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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하나의 끈이다
박명철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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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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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의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지금 2016년에, 만약 1996년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때에 무엇인가를 되돌려놓고 싶은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말이 있다면 거둬들이고 싶을 테고, 해서는 안 될 일과 꼭 했어야 할 일을 찾아내어 바로잡고 싶을 것이다.

드라마 <시그널>은 그런 가정을 끌어왔다. 2016년,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오래된 사건들을 수사하는 ‘장기미제전담수사팀’의 프로파일러 박해영 경위는 1996년 기동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재한 형사와 무전으로 연락이 가능하다. 현재와 과거를 살아가는 두 사람은 아직 미제로 남은 사건들의 범인을 체포함으로써 더 이상의 희생자를 줄이고자 절박한 무전을 주고받는다.

이른바 ‘대도사건’은 20년 전에 일어난 절도사건인데,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범인은 고위층의 집만을 노렸다. 사건의 목격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엉터리 증언을 했다. 그런데 목격자는 고위층 인사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무게가 실리고, 엉터리 증언으로 체포된 피의자는 “나는 아니다”며 호소하지만 그의 호소는 힘없는 전과자란 이유로 묵살된다. 그는 억울하게 20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진범은 바로 목격자 그놈이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그놈은 한 인생을 망가뜨리고도 어떤 죄의식도 없이 20년 동안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20년 전에 살고 있는 이재한 형사는 절망적인 세상의 벽에서 분통을 터트린다. 그래서 20년 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박해영 경위에게 묻는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박해영 경위는 할 말이 없다.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네, 달라요. 그때 하고는 달라졌습니다. … 그렇게 만들면 됩니다. 이재한 형사님이 잡아야 합니다. 여기선 안 돼요.”

맞다. 슬프게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너무나 견고해져서 아무도 그걸 항의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거기서’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돌이키고 싶은, 아니 바로잡고 싶은 과거를 많이 가진 나라에서 살고 있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는 과거는, 게다가 온통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들로 가득 하다.

나는 영화 <귀향>을 보면서, 이것은 70년 전의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간절한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열넷, 열다섯, 열여섯…, 그렇게 어린 소녀들이 강제로 끌려서 일본군들의 성노리개가 되었던,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억울하고 슬픈 그때의 통곡과 비명을 상영시간 내내 들어야 했다. 마치 고문을 받은 듯 영화관을 나오기조차 힘들었다.

영화 <암살>을 본 이후였을까?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가 터져 나왔고,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 상황”으로 협상해‘버린’ 뒤였다. 어쩌면 70년이 흐른 오늘에도 통곡과 비명은 역사의 밤을 배회하는 유령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여름에 “나는 일본군의 위안부였다”고 증언했다. 쉬쉬 하며 묻거나 묻힌 채 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공식화한 역사는, 그때로부터 25년이 흘러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협상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린 듯하다. 그리고 영화 <귀향>은 이렇게도 애절한 ‘시그널’을 보내왔다.

열다섯 살에 정신대로 끌려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동생 같은 친구 정민이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온 영희가, 영옥으로 이름까지 바꿔서 살고 있는 그 영희가,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할 날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용기를 내서, 아니 깡그리 없었던 일로 덮어버리려는 오늘의 우리들을 향해 눈물을 담아 부르짖었다.

“내가 바로 그 미친년이다.”

박해영 경위의 백보드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다. 과거는 현재가 되고, 바로잡지 않은 모든 일들의 결과는 지금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잔인하게 이어진다.

우리는 왜 풀어야 할 과거가 그리도 많았을까.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이 시간의 법이란 또 얼마나 잔인한가. 아니, 비정하고 차가워서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는 시간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함이 생기는 것일까.

잔인해야 할 순간에는 잔인해야 하고, 뜨거워야 할 순간에는 뜨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흘러간 세월은 후회와 아쉬움과 한을 쌓아갈 뿐이다. 그래서이다. 우리는 정성을 다해서, 용기를 내서 오늘을 만든 나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나 지금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면 미래를 되돌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먼 미래는,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놓쳐서는 안 될 일과 포기해선 안 될 일을 찾아내어 한 땀 한 땀 완성해 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박명철 CTK 객원기자 CTK 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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