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행가래
황우석을 복제하고 이세돌을 복기하라
송길원  |  CTK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4.24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어학 수업시간, 교수가 말한다. “‘부정에 부정’이 긍정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세계 어느 언어에도 단연코 ‘긍정의 긍정’이 부정이 되는 경우는 없다.” 뒷줄에 앉아 있던 학생이 중얼 거린다.

“잘도 그러겠다.”

이런 언어구조를 가진 나라가 지구촌에 또 존재할까?

‘죽여주는 동치미’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오 필승 코리아’로 지구촌 구석구석에 ‘평화의 대한민국’(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를 세계시민들은 ‘오! 피스 코리아’로 알아들었다)을 심는다. 오역으로도 말이 된다. 비유는 어떤가?

“여물 많이 먹는 소, 똥 눌 때 알아본다.”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다.” “고양이 죽은데 쥐 눈물 흘리듯 한다.” “곤두선 머리털이 갓을 추켜올린다.” “남의 떡에 설 쇤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위대한 일은 비유의 대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상한 표현은 어리둥절하게 하고 평이한 표현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옮길 따름이지만 비유적인 표현은 어떤 것을 가장 신선하게 붙들게 한다고 했다. 그가 국빈 방문으로 세종대왕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수사修辭가 살아 숨 쉬는 소통의 새벽빛 나라’로 서방에 알려졌을 터다. 단언컨대 세계사는 달라졌을 거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경기를 보면서 그 아쉬움은 더했다. 솔직히 바둑은 오목을 두는 수준이고 인공지능에 대해선 ‘알파고’를 특목고로 오해하는 이들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다. 처음에 전자게임기 이름 정도로 이해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세돌이 돌을 던진 후,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는 짧은 한 마디에 여치가 놀라 뛰듯 화들짝 놀랐다. 울림은 컸다. 그의 기보棋譜보다 어록語錄을 복기復棋하기 시작했다.

‘어록’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황우석 교수. 슈퍼과학자라기보다는 대중 스타였다. 당시 한 신문은 이렇게 말했다. “강연과 기자회견에서 탁월한 비유와 화려한 언어 구사로 ‘황우석 어록’을 탄생시켜 연구업적뿐 아니라 그의 언사까지 대중들에게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때도 나는 파킨슨병에 대해서는 무감각했어도 그의 말에는 열광했다.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황 교수는 연일 “황금 알”을 쏟아냈다. “세계 생명공학의 고지에 태극기를 꽂고 온 기분이다.” “문익점 할아버지의 마음 같았다.” “BT산업이 IT산업과 함께 우리 경제를 이끄는 ‘쌍끌이’가 돼야 한다.” “작년의 연구 성과가 어린이의 걸음마라면 이번 성과는 단거리 선수의 질주다.” “마라톤의 반환점을 돌아온 기분이다.”

그의 말은 줄기세포의 영향력을 ‘쓰나미’로 비유했던 그대로 나에게 또 하나의 쓰나미였다. “우리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달력’에 따라 연구를 한다.” 이 표현에서는 그가 마치 시인이거나 언어의 마술사란 느낌마저 들었다. 내 심장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의심 없는 ‘국보급’ 언어였다.

박인화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문자언어만이 언어의 전부라 생각했다. 문자언어로 편지를 쓰고, 격문을 붙이고, 성명서를 만들고, 기사를 쓰고, 시를 쓰면서 무언가 부족한 몇 퍼센트쯤을 느껴야했다. 조금 더 감성적일 수 없을까? 더 빠른 속도로 타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다가가게 할 수 없을까? 그러던 와중에 다가온 디지털 시대는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며 문자 이전에 존재하는 이미지로 기억을 저장하기 시작했고, 디지털 이미지 편집기를 통해 저장된 기억을 재배치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를 활용한 네트워크 공간의 등장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던 시대가 말에 근거한word-based 세계였다면 포스트모던 문화는 이미지 지향적image-driven 세계다.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정보를 전달 받아야 했던 모던 시대와 달리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정보를 그림과 그래픽을 통하여 시각적으로 전달 받고 있다. 그들은 이미지images를 받는 데 익숙해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청중의 마음에 이미지mental images를 심어줄 수 있는 메시지를 구성해야만 한다. 즉 ‘어떻게 청중이 이 말을 듣고 볼 수 있도록 이미지화 할 수 있겠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황 교수의 언어는 바로 이 코드를 정확히 꿰고 있었던 셈이다.

