모두 바깥벽을 쳐 소리를 낸다. 타종打鐘이다. 반면 서양종은 안에 매달린 추가 종의 안쪽 벽을 때려 울리는 방식이다. 핸드 벨처럼 작은 것은 손으로 흔들어 울리고 큰 종은 줄을 매달아 울린다.

동서양의 차이는 이것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죽음에 대한 태도다.

 

결혼 30주년으로 한국인 부부가 이스라엘로 여행을 갔다. 그런데 도착 후 다음 날, 그만 남편이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말았다. 현지 장의사가 이스라엘 매장을 권유했다. 한국으로 시신을 옮기려면 2만 불이나 들지만 현지에서 매장하면 5백 불이면 충분하고, 게다가 성지에 묻히니 얼마나 좋으냐고….

그 부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아무래도 한국 땅에 묻어야겠다고 했다. 안타까워하며 이유를 묻자 부인이 하는 말.

‘예수란 남자가 이 땅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살아났다면서요?’ ―유머공방 중에서

 

이렇듯 서양인들은 죽음을 객관화할 줄 안다. 유머의 소재는 끝이 없어 죽음을 유머 단골 소재로 삼는다. 장례식장도 마찬가지다. 레이건 대통령 장례식 당시 대통령 부시나 아버지 부시의 레이건 관련 조크로 세계 각국에서 온 조문객들이 폭소를 자아냈다(2004년 로널드 레이건 장례식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그랬다면 당장 ‘왕 싸가지’로 매장 당하고 만다.

유토피아를 지은 토마스 모어Thomas More(1478~1535)는 자신을 총애했던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해 모든 안락을 포기해야 했다. 총리 겸 대법관으로 인생 최고의 절정기였던 때였다. 단두대에 올라선 그에게 사형집행관이 용서를 빈다. 모어가 그를 끌어안고 말한다.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게. 그리고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이래서 유토피아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경지의 ‘이데아’Idea일 것인가? 사람들은 묻는다. 우리 민족은 왜 이리 심각하냐고? 착각마라. 우리는 더 웃었다. 아니, 더 웃긴다.

 

죽음에서 피어난 긍정의 심리학과 죽음의 감탄사

영어권에서는 ‘죽다’를 ‘die, expire, lose life’ 또는 ‘pass away’라는 표현을 쓴다. (영어의 ‘die’는 우리말의 ‘죽었다. 사망했다’에 해당한다. ‘expire’는 ‘숨을 거두었다’이고 ‘lose life’는 ‘생명을 잃었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죽었다고 하지 않았다. 죽음조차도 ‘(그 양반) 다 살았다’고 했다. 그 뿐인가? ‘세상 버렸다’와 같이 품격 없고 부정적인 언어와 달리 ‘떼 이불 덮었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그러고 보면 긍정의 심리학의 원조가 한국인의 심성에 있다. 이런 심리구조는 주소 표기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서양 사람들의 주소는 길Street로 표현되어 ‘가’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동’이다. 같은[同][水]을 먹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길이란 경계선으로 금을 긋고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다. 우리는 ‘공동운명체’를 뜻했다. 그 뿐인가? ‘송 목사, 쥑이준다.’ 내 절친 남우택이가 자주 하는 소리다. 맛있는 밥을 먹다가도 멋있는 일출장면을 보면서도 말한다. ‘야, 쥑인다.’ 이처럼 죽음을 감탄사로 쓰는 민족이 한민족 외에 또 있을까? 환희에 넘칠 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우리는 소리 지른다. ‘쥑인다.’(→‘멋있다’)

 

만우절이 유언의 날로 바뀐 사연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 영국은 ‘죽음 알림 주간’을 지킨다. 유언장을 써 본다든지 장례계획 세우기,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쓰기 등 다양한 행사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죽음의 질이 1위인 국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몇 위나 될까? 16위다. 영국이 정부 주도로 이런 날을 갖게 되었다면 우리는 민간 주도로 이 일이 시작되었다. (2014. 4. 2.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의 ‘유언의 날’ 기사를 보라.)

2012년 4월 1일 주일 아침, 페북에 부고기사가 하나 떴다. ‘어젯밤, 제 남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4월 1일이 어떤 날인가? 일상에 똥침(?)을 놓는 날이 아닌가? 남을 놀라게 해서라도 웃어 보자는…. 눈치를 챈 사람들은 금방 만우절이라 여겨 웃고 지나쳤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가 가다니….’ 뒤늦게 장난인 줄 알게 된 때부터가 문제였다. 그들은 ‘당한 일’로 화를 냈다. 왜 주일 날 장난쳤냐고? 그도 알았다. 욕을 바가지로 얻어도 싸다는 것을. 페북도 끊었다. 은둔자가 되어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왜 사람들은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벼들까? 언제나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미국 사람들과 달리 항상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 한국인의 차이는 어디서 올까? 분노조절장애를 다스릴 특효약은 없는 걸까?

2년의 와신상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처럼 유언장을 남기고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도록 ‘유언의 날’을 만들 생각을 해냈다. ‘求4.1生’(위 사진) 그렇게 해서 4월 1일이 유언의 날이 되었다. 기막힌 반전이다. 그 ‘사고思考 뭉치’가 누구냐고? 필자다. (푸하하하)

샤넬(본명 가브리엘 샤넬, 1883~1971) 역시 자신의 연인이자 후원자였던 보이 카펠이 죽자 “보이 카펠을 위해 전 세계가 그를 애도하게 만들겠다”며 스스로 만든 검은 옷을 입었고 이를 유행시켰다 하지 않은가? 우리는 언제 죽음을 웃어 볼까?

 

민원인이 동사무소를 찾았다. 사망신고서를 접수하는 공익요원이 묻는다.

“본인이신가요?”

민원인이 놀라 되묻는다.

“꼭 본인이 와야 하나요?” ―유머공방 중

 

이렇게 웃음으로 찾아온 구사일생의 유언의 날, ‘사고뭉치’는 또 다시 생각에 잠긴다.

“신문의 동정 란의 승진인사와 죽음을 알리는 부고가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나란히 실리는 이유는 뭘까?”

이번에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부고’가 답한다.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들아! 날 좀 보소. 그대도 언젠가 ‘인사란’에서 ‘부음 란’으로 자리이동 할 것 알고 살아가소. 당신과 나의 거리는 불과 50밀리미터일 뿐.”

죽음이 저어기서 웃고 있다. CTK 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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