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제2의 주기철 목사가 되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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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제2의 주기철 목사가 되라우”
  • 김관선
  • 승인 201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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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신사참배의 시대에 ‘일사각오’를 되씹으며
 

1906년 평양에서 설립된 그 산정현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울의 산정현교회에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지 22년째 해를 맞았습니다. 서른아홉에 부임한 이래 지금껏 계속해서 제 가슴을 짓누르는 부담은 ‘주기철’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그 고귀한 삶이 저를 많이 짓눌렀습니다. 1994년 12월, 저의 부임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며 안수 기도해 주신, 지금은 천국에 계신 최훈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가서 제2의 주기철 목사가 되라우.” 이북 사투리를 쓰신 목사님의 말씀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진정한 신앙인이요 승리자이셨습니다. 모진 고문을 견디고 죽지 않고 살아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힘든 고난을 온 몸으로 감당하시면서 일제의 강압에 끝까지 머리 숙이지 않고 우리의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주 목사님은 48세의 젊은 연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순교적 삶은 그분만이 아니었습니다. 주 목사님과 슬하에 네 아들을 낳으신 안갑수 사모님은 1933년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병환으로 소천하셨습니다. 주 목사님의 모진 옥바라지를 끝까지 하시고 순교자의 길을 가실 수 있도록 조력하신 오정모 사모님은 1947년 유방암으로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맏아들 주영진 전도사님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공산군에 의해 순교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주 전도사님의 사모님이자 주기철 목사님의 맏며느리인 김덕성 여사는 북한에 남아 전도하시다 1970년 10월 26일, 체포되어 1971년 1월 15일 순교하셨습니다. 북한 당국에 의해 확인된 사실입니다.

이렇게 순교자의 가정으로 드려진 주기철 목사님의 희생과 섬김이 지금의 한국 교회를 만들어낸 힘입니다. 순교자의 가정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러나 놀라운 것은 지금 주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굳게 믿으셨듯이, 후손들이 이 세상에서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면서 모두 복된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안장로교회 담임목사인 손자 주승중 목사님을 비롯해 여러 후손들이 순교자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열매를 삶과 사역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이 납니다. 현재의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하고 건강한 믿음을 유지한다면 반드시 그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산정현교회를 섬겨온 제게 다시금 걸음을 점검하고 힘을 얻게 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 <일사각오>입니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어떤 영화보다 가슴을 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꼭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지켜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준 영화입니다. 그래서 무모할 것 같은 영화 제작에 뛰어든 권혁만 감독이나 방송사에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도 담아 꽤 많은 분들의 증언도 들려주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신앙과 함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담아 재현하면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시절 신사 앞에 무릎을 꿇었던 많은 목사님들과 적극적으로 일제 편에 섰던 목사님들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들을 향해 나는 과연 손가락질을 할 자격이 있을까….

저는 순교자가 사역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여겨 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적인 산정현교회에서 사역한 지 벌써 2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세월이 영화 스크린 속에서 계속 오버랩 되어 지나갔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도 그런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오래도록 스크린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관객이 많이 찾지 않는다면 그 영화를 어떤 극장이 계속 걸어둘 수 있겠습니까? 물론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화관이 좋은 시간대에 상영시간을 편성해야 하는 조건도 포함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안에 있는 연약함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영화를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별로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관심합니다. 1970년대나 80년대도 아닌 지금, 일제 강점기의 순교자를 다룬 영화를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분하게 생각하거나 식상해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실상일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조금의 불편한 것도 참아내지 못합니다. 교회 주차장이 불편한 것도, 예배실이 덥거나 추운 것도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예배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못 기다리고 자신이 늘 앉던 자리에 낯선 교인이 앉아 있으면 예배를 망치기까지 합니다.

교회는 또 어떻습니까? 이런 교인들의 구미에 맞춘 예배당 짓는 게 꿈이 되어 버렸지 않습니까? 부흥이라는 이름을 운운하며 외연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를 건강하게 열심히 세워가다 보니 어느새 부흥이 되어야 할 텐데, 부흥만을 좇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이라는 것이 사람의 수, 재정 능력, 예배당 평수에 갇혀 버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세상에 순교가 가능할까요?

신사참배는 일제가 강제한 것이지만 우리 시대에는 자발적인 신사참배를 합니다. 신사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 돈이 앉고 권력이나 명예, 편리함과 즐거움이 앉아 버렸습니다. 주말의 온갖 행사들과 패키지 여행상품들로 주일예배가 뒤로 밀려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진데, 이것이 자발적인 현대판 신사참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기꺼이 봄나들이를 포기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될까요? 친지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예배를 빠지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한국 교회 안에 일사각오의 순교신앙은 과연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일사각오>의 가치가 바로 자리매김 되지 못하는 현실에 그저 마음이 무거울 따름입니다. 김관선 산정현교회 목사 CTK 2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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