   
 

이세돌에게로 시선을 돌려보자.

“바둑은 즐기는 것이다. 즐기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 그런 의문을 가졌다.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원 없이 마음껏 즐겼다.”알파고와의 대국 중 마지막 5국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나를 좋아하는 팬들도 신경 못쓰는데 안티 팬들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안티 이세돌 사이트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바둑은 자기를 믿지 못하면 될 것도 안 되고 반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두면 안 되는 것도 된다. 아무리 기발한 수를 생각해도 마인드가 따라 주지 않으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없다. 두려움을 떨쳐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후에는 집중해서 전력투구하라는 것이다. 흥미도 없고 잘하지도 못할 일에 어설프게 매달려서 낭비할 만큼 우리가 가진 시간이 무궁무진하진 않다.”이세돌, 「판을 엎어라」

둘은 같으면서 달랐다. 황우석은 민족혼을 자극한다. 이세돌은 감성을 자극한다. 황우석의 언어가 진중한 반면, 이세돌의 말에는 ‘펀’fun의 요소가 있다. 돌을 던지듯 툭 던지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황우석의 말이 준비된 담화문 같다면 이세돌은 동네 아저씨의 훈수처럼 편하다. 황우석이 ‘노~오력’을 이야기했다면 이세돌은 ‘즐기라’고 한다.

이세돌의 토크는 돌직구가 아니다. 금수저-은수저-동수저로 상처 입은 이들을 안아 토닥거리듯 ‘감동’을 안긴다. 스토리가 있어서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촌스럽다. 이세돌의 아버지(이수오. 1998년 임종)는 아들의 목 뒤에 삼각형으로 점 세 개가 있는 것을 보고 ‘세돌’이라 지었단다. 하지만 세돌을 ‘세돌’(世乭-‘바둑으로 세상을 지배하라’) 되게 한 것은 그의 7전8기의 삶의 투혼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떨리는 새댁의 목소리를 닮았다. 프로 입단 뒤 14세 때 스트레스가 심해 실어증(언어 상실증)을 앓았다. 당시 부모님은 전남 신안에 있었고 서울에서 보호자 역할을 하던 형(이상훈 9단)이 입대하는 바람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다. 이 대목에 이르면 누구라도 마음이 짠해진다.

또 있다. 황우석의 모노 모드와 달리 이세돌은 아이돌처럼 스테레오다. 네 번째 대결에서 첫 승을 거둔 이세돌이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찾은 건 딸 혜림이었다. 그는 딸의 손을 꼭 잡고 숙소로 향했다. 혜림은 말했다. “아빠랑 바둑 두면 제가 늘 이겨요.” 세기의 영웅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린다. ‘영웅 중 영웅’은 따로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시절, 집무실 책상 밑에서 숨바꼭질 하듯 숨어있던 장난꾸러기 케네디 주니어의 사진을 보듯 정겹다. 거기다 아내의 출연은 어떤가? 남편이 잠꼬대를 하면서 ‘아자황이랑 먹을래’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프로의 격을 느낀다. 눈이 번쩍 뜨인다. 언젠가 나도 ‘영어로 잠꼬대를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조른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한편, 세기의 대국을 치른 이세돌 9단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금금금’으로 일하는 황우석과 달라도 확연히 다르다. 누구는 돌 180개 가지고 그리도 난리냐고 하지만 틀렸다. 이세돌의 상금 액수나 계산하고 구글의 주식가치나 따지고 있다면 지극히 속물적이다. 영국의 디지털 문명과 한국 이세돌의 아날로그 문명의 대결에 상징이 있고 비유가 있다. 세기의 대결이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닌 ‘인공 지혜’(AW·Artificial Wisdom)였다. 아니 적어도 나에겐 인간다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었다. ‘국민돌’이 된 이세돌 9단의 인생복기, 복제가 아닌 복기로 내 인생을 묻고 있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

그의 말이 엷은 미소와 함께 나를 마구 흔들고 있다. 쓰나미다. CTK 2016: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7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